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언어 유희

우리 바깥의 우리

너... 2반, 이반이지?

by Sabina

윤슬이라고 한다.

햇살이 물 위에 잘게 부서져 물살이 움직일 때마다 작은 파편이 입자를 더 잘게 쪼개고 마치 하얀 보석이 물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밤 달빛이 너무 환해서 물 위에 화려하게 비치어 흔들리는 잔물결. 그것이 윤슬이다.

그녀는 윤슬이었다. 작은 보석, 윤슬...


고등학교 1학년 교복자율화 시절, 그녀는 여전히 교복을 입고 왔다.

여고라는 타이틀이 없다면 남자로 오인할 수 있는 짧은 커트머리에 늘 교복 치마 대신 교복 바지를 입었다.

여름이어도 겨울이어도 늘 바지를 입었던 그녀는 자율화가 되었는데도 사복을 입지 않았다.

그녀가 입고 오는 교복 바지는 남색의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그 모양새.

지금으로 말하면 슈트 핏 제대로 살아 여자가 봐도 설레는 여자, 이반이었다


그녀와 나의 인연은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이 필연이 되어 뜨겁게 사랑하는 로맨스 소설 뺨치는 스토리 가득하다.




그때 나는 사춘기가 막 끝난 고등학교 신입생이었다.

명절에나 입는 아껴두었던 옷 꺼내 입고 계단 가득한 정문을 들어서면 붕어가 혼인을 했는지 혼인색 가득한 붕어들이 넘실대고 자갈 틈 사이 초록색 이끼가 가득한 연못이 나온다. 연못을 지나면 사시사철 푸르른 아름드리나무가 긴 계단 잘 올라왔다고 안아주고 조금 더 걸어가면 몸이 불편한 나에게 들어맞는 건물 입구 바로 옆이 1학년 2반 교실이었다. 사물함에 넣을 수 없을 만큼 가방 가득 참고서를 가지고 다녔다.

목발을 짚는 연약한 하체가 어깨에 매달린 가방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나 보다. 어쩌면 교실까지 잘 걸어왔다고 안도했는지 교실 앞 복도에서 대자로 넘어지고 가방의 낡은 물건, 오래된 참고서들이 해방감을 누리듯 다 쏟아져 나왔다.

아이들은 멀뚱댔다.

그때 달려온 친구가 그녀인데,

"너, 2반이지?"

가방보다 소중한 것이 나의 몸이겠지.

"다친 데는 없니?"

따뜻한 목소리를 따라 올려다본 그녀는 타이트하게 조여진 교복 바지가 터질 듯 무릎을 구부리고 나를 일으키고 있었다.

내가 무거웠나 보다.

가느다란 그녀의 손목에 정맥인지 동맥인지 모를 혈관이 진초록색이 되어 터져 나올 듯 그녀가 용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용기에 친구들이 그제야 수치스러운 낡은 물건 가득한 나의 물건들을 가방으로 정리해주고 있었다.

"아... 뭐야..."

그날이 아마 김치 반찬 지겹다니 김치볶음을 싸주었던가, 반찬이 김치볶음 밖에 없냐는 볼멘소리에 돼지고기 송송 들어간 김치찌개를 싸주었던가.

가방 안에서부터 스멀스멀 빨간 액체가 흐르고 있었고

잘 도와주던 손길들은 화장실로 뛰어가 새로 산 자율복 옷에 묻은 김치 국물을 지우며 탓을 했다.

순식간에 나는 버려졌다.

"너, 2반이지? 나도 2반이야. 일단 들어가서 앉아. 내가 마무리할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 했다.

벌레 보듯 하는 친구들 틈을 지나 벌레처럼 작아진 나는 교실 구석에서 나오지 않는 눈물 짜내며 탓을 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장애인 탓, 엄마가 만들어 준 김치찌개 탓.


사춘기가 끝났던가.

철이 들었던가.

더 강해진 세상을 향한 비판은 일반적인 고정관념에 대항하는 철학자 수준인데, 나는 이반을 사랑하고 말았다.

남과 다르게 옷을 입고 남과 다르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남과 다르게 구석에 앉아서 책만 보는 그래서 여자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레즈비언, 이반이라고 불리는 그녀를 사랑하고 말았다.

이반: 이성연애자들을 ‘일반(一般)’인이라 칭하는 것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로, 양성애자,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적 소수자를 통칭하는 단어다. 이 단어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게이 커뮤니티의 동성애자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동성애자들이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하다가 ‘이반(二般)’이 ‘이반(異般)’으로 의미가 바뀌어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반 [異般] (대중문화사전, 2009., 김기란, 최기호)



남과 다르게 살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이야 가치관이 다르면 소신 있다고 표현하는 시대지만, 1985년 그때는 말 그대로 산업화 물결에 아파트가 공장처럼 지어지고 통금이 사라지며 교복이 사라지는 것이 자율화인 줄 알던 시대였다.

획일화라는 단어를 경멸한다는 정치인들은 교복 대신 자율복이 주는 자유를 논하고 죽을힘을 다하여 국민을 위해 살고 있으니 믿어달라고 했다.

선동하는 자의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남과 다른 것일까?

그녀는 교복을 사수했다. 자율복을 입으라는 선생의 질책에

"교복이 자율복입니다."

그녀를 벌레처럼 보고 그녀의 등 뒤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아이들은 말했다.

"쟤, 이반 이래며?"

"응, 2반이야."

"아니 이~반이라며? 여자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불합리한 자리에서 목발을 무기처럼 사용하던 내가 그녀의 도움을 받지 않았던가.


"너희들이 봤어? 이반인지 확인해 봤냐고?"


