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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n 04. 2020

Secret Cafe,

은밀한 상담실 이야기.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면 화교들이 세운 자생적 마을인데, 이곳 인천 차이나타운은 붉은 용과 그 용이 내뿜는 불의 화려함으로 치장한 한인 타운일 뿐이었다.    

-환잉꽝린

-쩌거 워 부타이..    

가끔씩 들리는 중국어 외에는 대다수가 한국말을 쓰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유니짜장을 먹으러 들어가고 한국말을 쓰는 중국집 직원들이 바쁘게 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차이나타운을 지나 옆 골목을 들어서면 아이러니하게 일본의 잔재가 남아있는 목조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똑같은 나무 뼈대, 똑같은 나무 창살, 그 창살 사이에 하얀 한지 빛발하며 이층으로 늘어서 있는 목조 건물이, 비라도 오면 운치를 더해 젖은 장작 나무 타듯 타닥타닥 나무소리가 골목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그 운치 있는 골목에서 연인들이 각자의 인스타그램에 [나 이곳에 왔노라] 뽐내는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인정하기 싫은 일본의 잔재 그 아름다운 목조건물을 기대하고 두 블록 건너 일본식 2층 건물 주택을 매입하고 기대한 것은 목조주택이 주는 정겨움이었는데 아뿔싸, 집값만큼 운치는 없고 노후 된 흔적으로 유산슬의 트로트 제목처럼 [싹 다 갈아엎어주세요]가 되어버린 나의 공간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도 나의 공간 하얀 벽돌집이 빛이 나는 건 17년째 방치된 폐가 옆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자식들이 유산 문제로

-건축법상 허물 수가 없어서

이유는 모르지만 귀신 나올 것 같은 폐가가 바로 나의 공간 옆이다.


예술가의 동네라고 뽐내던 마음은 밤이 되면 폐가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가 나의 공간을 침범할 까 두렵고 폐가의 뚫린 지붕 위로 빗방울 소리 너무 크게 들리니 비 오는 소리가 낭만이 될 수 없었다.

나는 상담사라는 직업을 소명으로 삼고, 차이나라고 불리고 일본 잔해 가득한 이 곳에 이사 오면서 1층은 카페로 2층은 상담실로 꾸밀 때 고민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정신과를 찾아가는 그 기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 들어 줄 친구 찾아오듯 하게하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실 간판이, 모습 그대로(路), 그대의 모습 그대로路) 이야기하러 오는, 여기 그대로(路)였다.    


그 궁금한 상담실은 1층 카페를 지나 안쪽 깊숙이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야 마주 할 수 있다. 마음 들키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커피 마시러 들어온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은밀한 상담]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2층 은밀한 상담실 큰 창은 폴딩으로 되어있다. 4칸의 접이식 폴딩 창을 하나씩 열어 제끼면, 맞은 편에 별장이라고 불리는 아주 큰 경찰청 사택이 있다. 일년 사계절 다른 풍경을 뿜어내는 그 큰 정원을 은밀한 상담실 나의 공간에서 오롯이 누릴 수 있다. 사람이 살지 않고 관리인만 거주한다는 맞은 편 경찰청 별장은 오늘도 벚꽃이 사라진 울타리 넘어 빨간 장미꽃을 보여주며 향기에 취해 보라고 뽐내고 있다.


그 별장을 마주하고 있는 Secret cafe는 바로 옆, 쓰러져가는 폐가 옆에서 하얀 페인트로 위장한 채 자신은 원래 폐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여기 그대로(路)’ 간판의 힘을 발휘하곤 했다. 왠지, 일제 강점기 시대의 억울함을 단신(路身)의 힘으로 버티고 있는 2층짜리 목조 주택이 경찰청 별장과 맞대결하듯 보였다.

장신(長身)의 나무들을 아우르는 더 높은 담장, 그 압도적인 높이에서 내뿜는 나무의 향기와 맞서는 사람의 향기가 카페에 그윽하니, 나는 대결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은밀한 상담사 '사비나'는 매일 마음이 아픈 사람을 품어주고 있으니 장신(長身)의 별장을 이겼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오늘은 스물 네살 여자, 휘인의 사례입니다. 사례를 통해 나와 같은 듯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 지 알려주는 것이 나의 소명이니 앞으로 Secret Cafe, 은밀한 이야기를 각색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위로자 '사비나'와 같은 마음으로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녀의 반려견, 만두 이야기 1회.


