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usband의 사물

믹스 커피.

by Sabina

차가 낡아서 더이상 운행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바꾸는 시대는 구석기 시대의 산물이 되었고.

집이 작아서 이사가는 편리추구의 시대는 욕구 충족을 위해 카페처럼 보이는 독특한 인테리어 르네상스시대를 맞아 집집마다 예술 혼 가득한데.


남자는?

여자는?

사람도 취향따라 고르고 지겨워지면 헤어지나?


새 차를 탈 때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첫 것의 느낌이 쾌적함으로 다가오고.

내 취향으로 꾸며진 인테리어 가득한 새 공간에서 내가 만들어낸 창조는 새것-욕망이 되어 나의 수치와 졸렬함이 삶의 꾀죄죄함을 잊게 했다.


나의 첫 책,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에서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으로 등장한 나의 남편은 도박과 백수라는 명예롭지 못한 프레임을 썼다.

이혼의 명백한 이유 였다. 장애인 아내가 버는 돈을 흥청망청 써버리는 도박과 백수 생활은 내가 그를 쳐내기에 합당했다.

아직도 못 잊는다는 이유로 연락을 해 오는데,

새것-욕망 가득해서 졸렬하다고 자책하는 마음이 드는 오늘, 그의 사물로 환치하고 다시는 그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물건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과 행복은 그것의 효용가치와 상관이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간, 과외를 하는 시간, 하루에 몇 시간을 해야 어깨의 뻐끈함이 견디고 수업을 하고 있는데 머리는 이미 졸고 있는 뇌를 쉬게 할 수 있을까.

오후 3시에 시작한 과외 지도는 밤 12시가 넘어야 끝나니, 그때 나는 종이 컵에 타주는 믹스커피의 달달함에 잘 살고 있는 운치를 내고, 커피를 먹었으니 뇌가 깰 수 있다는 착각으로 하루 하루를 견뎌냈다.


그도 좋아했다.

놀고 있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근거리 아이들을 굳이 차 운행을 해주고, 아이들이 북적대는 시간에는 책을 보고 설거지를 하는,[역할만 아내]인 그는 믹스커피를 좋아했다.

믹스커피가 한 개에서 두 개를 타야 잠이 깨는 건 아니다. 커피의 진하기에 따라 각성이 되는 건 아니다.

믹스커피의 효용가치는 카페인 가득해서 각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달달한 맛이 주는 혀의 쾌감과 적절하게 녹아있는 설탕과 프림이 마치 탄수화물을 대체하고 먹는 [나의 아저씨]의 아이유 식단일 뿐이다.


그는 종이컵 한 잔에 믹스커피 3개를 털어 놓고 마셨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는 밤 12시부터 아이들이 지나고 간 자리에서 컴퓨터 세상과 접속을 하는 그의 믹스커피는 진해야 했다.


밥보다 커피를 좋아했을까.


그러고 보니 종이컵을 들고 담배 한 대를 손가락에 끼고, 근육 터질 것 같은 건강한 허벅지 드러난 청바지를 입고 내 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을 닮은 모습으로 서 있던 곳이 자판기 앞이었다.

그의 30대는 자판기 앞에서 [서 있는 모습만 영화배우]였다. 지금은 사라진 자판기를 길에서 발견하면 믹스커피를 사랑한 그가 떠올라 졸렬한 마음 들킬 까 과속으로 지나치는 그 곳이 자판기가 있는 곳이다.

이제는 자판기의 효용가치도 떨어졌을까, 종이 컵에 떨어지는 커피 둘, 프림 둘, 설탕 셋의 황금비율 달달한 커피를 길에서는 찾을 수 없다.


'자동차'나 '집'과 같은 소유물이 과거의 가난을 잊게 하는 사회적 서열이 되어 갈 때, 전 남편은 이미 8년째 놀고 있었다. 집을 바꾸고 차를 바꾸는 행위가 무의미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다리역할, 가끔 도와주는 아내 역할, 근거리 학생을 태워주는 차 운행의 역할의 효용가치가 사라지는 것일까. 심리학을 배우고 마음을 더 잘 이해할 것 같은 시기에 나는 그와 헤어졌다.


<<현대 세계의 일상성>>에서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땅이 있고, 일상이 있고, 땅바닥에서 소란이 일어나며 사람과 물건들을 휩쓸어가고, 이어서 상품의 교환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 묻혀버린다.
그 표면의 밑에 무의식의 지하가 있고, 그 위에는 의심과 신기루로 가득찬 지평선, 즉 현대성이 있다.


자판기가 사라진 곳에서 현대인들은 커피 원액 가득 들어간 아메리키노 투 샷을 먹고 있다. 양 손에 다 들려있는 짐 때문에 종이 컵 입에 무는 낭만따위는 상품의 교환이라는 프레임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의 일상은 이제, 설탕과 프림이 들어가 있지 않는 커피 원액을 원한다.

나의 일상은 이제, 다리역할 대신 해주는 백수 남편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믹스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서구적인지, 아메리카노 향 가득한 카페까지 운영하는 신기루로 가득찬 지평선위에서

나는 무의식의 지하세계를 인정하고 싶지 않는 현대성을 살고 있다.



-피곤해서요.

-당 떨어졌나봐요.

오늘은 설탕이 들어 간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손님에게 카페라떼에 설탕 시럽을 눌러주면서 생각했다.

'단 거 먹는다고 피곤이 풀리지는 않아요...'

커피의 효용가치를 머리로 따지고 있는 이성적인 날, 왜 전 남편이 떠올랐을까.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는 내가, 아직도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인 전 남편을 용서하지 못 해서 오는 괴리감때문에 지평선에서 자꾸만 무의식 지하세계로 내려가고 있다.


언제쯤이면 그를 잊을까

언제쯤이면 믹스커피를 봐도 그가 떠오르지 않을까

언제쯤이면 자연스럽게 현대를 살아가는 일상성을 유지할까

언제쯤이면 상담사로 작가로 살아가는 서열에 익숙해질까


나는 언제쯤이면 무의식의 어둠을 깨치고 나올까.

믹스커피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현대성이 소용돌이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가 되어

아무생각없이 우아하게 커피의 향에 취하고 싶다.


내 머리의 시끄러운 소음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믹스커피 그 남자를 의식적으로 지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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