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전화 통화로도 울상이 보인다.
-무슨 일 있으세요?
-카톡으로 하늘 사진을 보냈더니, [넌 한가해서 좋겠다. 난, 바빠서 하늘 볼 겨를도 없어] 이렇게 왔어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어요. 하늘이 예뻐서 보냈을 뿐인데...
-기분 좋은 마음으로 보냈던 사진을 다시 봐주세요... 어때요?
-사진 찍고 보냈을 때랑 달라요.
-어떤가요?
-우울해요.
그럴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타인에 의해 웃고 울고, 타인에 의해 조율되는 트랜서핑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같은 시기에 상담을 받고 있는 에니어그램 8번 K, 2번 M, 6번 E는 공통점이 있다.
이름은 있지만 호칭이 없는 가슴의 사람들을 품고 있다는 것.
부르고 싶지만 부를 수 없고, 부르고 싶지만 용기가 안나는 호칭이 있다. 그렇게 머뭇거리는 삶을 살면서
실패라고 생각했고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과거가 그녀들에게 땅을 보게 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녀들은 보인다고 했다. 초록 초록 나무가 하늘하늘 꽃잎이 그리고 눈이 부셔서 눈물이 나는 하늘이 보인다고 했다. 땅만 보고 걸었던 이유가 그녀들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막연했던 미래가 하늘 길이 열리듯 시원하고 너무 화창해서 그녀들은 자연을 보고, 자연에서 놀고, 하늘을 마음껏 쳐다본다고 했다.
뭐 해요?
K는 창가에서 하늘을 보고 멍 때린다고 했다. 한참을 생각해야 답이 보인다는 그녀는 창가에서 논다고 했다.
뭐 해요?
자신이 예쁜 줄 아는 거다.
M의 사진에는 하늘만큼 예쁜 그녀의 피사체가 있다.
사진을 제대로 찍는 줄 아는 거다.
M의 사진에는 스토리가 있다.
뭐 해요?
머리형이다. 집을 사랑하고 집 이야기를 글로 쓰는 그녀의 사진은 아이들이 있고
캠핑장에서 읽었다는 책의 제목이 툭 걸려있고, 하늘 사진에 자신의 집을 살짝 걸어 두기도 한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뭐, 하고 살았는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잘 살았다고 건네는 위로에도 울어버리는 큰 눈망울에서 나는 읽었다.
뭐, 하고 살았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땅을 보고 걷고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지었다면 그건, 뭐 하고 살아야 할 그녀들에게 시대와 부모가 만든 우상으로 제대로 [악] 소리 조차 내지 못했던 것인데,
나는 궁금했다. 그녀들이 뭐 하고 있는지, 그녀들이 자꾸 뭐를 했으면 좋겠어서 물었다.
과거 그녀들을 감싸고 있던 시대의 왜곡된 관념, 우상을 제거하고 제대로 뭐를 했으면 좋겠어서 물었다.
지금... 뭐 해요?
순리를 거스리는 것을 역리라고 한다면,
하늘이 주는 느낌이 벅차고 그냥 감사해서, 자연을 보고 자연과 놀고 하늘을 찍는 행위가 역리일까?
돈을 벌어야 하는 나이,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나이,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 나이에 아이처럼 울고 아이처럼 웃고 있다면, 역리일까?
舍己而敎人者逆, 正己而化人者順. 逆者亂之招, 順者治之要.
사기이교인자역, 정기이화인자순. 역자란지초, 순자치지요.
자신을 버려둔 채 남을 가르치려 하는 것은 순리를 거스르는 짓이다. 자신을 바르게 한 뒤 남을 감화하는 것은 순리를 좇는 것이다. 순리를 거스르는 것은 화란을 자초하는 근원이고, 순리를 좇는 것은 크게 다스리는 관건이다.
여기서 순리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이치를 말하고, 역리란 물이 아래에서 위로 흐르게 하는 인위적인 에너지를 말하는데, 그녀들이 아프다고 고백했던 삶의 궤적은 역리일까?... 그렇지 않다.
