마무리하며

Epilogue. 나의 애인은 글입니다.

by Sabina


제가 소설을 썼습니다.

소설의 정의는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문체의 문학 양식입니다. 제가 쓴 소설은 아직 만나지 못한 남자 이야기만 허구입니다. 아마 제가 그토록 원하던 이상형을 소설이기에 만났고, 소설이기에 행복했나 봅니다.

소설 에필로그를 일부 옮겨봅니다.

프라하 곳곳의 풍경이 정겹고 아름다웠다. 호윤은 내 영혼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힘찬 파동과 생명의 온기로 나의 시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따뜻하고, 한결같고, 찬란했다.

골목 아래마다 있는 노천 레스토랑을 보여주기 위해, 업어주기도 했으며, 물어보지 않고 뛰어가서 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사 오기도 했다.

“프라하는 상식을 파괴한 상점들이 많아.”

“상식이요?”

“이곳은 단순한 노점상이 아니라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상점이 많아. 업혀!”

긴 계단을 내려가면서 숨이 찰 때면, 거짓말하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그는 거친 입김을 뿜으며 말했다.

“내가 3kg만 더 살을 쪄 볼게.”

그는 그렇게 상식을 깬 남자였다.



저는 이번 에세이를 마무리할 때, 소설에 등장했던 나의 이상형을 만나서 마지막 사물의 주인공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장애보다 마음을 보는 남자를 만나지 못했다고 아쉽거나 아프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물과 대화하고 사유하는 긴 시간이 저를 성장시키고 사유의 폭이 글의 깊이를 만들어가는 성장통을 겪으면서 이제 외로워서 찾는 남자는 의미가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소설에 등장하는 이웃이 오늘도 대신 쓰레기를 치워주며 귀여운 생색을 내고, 상담 에세이에 등장하는 내담자가 그림 치유를 받아 미술치료사가 되고, 사물 에세이에 등장하는 엄마가 아빠가 그리고 그녀와 그들이 제 마음에 살아있으니, 한 잔의 커피와 배터리 꽉 찬 노트북이면 됩니다.


매일 글을 쓰면서 행복했습니다.

하필이면 이사 온 곳이 거대한 별장 앞, 나무 우거진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글이 쏟아지고 그림이 그려지는 공간이라 행복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축복의 빛이 감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아아, 생각해보니 그때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담장에서 피어 난 생명력 강한 민들레와 대화하고 비바람에 쓰러진 폐가 옆 원추리와 대화하고 쓰레기봉투에서 굴러 나와 흐트러진 쓰레기 잔해를 불쌍히 여기고 마음이 더 진한 날은 목발 팽개치고 그 쓰레기봉투 제대로 정리하고 갔습니다.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을 내가 가지지 않았다고 불평했던 과거는 책을 한 권씩 완성할 때마다 사라져 갔습니다

많이 울어보고 많이 갈등했던 시간들이 빛을 발했습니다.

나에게 닿기 위해 광대한 공간을 가로질러온 빛은 내가 쓰레기봉투를 정리하고 쓰러진 원추리꽃을 세우고 걸려 넘어진 문지방을 쓰다듬을 때 더 빛났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은 그렇게 사물의 마음을 이해하는 혜안을 주셨습니다.

저는 계속 글을 쓸 것입니다. 노을의 잔해 자잘히 부서지는 체코 블타강 앞에서도, 딱딱한 카를교 돌바닥 위에서 휠체어 바퀴 굴리면서도 저는 글을 계속 쓸 것입니다.

...

제 애인은 [글]입니다.



- 붉게 물든 담쟁이 덩굴 앞에서 사비나 황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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