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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n 03. 2020

차를 7번 바꿨습니다.

-차를 사랑한 지천명 여자.

저는 차를 7번 바꿨습니다    


저는 에니어그램 7번 유형입니다. 7번 유형의 두드러진 특징은 [모험심]이라는 키워드가 있습니다. 운전 경력 28년 동안, 한 번의 사고 외에는 사고 경력도 없습니다. 그럼, 안전 운전을 했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청 교통행정과 직원이 저를 좋아합니다. 기본적으로  제 얼굴이 들어간 과속딱지를 수시로 받아 보니까요.    


저는 지천명이 넘은 여자입니다. 그리고 소아마비 장애인입니다.

이미 모험심이 있다 했으니, [여자]라는 단어가 집에서 솥뚜껑이나 운전해야 한다는 통념을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장애인]입니다. 발로 운전 할 수 없어 오토바이 손잡이 같은 것을 엑셀과 브레이크에 개별적으로 부착해야 합니다. 게다가 손으로 운전을 하니, 핸들에 손잡이를 달아 놓아야 핸들을 돌리는데 제약이 없습니다.    

본성을 파악하는 에니어그램에서 모험심이 있는 7번, 그래서 차를 좋아할까요?

여자라는 통념과 장애인이라는 제약으로도 차를 좋아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는 이유가 있을까요?        



가난과, 억압과 무관심으로 장애인 딸을 가둬 길렀던 그 그림자가 발현되는 사건이 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 날, 사실,  운동회는 제게 빈 축제 같은 날이라 응원석에 앉아 있거나, 그날은 하루 빠져도 되는, 그냥 장애인 학생이었는데, 용감하게 응원단당을 얻어내고, 그 유명한 응원가를 목청껏 불렀습니다.

목발을 짚은 채, 서서

“이겨라, 이겨라,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외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400미터 계주에서 실패하고 온 욕쟁이 남학생을 위로하기 위해, “괜찮아, 괜찮아”를 유도 했는데, 그 자식이 학생들 앞에서 제 목발을 고의적으로 치고

“병신년아 꺼져” 라고 했던 그날, 저는 운동회를 마무리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날, 집으로 먼저 돌아와 평상시에도 저를 무시했던 그 남학생의 집이 보이는 골목의 끝에서 그 남학생을 기다렸습니다.

운동회를 마치고 돌아온 그 남학생이 골목을 꺾어 들어 올 때, 저는 숨어 있다가 목발로 그 남학생의 급소를 쳤습니다. 가볍게 때리지 않았습니다. 충격이 커서 일어설 수 없도록 세게 쳤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통쾌한 날입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가두어진 인생을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해 갔습니다. 쉽게 말하면 네 개의 발을 가진 당당한 소녀가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간 겁니다.

그 때 이후로 통쾌라는 단어는 누군가 저를 따라 오지 못하는 상황으로 귀결되었습니다. 나를 따라 올 수 없도록 하는 상황을 만들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잊도록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공부였고, 그것이 운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수로 시작한 통쾌는 건전하지 못한 방식이라는 것을 지천명이 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차를 7번 바꿨습니다.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이 돈과 결부되는 인식으로 살아갈 때 저는 차를 바꿔가면서 저의 장애를 감추었습니다.            

현대 엘란트라, 소나타, 쌍용 액티언, 렉스턴, 기아 소렌토, 그리고 독일차 벤츠, 여섯 번의 차를 바꾸는 동안, 저는 차에 타고 있는 저의 모습이 진짜 나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돈보다 더 좋은 진짜 사랑을 받고, 받은 사랑을 나누는 상담사의 일을 하면서, 자주 몰지 않아서 먼지 뿌옇게 앉은 벤츠를, 코로나 시국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아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레이를 구매했습니다. 휠체어가 들어가는 키 큰 경차, 레이를 구매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 자랑했습니다.

“레이 샀어요!”

그래도 의식이 변했다는 상담사인 저의 밑바닥 그림자를 건드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외제차 몰다가??”

“너무 작잖아?”


건강한 발산으로 대응했다고 했지만, 아직도 그들의 말을 곱씹어 보는 걸 보니  멀었나 봅니다, 의식의 변화가 참 자유를 인도하기에는 멀었나 봅니다.


어제 지인이 보내 준 사진입니다.

장애인 카레이싱을 알아보고 찾아갔던 제게, 랜드로버 디스커버리는 갖고 싶은 차입니다.

선 루프 열어놓고 소찬휘의 tears 틀어놓고 차를 지그재그로 모는 제게, 딱 좋은 차입니다.

장난치듯 보내 준 그 사진에 이렇게 대응했습니다.


“좋아! 내가 꿈을 가져볼게. 랜드로버를 가질때까지!”


지인과 저는 부의 에너지를 끌어 당겨보자고 웃으며 마무리했습니다.   

 

나를 거쳐 간 여섯 대의 차와 지금 레이는 나의 다리입니다.

이제 레이의 다리를 가지고 [통쾌] 라는 쾌감을 다시 누려 볼 생각입니다. 지나가다가 tears가 너무 크게 들리면 사비나 황 정미입니다.(^^) 신나게 운전을 하면서 음악을 기가 막히게 선곡하니 나의 차는 늘 개방입니다.    


저와 함께 드라이브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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