그녀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바르게 하고 이제 남을 감화시키는 순리를 찾아가는 여정의 발자국을 뗐을 뿐이다.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에서 꽤 많은 우상의 종류가 나온다.
기독교적으로 우상이라고 한다면 , 하나님 이외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신의 형상을 의미하지만, 태생대로 살지 못했던 사회가 만들어놓은 관념이나, 부모가 만든 고집스러운 삶의 방식도 우상이라고 할 수 있다.
팀 켈러가 정의한 우상의 종류를 읽어 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체득한 삶의 양식이 우리를 얼마나 좌지우지하는지 알 수 있다.
문화적 우상-군사력, 기술 발전, 경제번영
전통 사회의 우상-가정, 고된 노력, 도덕적 가치
서구 문화의 우상- 개인의 자유, 자아 발전, 개인적 풍요, 성취
지적 우상-이데올로기
개인의 우상-로맨틱한 사랑, 돈, 권력, 성취, 인맥, 정서적 의존관계, 건강, 몸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이라고 해도 우리는 너무 많은 관념과 삶의 양식을 부여받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대다수가 하고 있는 가치를 따르지 않으면 순리를 거스르고 있다고.
내가 만든 신이 우상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신을 만들고 그 신에게 속고 있을까?
얼마를 벌어야 정상이고, 내 아이가 몇 등을 해야 정상이고, 말 안 해도 알아야 한다는 꼰대 상사에게 어느 정도의 예의를 갖춰야 정상이며, 몇 평의 공간이 심리적 면적을 넓혀줄 것이며, 어떤 고백을 들어야 로맨틱한 사랑인가 말이다.
큰 창가에서 하늘이 뿜어대는 기운을 느끼고, 아메리카노 향이 후각을 자극해서
"오늘 기분 어때?" 오글거리는 대사 날리며 어깨에 살포시 기댈 때 , 주변을 의식하지 말자.
돈 벌어야 할 나이에 소소하게 달리기도 아니고 뜀박질하면서 길가에 핀 꽃에 코를 들이대며 킁킁댈 때, 주변을 의식하지 말자.
지금도 안정적인데, 뭘 더 바라냐는 시선에 굴하지 않고 주택을 그리고 집을 짓고 파도가 넘실대는 지중해 쪽빛 바다를 그릴 때, 머뭇거리지 말자.
타인이 만들어 놓은 신에게 이미 너무 많이 아파했고, 이미 너무 잘 살아왔는데 그래서 지금부터 타인을 감화시키는 큰 꿈을 그리고 있는데, 머뭇거리지 말자.
그렇다면 뭐가 역리일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을, 아래에서 위로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역리는 무엇일까?
미움받지 않기 위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내 기준을 그들의 기준에 맞추는 것, 슬픈데 울지 않는 것, 기쁜데 웃지 않는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신, 내가 가공해서 다시 만들어 놓은 신이 자꾸 거짓 인생을 살라고 시킨다면 말이다. 역리를 이끌어내는 우상일 뿐이다.
K와, M과, E는 공통점이 있다.
우상에게 절하며 넙죽 대는 비굴함에서 벗어나 이제 막 솜털 뽀송뽀송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난, 뭐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K와, M과, E는 공통점이 있다.
지나가다가 보이는 자연에 환호성을 지르고, 지나가다 보이는 물건 사주고 싶어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너무 고마워서 준다며 부끄럽게 선물 건네는 하얀 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녀들과 나는 닮아있다.
지나가다 보이는 하늘이 벅차고 아름다워서 핸들에 붙어있는 볼 그립 놓치면 위험하니, 갓길에 차를 세우고 하늘을 찍고야 마는 [순간을 사는] 어른 아이.
그리고 그녀들에게 수줍게 사진 한 장 건넨다.
뭐 해요? 나는 하늘 보는데...
순리는 무엇이고, 역리는 무엇일까?
깊어가는 가을 하늘에 [와...] 탄호성 보태는 나는 지금 순리대로 사는 걸까...
오늘, 하늘이 참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