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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n 05. 2020

#2.Secret Cafe,

은밀한 상담실 이야기


은밀한 상담실 [그녀의 반려견, 만두이야기 1편]입니다.

https://brunch.co.kr/@jisu6677/9

#2.

언제부터였을까, 남편과 나는 대화가 없었다. 합법적 백수였던 남편은 가까운 지척에 살고 있는 공부방 아이들을 내 차로 데려다주는 일 외에는 하는 일이 없는데도 아들과 놀아주지 않았다.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아들은 공부방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내 옆에서 숙제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강아지 한 마리만 사주세요.


남자라면 아침에 집을 나가서 일을 해야한다는 아내의 발언이 묵살되고, 집에서 장애인 부인을 도와주는 것도 일이라는 자기 암시를 가족 모두에게 투영하는 남편과 나는 대화가 없었다.

그 사이에서 [장애인 엄마가 낳았는데 건강하게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자기연민에 빠진 엄마의 투사를, 오롯이 견뎌낸 나의 외아들은 6학년이 되면서 외롭다고 했다.


-우리, 강아지 이름 지어보자. 음...주 깊은 사을 줄 거니까, 아랑이 어때?


그렇게 3개월 된 시츄 아랑이는 외아들을 위로하며, 대화없는 쓸쓸한 공간에 배설물조차 사랑스러운 애완견이 되었다. 강아지를 처음 키워봐서 몰랐다. 시츄의 특성을. 아랑이는 목발 고무가 땅 바닥에 부딪쳐서 나는 소리를 기억하는 지, 내가 들어갈 때 마다 대문 입구까지 나와서 꼬리를 흔들며 나를 반겼다. 그리고 뽀뽀 한 번 해주지 않고 이내, 자기의 아지트로 돌아가 간식을 먹고 싶다는 살아있는 눈빛만을 호소했다. 나는 그때 그랬다.

-chic한 년.


공부와 씨름했던 아들이 사춘기라는 명명아래 숨어서 게임을 했던 그때 , 쓸쓸하고 적막했던 나의 공간은 오래토록 아랑이와 나만의 소리만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울음이 차오르지만 자존심이 상해서 이불 안에서 울 때면, 아랑이는 개의 습성 처럼 이불을 파 헤쳐, 울고 있는 내 얼굴을 찾아내고 핥아 주었다. 위로하는 거겠지.

산책 한번 제대로 시켜주지 못하는 장애인 엄마가 배변 훈련 만큼은 제대로 시키고 싶어 안달할 때, 아기였던 아랑이는 거실 바닥 흥건히 오줌을 싸다가 합법적 백수였던 남편에게 그렇게 혼났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아랑이는 오줌을 참았다.


내 마음 같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자기연민으로 나를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살 때, 고개숙인 사람을 보면  그렇게 품어주고 싶었다. 마음이 아픈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필 그때 나는 오줌을 참고 있는 아랑이의 눈을 보았다.

그때부터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랑이를 태우고 수풀 우거진 곳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그곳에 목줄을 하지 않고 풀어 놓으면 아랑이는 수풀 가득한 곳에 볼일을 보고 차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랑이와 나는 풀이 있어야 볼일을 보는 암묵적 시인하에 12년을 보냈다.


-선생님, 만두가요...그렇게 비를 맞고 대문 앞에서 끙끙대느라 아파요.

휘인이는 울었다. 아빠가 내다버린 만두를 퇴근 이후에 발견하고, 만두를 보고 소리쳤다고 한다. 추워서 떠는 건지 무서워서 떠는 건지 모르지만 휘인은 말했다. 만두는 울고 있었다고.

-왜 만두가 버려졌을까요?


휘인의 아빠는 일을 하지 않았다. 복잡한 가계도를 가지고 있는 휘인에게 엄마는 존경스럽고 미안한 존재였다고, 엄마가 일을 하고, 아빠가 놀고 있는, 대화 없는 그 공간에서 휘인은 외로웠다고 했다. 그리고 입양한 믹스견 만두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족이었다고.


-아버님은, 만두를 싫어했나요?

울던 휘인은, 아버지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조차 아깝다고 휴지로 눈물을 걷어냈다.

-그 새끼는요, 선생님 죄송해요 제가 아빠라고 부르기도 싫어서요.

-네, 괜찮습니다.

-만두 좋아해요. 그런데, 저하고 싸우면 만두에게 화풀이해요. 만두에게 쏟아내는 아빠 말이 나에게 하는 말이에요, 저는 알아요.


위로할 수 없었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이미 나를 닮아 있었다고 1편에서 나는 말했다. 심리학 용어가 아니더라도 이제는 그림자라는 단어를 다 알고 있다.  그림자는 본능적이고 비합리적이며 투사적 경향이 있다. 이러한 투사는 자아와 현실세계 사이에 두꺼운 환각을 형성하여 개인을 고립시키고 손상시키는데, 나와 닮은 자를 보면 숨어있던 그림자가 발현이 돼서 괴로워지는 것이다.


나는 책을 출간하고, 은밀한 상담실을 오픈했다. 전국 각지에서 00정신과, 00상담실 이라고 써있는 곳을 못 가는, 아직은 마음이 아프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찾아왔다.

그 내담자들은 나를 닮아 있었다. 인생 사는 거 다 비슷하다해도, 가끔은 무서웠다. 남편이 백수고, 남편이 노름을 하는 거..들어 줄 수 있다. 역전이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데, 휘인은 내게 아들이었고, 만두는 아랑이었다. 아들로 보이는 휘인이 울고 있을 때, 나는 이미 그녀의 아버지가 미워지고 있었다.

상담자라 하면, 중립의 입장이어야하고..

개뿔, 모르겠다.


-선생님, 만두가요. 장염이래요 물이 먹고 싶었을 거예요. 빗물이 고여있는 웅덩이 물을 먹었나봐요.

선생님...만두가요...


중립이어야 하고, 역전이를 당해서는 안되고...

개뿔, 모르겠다.


나는 휘인이 어깨를 감싸고 엉엉 울었다.



우리 아랑이는, 눈이 사람 같았습니다. 시츄가 사실, 시크한게 맞습니다. 특성이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랑이는 엄마가 장애인이어서 업어서 못 키웠던 아들처럼, 목줄 잡고 산책 시켜주지 못하는 나를 따라 드라이브만 했습니다. 그렇게 나를 위해 오줌을 참고, 과외 할 때마다 내 다리 밑에서 잠을 잤던 눈이 사람같았던 아랑이는, 트럭에 치어 죽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휘인이가 보고 싶습니다.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랑이가 보고싶습니다.

 


[그녀의 반려견, 만두이야기]는 3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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