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사물

by Sabina

드라마 청춘 기록에서 박소담이 말했다.

-나는 주기만 하고 받는 것이 어색해. 결핍이지 뭐.

그녀의 남자 친구 박보검은 말했다.

-결핍이 과잉보다 낫다. 결핍은 무언가를 하도록 유인하니...


그림을 그리는 아버지로 인해 돈의 부재를 경험한 박 소담은 부모의 이혼으로 유년시절을 잃었다고 표현했다.

안 해 본 아르바이트 없고, 사회적 서열에 고개 숙이고 살았던 그녀는 꿈을 꾸는데도 비용이 필요하다고 표현했다. 나는 읊조리는 독백을 들으면서 부모의 이혼과 가난이 청춘의 얼굴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았다.

그 청춘의 얼굴이 나의 얼굴이고 내가 살아온 궤적이라서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나 드라마의 주제가, 박 소담의 독백에 묻혀버렸다.

청춘 기록 박 소담

공부를 많이 하고 지식이 쌓인 아버지는 대물림처럼 세상을 하직하고 방구석 정치인이 되어 세상 [탓]만 했다.

아버지에게는 [돈]보다 이데올로기가 먼저였고, 가족보다 자신의 인생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 엄마는 미군부대 웨이트리스에서 공장으로 공장에서 기사식당 주방으로 옮겨가며 얼굴의 분칠을 지우고 성난 팔의 근육으로 쟁반을 나르고 냄비를 나르고 도마 위에서 칼질을 했다.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사람이 늘어나고 돈이 쌓인다.

기사식당으로 성공한 엄마는 두 차례 식당을 바꾸고 식당의 규모를 키우며 명성을 얻었다.


세상 [탓]을 하던 아버지는 그 많은 엄마의 [돈]을 만져보지도 못 하고 간암으로 죽었다.

외로우면 바람을 피울 만도 한데 사랑, 아버지 하나면 됐다며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에 자는 맛집 주인의 이력을 고스란히 지닌 독립적인 여자였다.

내 나이 스무 살에 사랑, 그 사랑에 목숨 걸고 엄마를 잊고 있을 때, 엄마는 통장을 불리고 새마을금고 우수고객으로 상을 받는 요즘 유행하는 소위 말해 서민 갑부가 되었다.


소외된 계층이 처한 지옥 같은 삶을 음울한 동화로 그려낸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을 읽을 때, 멀고 험한 길을 돌아 나의 가난은 끝났으니 책의 이야기에서 눈물이 나고 한숨이 나는 구절들을 스킵했다.

압축해서 만든 근대의 산물이었던 [아파트 공화국]이 박정희의 꿈이고 그 이념을 계승한 군사정권은 매력적인 재화, 아파트만 쏘아 올릴 때 아버지는 말했다.

-자본주의가 인간을 망칠 것이다. 더 외로울 것이다.

나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에서 아버지를 만날 때 눈물이 나고 한숨이 나오는 구절을 스킵했다.


자본주의가 주는 혜택을 받고, 돈이 주는 쾌감을 느끼는 나이가 20대여서 속이 상할 뿐이고, 돈이 없어서 대학을 자퇴하고 나서야 엄마에게 빌붙어 살 수가 있어서 아쉬울 뿐인 나는 황금만능주의 폐해를 설명하는 책들을 스킵했다. 그제야 [돈] 맛을 알고, 남자를 알고, 나만 보이는 두 번째 사춘기를 호되게 앓을 때 엄마 [돈]을 물 쓰듯 쓰는 오빠들에게 반항하듯 가장 가난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막 개발 붐이 일기 시작하는 1970년대의 난쟁이 가족에게 아파트는 무지개고, 천국이었다. 나의 유토피아 역시 아파트였고 아파트를 꾸미는 멋있는 인테리어가 가난을 잊게 하는 원동력이었는데, 장애인 여자와 결혼 해준 가난한 남자는 돈을 벌지 않았다. 전 남편에게 아파트는 옮겨 갈 때마다 [돈]이 불어나는 투기의 대상일 뿐이었다. 가족의 웃음이 머물고, 몇 개 안 되는 조명으로도 따뜻한 온기를 발하는 행복한 시간은 너무 짧았다. 한 동네에서 여섯 차례 아파트를 옮길 때마다 부족한 자원 보태주는 엄마는 팔의 근육을 잃었고, 아들의 사업 자금을 미리 유산으로 준 엄마는 부풀어 있던 통장의 [돈]을 잃었다.