나의 은밀한 상담실은 규칙이 있다.

첫 회 상담에서 소통의 창구로, 에니어그램 분석지를 체크하면서 내면의 목소리를 알아채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분석이 끝나야 뿌리를 알아내고 과거 이야기를 쏟아내며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삶의 궤적을 인정하는 시간을 갖는데...휘인은 울었다.

분석을 하기도 전에, -선생님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휘인은 울었다. 내담자를 분석하고 어떻게 치유할 까 고민하기도 전에 그녀의 고백은 트럭에 치어 죽은 나의 반려견,  [아랑이]를 떠오르게 했고, 그녀의 이야기가 깊어지자 상담사가 해서는 안되는 [역전이]로 나는 그녀와 함께 엉엉 울었다.

내담자가 자신에게 중요한 인물의 이미지를 분석가에게 투사하는 ‘전이’에 대한 분석가의 무의식적 반응으로, 분석가의 갈등(conflict)이 반영되어 내담자를 대하는 분석가의 사고, 감정, 행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 (심리학용어사전, 2014. 4.)

-일주일 전에 비가 많이 온 날 있죠? 바람도 거칠게 불었던 날이요?

-네

-그날, 우산이 날릴만큼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그랬던 것 같아요...

-퇴근하고 들어가는데, 대문 앞에 만두가 있는 거예요

만두는 그녀의 반려견으로 말티즈와 푸들을 믹스해서 만들어진 말티푸 이다.

휘인은 더 크게 울었다. 만두는 이미 비를 너무 많이 맞아서 하얀 털이 황사 빗물을 흡수해 누렇게 물들었고 바람을 이겨내지 못해 엉켜버렸다고 울고 있었다.

나는 느꼈다.

오늘의 상담이 만두 이야기가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 라는 것을. 만두는 그녀였고, 그녀가 만두였다.


-어떻게 만두가 문 앞에 있는거죠?

휘인은 휴지로 눈물을 걷어 내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 방금까지도 비에 못이겨 떨어진 나뭇잎 처럼 바들바들 울며 떨고 있던 그녀는목소리만큼 커진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 새끼가 갖다 버린거죠!

-그 새끼요?

-네, 아빠요. 아빠라고 부르기도 싫어요. 그 새끼가 만두를 내다 버린 거예요!! 그 만두가 집을 알아서 찾아 온거라고요!!

절규하는 그녀의 울음뒤로 나는 트럭에 치어 죽은 나의 반려견 [아랑이]가 떠올라서 울음이 목젖까지 차올랐지만 울 수 없었다. 아직 울면 안 된다.

[아랑이]의 엄마가 나여서, 제대로 케어해 주지 못하는 장애인인 엄마라서, 트럭에 치어 죽은 날, 시멘트 바닥에서 동네 사람 몰려와 내 목발을 세워주며 달래던 그날, -비키세요!!!아랑이가 죽었다고요. 내 새끼 아랑이가 죽었다고요!! 차에 치여 죽었다고요!!

오열했던 그날이 떠올라 목 구멍까지 울음이 차올랐는데, 휘인이 운다. 더 크게.

나는 아직 울면 안 된다...


상담실을 찾는 사람들은 나와 닮아 있었습니다. 어느날은 네개의 발을 가진 목발을 짚은 사람이 와서 그림자를 제대로 직면하게 하고, 어느날은 -선생님 저도 이혼녀에요 남편이 백수였어요.

그리고 어느날은 -아들 때문에 참고 산다고.

그리고 휘인은 만두이야기를 하면서 잊은 줄 알았던 아랑이를 미치도록 보고싶게 했습니다.

후...이 글을 쓰면서 힘이 들지만, 우리는 다 같은 듯 다른 모양으로 살아가니 조금 더 먼저 경험하고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조금은 다르게 풀어가는 사비나가 브런치에 올리려고 합니다.

은밀한 상담실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호흡할 수 있어서 행복한 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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