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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n 02. 2020

10첩 반상, 알고 보니 그녀의 혼.

음식 공급자 엄마의 이야기.

10첩 반상이라 하면,  반찬의 개수가 많을 때 쓰는 표현이다. 임금님 수라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넉넉한 살림 살이를 의미할 수도 있다.

자신의 부주의로 장애인이 된 딸이 이혼녀가 되자 엄마는 죄의식을 덜어 내듯 매일 아침,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웠다. -일어나, 아침 먹어라.

아침을 차려주는 엄마는 혈액암으로 이겨 내느라 지쳐버린 팔을, . -이거 먹어 봐라, 저거 먹어 봐라.

반찬 종지 이곳 저곳을 옮겨가며 10첩 반상으로 나를 대우했다. 내 밥위에 사랑을 덜어 놓으시면서 말이다.


나에게 있어 10첩 반상은 불편함이었다.

음식을 공급해주는 엄마를 이해하기 까지 나에게 있어 10첩반상은 불편함이었다. 빨리 먹고 일어나서 말라버린 엄마의 팔을 안 보고 싶었고, 맛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전에 배불러서 그만 먹겠다고 말하고 싶은, 그렇게 피하고 싶은 자리가 엄마와 둘이 먹는 반찬 개수 많은 그 식탁이었다.

-왜 밥먹기 전에 물을 마시냐?

물을 먹어야 빨리 배가 부르고, 눈물이 차오르는 나의 감정 들킬까, 물을 벌컥 벌컥 마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그저 10첩 반상이 불편했다. 그때는 말이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과외 선생님이었다. 빌딩 숲이 우거진 호화로운 도시에서 제법 큰 비전스쿨을 운영하는 원장이었다.

수업을 하고, 성적을 올려주는 그 장소가 은밀한 상담실이 되고 아이들이 24시간 나를 원하니, 그 공간은 성적뿐만 아니라 마음을 치유해주는 곳으로 유명해졌고,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심리상담을 배우고 그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는 조금은 특별한 공부방을 운영했다.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를 출간하고 작가가 되는 그 여정안에 나의 엄마가 있었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마음이 고픈 아이들이었으니 엄마가 차려주는 10첩 반상을 나와 함께 누리면서 아이들은 행복해했다.

음식 공급자인 할머니가 그 음식을 차리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지 모른채 10첩 반상을 매일 누렸다. 나는 바빴고 아이들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엄마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 것은 -네 책을 읽어 봤는데 엄마 이야기가 별로 없드라.

서운하다는 것이다. 아픈 아이들을 품게 된 나의 유년기를 기록하면서 왜, 엄마의 인생을 피력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엄마는 서운함 끝에 나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두번째 책은 엄마가 살아 온 이야기를 써라...

40년 식당생활을 했던 과거와 장애인 딸을 위해 공부방 아이들의 음식을 담당했던 엄마 이야기를 써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손가락을 걸어 약속을 하며 못을 박았다.-꼭 써줘야 한다.


단호한 말로 끝나는 그 못은, 엄마의 10첩 반상을 당연하게 여기고 오히려 불편하게 여겼던 나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그 못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일요일마다 엄마와 드라이브를 하면서 휴대폰에 엄마의 이야기를 녹음했다. 마치 곧 책을 출간할 작가처럼 -엄마 이곳에 엄마이야기를 털어 놓으세요. 제가 정리해서 책을 낼게요.

그렇게 해야 대못이 소못이 되고, 쇠(金)못이 나무못이 되서 나의 짐을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은 음식을 힘들이지 않고 만들어 낸 10첩 반상의 비밀이 엄마와 나의 드라이브하는 길가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엄마의 이야기는 아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누군가를 위해 주고 싶은 혼이 담긴 역사였다. 엄마가 머무는 나의 차는 은밀한 상담실이 되었고 눈물이 쏟아지는 날은 엄마가 좋아하는 벚꽃 흐드러지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책 한권으로 엄마의 이야기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그날, 드라이브하는 날도 아닌데 엄마는 아침부터 음식에 담긴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감자탕을 왜 잘하는지 아냐?



감자탕을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만들어 본 사람은 안다. 돼지 뼈에 감자, 우거지, 들깨, 파를 넣어 된장과 고추장 비율이 적절하게 들어 간 양념을 넣어 끓인 찌개가 감자탕이다. 그렇게 맛있는 감자탕이 만들어지기 까지 제일 먼저 엄마가 한 일은, 마른 팔로 둔탁한 돼지 뼈를 분리해서 핏물을 빼는 과정이 었다. 뼈의 핏물을 충분히 제거하는 것이 국물을 잘 살리는 비결이니 그 과정을 하기 위해 엄마는 큰 솥에 가라앉은 핏물을 제거하려고 수시로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나에게 그 소리는 불편함이었다. 맛있는 그 음식을 마주하기까지 엄마가 전해주는 과거의 이야기는 아픔이었다.

-그때는 참 가난했어. 너네 아버지는 백수였잖니.

고학력 백수였던 아버지는 공장 여공으로 퇴근하는 엄마를 육체적 교감의 대상으로만 여겼고, 일할 생각이 없던 아버지를 대신해 엄마는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그렇게 시래기를 말렸다. 그 시래기가 된장국이 되고 감자탕이 될 때 우리는 그저 배불리 먹었다.