나의 유토피아였던 아파트는 싸움으로 얼룩지는 온기 없는 지옥이었고, 엄마의 유토피아였던 [돈]은 꿈에서만 만질 수 있는 희미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자본주의, 황금만능주의는 사람들을 외롭게 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에서 한숨이 나고 눈물이 나는 구절에 줄을 그었다.

아파트는 진화를 거듭하며 빌리지나 맨션이나 캐슬로, 다시 초고층 타워 팰리스로 변할 때 사람들은 욕망의 해소로 얻은 빌딩 건물주가 되어 [100억] 자본가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고급빌라들이 들어선 무지개 마을, 불곡산 자리에서 골목길까지 순례 말대로 꽃들이란 꽃은 다 피고, 찬 바람 속에도 볕은 뜨거웠다.(...) 애쓰면 애쓸수록 가난은 올가미처럼 그녀와 그녀 가족들을 죄어들었다.

그때 나는 , 공지영의 <<부활 무렵>>을 읽었고, <<난쟁이가 쏘아 올린 공>>에서 행복동이 반어적 표현인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난쟁이 아버지가 굴뚝에서 자살했을 때, 오열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길거리에서 죽은 언니가 떠올라서 울었고, 미리 받은 유산으로 엄마를 무시하는 또 다른 오빠가 미워서 울었고, 앞 날을 예견했던 백수 아버지와 돈을 벌지 않으면서 아파트를 옮겨가서라도 돈을 불리자는 무능력한 남편이 떠올라서 울었고, 근육이 삭아버려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는데 감자탕 한 냄비를 가져온 엄마 때문에 울었다.

이제야, 70년대의 아픈 시대상이 보이고 이제야, 아버지의 한숨이 이해가 되고, 이제야 엄마의 팔이 보이니 속울음이 터져 버려 꺽꺽 울어버렸다.


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많은 [돈]을 추구하는 그 마음이 가족을 와해시키고 멀어지게 했다.

우리 가족은 말이 없고, 우리 가족은 멀어졌다.


청춘 기록 드라마에서 그림만 그리던 박소담의 아버지는 성공했다. 유년시절을 잃었다는 딸에게 무릎을 꿇고 진짜 용서를 바라는 아버지를 보면서 환영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못해주던 나의 아버지가 백수여서, 장애인 딸이 비 맞고 넘어졌을 때 뛰어와 안아줄 시간이 있던 그 장면이 환영처럼 보였다.


우리 가족에게 아파트는 무엇이고 돈은 무엇일까

그렇게 돈을 좇아 살던 엄마는 건강한가.

그렇게 돈을 좇아 살던 나는 행복한가.


아파트라는 닫힌 주거공간에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소외된 감정을 나누지 않는 물화의 비극을 경험하고 알았다. 개인의 밀실에서 [돈]만 있으면 된다는 이기심을 부풀리고 부푼 이기심이 터져버리고 가족이 흩어지는 경험을 해서야 알았다.

사적 체험과 기억으로만 채워지는 밀폐된 공간에서 [돈]으로 시키고 [돈]으로 사는 [돈]의 세계는 모래성이라는 것을.

아파트가 없고, 낡은 주택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에서 주름 살 가득한 얼굴로 옆 집 마당까지 쓸고 있는 노인의 지혜를 볼 수 있고, 창문을 열고 아침인사를 건네는 나의 목소리에 내가 가진 쓰레기 대신 치워줬다는 너스레 떠는 앞 집 아저씨를 볼 수 있다.


왜 몰랐을까.

[돈]보다 중요한 것이 그 흔한 사랑이라는 것을.

사랑, 그 흔한 것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훈아처럼 [테스 형]을 외치지 않아도 되고,

건강한 모습으로 옆에만 계셔도 든든한 분이 부모라는 것을 알았다면, 드라마 [청춘 기록]에서 박소담만 보이지 않을 텐데...

이제라도 우리 가족의 사물이 [돈]이 아니라 몇 개의 조명으로도 온기 가득한 공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따로가 아니라 같이가 그리운 요즘이다.

박소담 말처럼,

결핍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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