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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bina Jun 08. 2020

그림이 주는 위로

붓에 초록을 입히다.

끄적이다.


-사는게 다 그렇지 뭐,

-작가님도 그런 말 쓰세요? 상담하시고, 글을 쓰시니 단단한 분인줄 알았어요.


아침부터 요란하게 카톡이 울린다. 의도하지 않은, 생각하지 않은 일들은 세상 곳곳에서 어디든 벌어지고 있는데, 그 일이 나만 비껴가라고 기도하는 안일한 이기주의였다.

나에게 있어, 카톡에 대한 예의는 하나의 글이 던져지고, 시간차가 주는 답답함을 심리적으로 읽어내고 미리 위로하는 일이다.

던져진 안타까운 사연에, 위로하고, 시간차가 주는 답답함에 미리 장문으로 써 놓고, 그래도 부족하면 행간이 주는 의미를 분석해서 마음을 읽어낸다.

생각해보면,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상담사의 교만이다.


그렇게 힘들게 씨름하다보면, 어느새 마음에 이끼가 끼고, 하고 싶은 말은 목구멍에 머물러 카톡 창에 제대로 피력하지도 못한다.

마치 찐득한 이끼가 늪이 되어 나의 손가락을 잡아 당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술에 취한 사람이 주사를 부리는 것처럼, 나를 위로해주세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잘살고 있는지 묻는다. 사실은 위로받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데, 그 것 역시 걸리는 항목이 많다.

나이, 지위, 역할, 그리고 겁쟁이...


결국 전화를 건 사람은 난데, 전화를 통해 다시 상담을 해주고 있었다. 그러다가 답답한 마음 은근히 털어 놓는다는 것이...-사는게 다 그렇지 뭐.

알아들었으면 좋겠는데, 그렇지도 않다. 문장으로도 오해하고, 말로도 오해하는 시대, 어차피 나도 나를 모르는 인생이라 [다, 그렇다]는 애매한 말로 [나 지금 힘든데, 내 말 좀 들어줄래]를 어떻게 알아들을까.


내담자에게 명료화하라고 그렇게 이야기 하면서 정작 나는 내 마음 하나 똑바로 표현하지 못 한다는 것인데,

그렇게 자기연민과 자기비하를 쏟아내면 나는 그림도구를 다 꺼내 놓는다.

-작가님, 그림 너무 잘 그리세요. 배웠나요?

-아뇨, 유튜브 보면서 독학으로 그리고 있어요... 초보 실력입니다.

-초보같지 않아요, 너무 잘 그리셨어요.

이미 나는 잘 그렸다는 칭찬에 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감사해요, 제가 그려드릴까요?

병적이라 하는 것은 내가 먹는 음식을 쳐다보면, 같이 먹어야 하고, 돈이 없다면 꿔줘야 하며, 없다는 것은 채워줘야 한다는 파워풀한 giver의 정신이다.

이미 멘토의 조언으로도 [원하지 않으면 주지 마세요] 는 내 마음에 안착한 명언인데, 멀었나보다. 주고 싶고 주고 싶고, 주고싶다.


선물로 주기로 한 그림을 그리면서, 붓에 초록이 더해지고 캔버스에 그 초록이 번져갈 때, 들려온다.

그 소리는 그려야 들리는 소리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겠지.

'왜, 그러는데...?'왜, 그렇게 힘든데...?'

'

'

-나는 초록색이 너무 좋아...

붓에 초록을 묻힌다. 한 번, 두 번, 세번,

생각했던 것 보다 그림이 진해지고 있었다.

'왜, 뭐가 그렇게 힘든데...?

'

'


-나는 자연이 좋아.

심호흡을 하면서 창문 너머로 시선을 옮겨본다.

은밀한 상담실 맞은 편 경찰청 별장은, 녹음이 지나쳐 너무 진한 나무의 향기가 나의 가슴을 향해 열대야처럼 뜨겁게 뿜어댔다.

'봄이 좋아, 사실 나는 초록보다 연두가 좋아. 여름은 초록도 더워보여, 답답해...'


은유적인 표현을 좋아하면서도 겨울을 대체하는 언어가 [시련]이기에, 시련의 끝에 새싹이 돋아나는 봄을 [희망]이라고 대체하는 나는, 봄의 색을 좋아했다.


붓에 연두를 더해본다. 한 번 두 번, 역시 연두는 [숨]이 있다.


발란스가 맞지 않으면 어떠리. 진한 초록과 연한 초록이 만나, 나를 위로해주면 됐지.


'그래, 진하게 사랑도 해봤잖아. 진하게 돈도 벌어 봤잖아. 연하게 가끔은 흐리게 아니, 빈 공간이어도 되잖아.

인생은 그런거야. 진했다가 흐렸다가...'


-사는게 다 그렇지 뭐.


붓에 더해지는 초록과 연두가 나의 밤을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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