일단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험담 하는 아이들이 기가 죽은 것은 분명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이반의 그녀가 다리가 네 개인 장애인이라고 그래서 이반의 그녀가 장애인의 빨간 김치 국물을 탓하지 않고 장애인의 가방을 들어주고 장애인이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에 맞추고 있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느낌이 그녀를 옹호했을까?

그녀가 주는 호의에 감사해서 그녀를 옹호했을까?

아니면

이반이라고 불리는 그녀의 진짜 그녀를 보지 못해서 그녀를 옹호했을까?


점심을 먹고 나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운동장을 걷고 구석에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몇 명은 오후의 햇살이 주는 노곤함에 꾸벅꾸벅 졸기도 한다.

인어가 살기도 하고 금붕어가 혼인을 한다는 설화 가득한 여고 연못에도 아이들이 모여 앉아 졸고 있다.

연못의 물결 위로 태양 빛이 강하게 내리쬐면 작은 파편이 보석처럼 빛난다.

윤슬이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윤슬을 바라보면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붕어들도 아름드리나무 아래 어둡게 만들어진 초록색 이끼 가득한 그늘로 들어가서 졸고 있다.

남과 다르게 걷는 나와, 이반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녀는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 바깥에서 우리끼리 대화를 했다.


붕어도 피해 들어간 이끼 많은 구석에서 그녀와 나는 우리끼리 대화했다.

나는 그렇게 소문이 자자한 그녀와 대화하고 같이 걷고 김치 국물 가득한 도시락을 까먹으면서 아이들의 울타리 밖, 우리 바깥에서 살았다.


나는 그녀를 제대로 옹호하지 못했다.

그때 그 누구도 그녀가 이반이 맞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그녀는 나 이외에 그 어떤 여 학생과 만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건물 입구에서 아주 멀리 있는 7반 친구가 물어왔다.

"너 2반이지? 너랑 어울리는 그 여자애 이반이라던데..."

아이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내가 이반의 그녀가 되기에는 부족해 보였나.

제대로 그녀를 옹호하고 싶으나 대변할 기회조차 없이 그녀는 조용했고 그녀는 한결같이 나를 도왔으니,

남자처럼 보여서 사랑한다고 느꼈던 감정은 진한 우정으로 변해갔다.


사실, 이 글은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성경적이지 않고 남과 다르다는 그들의 개념을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시대가 너무 변해서 여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영화에서 나는 그들이 거니는 배경만을 찾아보고, 그들이 나누는 철학적인 언어만을 듣기도 한다.

내가 가르쳤던 제자들은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믿는 내게 그런 부류의 사람을 옹호하냐고, 그런 부류의 영화를 보냐며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명제, 이율배반적이라고 따지기도 했다.


사실,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 바깥의 우리를.


사람을 보는 시선이 따뜻하고 사물을 보는 관점이 날카로운 김소연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바깥의 우리

우리는 서로의 뒤쪽에 있으려 한다/등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은 아니고/다만 등을 보고 있으려고/표정은 숨기며 곁에는 있고 싶어서/옆자리는 비어있고/ 뒤에 서서 동그랗고 까만 팔꿈치를 쳐다보면서/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등 뒤에서 험담이 들려올 때/꼭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제대로 듣지 못하면서/"말하는 것좀 봐" "말하지 못하는 것 좀 봐"/단 하나의 사건에서 모두의 죄들이 한꺼번에 발각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사랑하고 아꼈던 그녀는 결혼을 해서 아이가 무려 넷이나 된다.

짧은 머리가 자라 긴 생머리로 대학생활을 했던 그녀는 윤슬처럼 빛나는 외모 덕에 잘 나간다는 복학생과 아주 빠르게 결혼을 했다.

나는 아직도 그녀를 사랑한다.

김치 국물 범벅이 된 나의 참고서를 물로 닦아주던 그 하얀 손을 기억하고,

긴 계단 오르다 숨이 차면 예쁘게 물든 낙엽 주워올 동안 기다리라고 말했던 그녀를 기억하고,

아이들이 등 뒤에서 나를 힐끔대면 내 등 뒤로 걸어가 나의 몸을 가려주었던 그녀를 사랑한다.


말할 때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때 수군대는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말해야 할 때 말했고, 말해서 안 되는 말을 옮기지 않았다.

그녀는 이반이 아니라 이반이라고 불리는 머리스타일을 가졌을 뿐이고, 여자를 좋아하는 레즈비언이 아니라 여자를 이해하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김소연 시인은 무겁게 시를 이어갔다.

(내가 알던 나에 대한(내가 알던 나에 대한(내가 알던 너에 대한(내가 알던 나에 대한 (내가 알던 나에 대한/
우리 바깥에는 우리가/우리로부터 바깥으로 우리에게로/우리 바깥의 우리를/우리는 마주 보고 있지 않았다/마주:이것은 바라보는 걸 뜻하지 않았다/언제 단념하게 되는지 지켜보게 되는 걸 뜻했다(...)

익명의 모양으로, 가면을 쓴 얼굴로, 진심이 없는 말로 마주 보고 있지 않다.

등 뒤에서 걸어간다.

그리고 단념한다.

내가 알아버린 진실을 말하는 것을,

내가 발견한 아름다움을,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고백을,

말하지 않고

우리는 단념한다.


그리고 말한다.

"나와 너는 다른 것 같아."


오늘도

그렇게 또 한 명의 우리 바깥의 우리가 생성되고 멀어져 간다.

언어유희:
"너, 이반이지?"
유희에게 언어가 말합니다.
"응! 일반적이지 않은 이반(異般) 맞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빡이는 알고 있을까, 네 발 소녀의 고무줄놀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