엄마의 과거를 모르고 엄마의 아픔을 모르니, 엄마가 해 주는 음식에 감동없이 그렇게 배불리 먹어서 다 큰 어른이 되었다.

엄마는 혈액암을 이겨 낸 가냘픈 몸으로 이제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상담사 일을 하는 딸에게 말했다.

-내가 감자탕을 왜 잘하는지 아냐?



엄마의 이야기가 들어있는 감자탕은 아픈 과거가 기억나지 않을만큼 너무 맛있었다. 자식들 배부르게 먹이려고 한 솥을 끓였던 그 감자탕은 지금도 엄마가 제일 잘하는 음식이다. 마음이 아픈 아이들과 보냈던 그 24시간 동고동락의 현장에서 감자탕은 이미 10첩 반상으로 가득한데, 화룡점정이 되어 식탁의 한 가운데에 오르곤 했다.

그리고 공부방 아이들이 하교하고 돌아와 -할머니! 오늘 반찬은 뭐예요? 물을 때 엄마는 사족을 붙였다. -감자탕이다. 내가 왜 감자탕을 만든 줄 아니? 다리 불편한 선생님, 말 잘들으라고 특식으로 준비한거다. 많이 먹어라!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엄마의 이야기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질 때, 나는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아니, 밥 먹기 전에 왜 물을 마시냐?

미리 배부르게 해서 그 식탁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공부방 아이들에게 매일 특식을 준비해 주며, 다리 불편한 장애인 딸을 잘 봐달라고 말하는 엄마가 불편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엄마의 이야기가 쌓여가고, 책을 출간한 작가가 되었을 때, 공부방을 접으면서 나는 독립했다. 매일 아침, 고생하는 손길을 덜어주고 한숨이 늘어가는 엄마를 위해 엄마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선포하고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엄마와 독립을 했다. 일주일에 한번 용돈 드리고 오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 퉁치고 있던 내게 엄마는 물었다.

-엄마 이야기 책으로 나왔냐?

-엄마 이야기 녹음 다했으니, 천천히 쓸게요.

-일주일만에 만나니까, 엄마이야기가 너무 적지 않냐?

엄마는 자주 보고 싶다는 말을 돌려 말했을 것이다. 알고 있는 나는 불편한 내색을 하며 말했다.

-엄마 이야기 충분해요.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 지겨워.

그때 엄마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 나는 불편한 이야기 듣지 않고, 짧은 시간 얼굴만 보고도  효도 하고 올 수 있다고 안도했다. 그리고 엄마는 말했다.

-바쁘면 자주 안 와도 된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인 나는 마음도 불편한 마음의 장애를 극복하지 못 했나보다. 엄마를 보면 너무 괴로워서 회피하고 싶은 그림자인데, 그 그림자를 일부러 피하고 싶은 나에게 엄마가 먼저 말했으니, 나는 이번 주는 안가도 된다고 마음을 놓았으니 말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나는 토요일, 엄마는 전화를 했다.

-이번주는 오지? 엄마가 감자탕 해놨다.

-아, 엄마...그거 하려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아버지 대신 식당을 하고, 음식의 맛이 소문나서 유명한 맛집이 되기까지 엄마는 그렇게 도마질을 했는데, 이제는 팔의 근육이 사라져 간신히 들어올리는 그 마른 팔로, 무거운 돼지 뼈 핏물을 제거하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니,  말을 이어 갈 수 가 없었다.

대신에  눈물이 차오르는 그 울음섞인 목소리 들킬까 씩씩하게 대답했다.

-엄마, 감자탕 한 통했지? 그거 다 먹을 수 있어! 엄마가 해준 건 얼마나 맛있게요!

-막내야, 이 이야기는 책에 쓰지 말아라.

-응?

-엄마가 이제 간을 못 보겠어. 맛이 없을거야. 소금을 뺐는지,  싱거운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 이야기는 써라. 엄마가 너를 위해 혼을 다뺐다. 오래 걸렸어.


아...


엄마가 차려주는 10첩반상은 그녀의 혼과 그녀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불편하고 회피하고 싶어서 외면했던 나에게 엄마는, 두번째 책에는 엄마이야기를 쓰라며 말하는 것이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더 하지, 작가 나부랭이는 해서 뭐하냐고 하시던 엄마는 이제  -너에게만 말하는 거다. 녹음하고  있지?


어느 날은 1.4 후퇴와 6.25 피난 이야기로, 어느 날은 백수 아버지를 용서하라는 이야기로, 어느 날은 감자탕 비법을 알려주는 40년지기 식당 주인집 포스로 나에게만 말했다.


오늘도 나의 은밀한 상담실 차 안에, 엄마의 이야기가 쌓여가고 있다. 계절이 바껴 벚꽃 흐드러지는 곳이 없으니, 장미꽃 만개한 곳에 차를 세우라고 조르면서 엄마는 말하고 또 말했다.

이제는 엄마의 이야기가 불편하지 않았다. 그저 오래 오래 옆에서 아이처럼 떠들어도 좋은 나의 엄마에게, 나는 아이처럼 졸랐다.


-엄마, 더 이야기 해줘! 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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