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언어 유희

아름다운 노래, 아가서.

"아가야, 함께 가자."

by Sabina

프러포즈 없이 결혼한 아내는 평생 남편을 들볶았다. 그저 결혼해준 것이 억울하다고.

남자는 말했다지.

"잘 살고 있잖아."

여자는 말했다지.

"억울하다고!"

그래서 받아낸 프러포즈, 여자는 울었다지.

남자는 생각했다.

'감동했나 보다'

여자는 말했다.

"감동이 없어.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야!"



남자는 여자에게 프러포즈할 때 명심해야 한다. 고백의 3요소는 분위기, 선물, 그리고 진심이 담긴 마음이다.


주변 지인이라면 다 아는 나의 첫사랑은 부산 해운대에서 통기타를 연주했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어준다는 노래를 다 같이 부를 때 태양 빛이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노을이 아름다워서인지 하얀 팔뚝 드러내는 민소매를 입은 그녀들 틈에서 목발로 다져진 두꺼운 팔뚝 가리는 긴 팔을 입은 내가 느끼는 소외감 때문인지 나는 그들을 벗어나 해운대 모래사장을 혼자 걸었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면서 붉은 기운이 하늘에 펼쳐졌다. 태양의 붉은색이 흩어지면서 하늘은 경계를 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하늘은 분홍색과 보랏빛으로 펼쳐진다. 꽃노을이다. 하늘의 장관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얼굴에 곰보가 있고, 배가 불뚝 나온 남자가 고백을 해도 받아줄 것 같았다. 청년들의 무리에서 비틀스의 [Hey Jude]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들의 분위기도 절정이다.


"정미야, 여기서 뭐해.."

조개껍질 묶어주고 주디[Jude]를 외쳤던 그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왔다.

노을 아래에서 그에게 들려주는 나의 언어가 하필,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여서 분위기를 다 깨버렸고, Hey jude를 부를 줄 아는 달콤한 그의 목소리는 이내 교회 선배의 목소리로 돌아갔는데,

그때 그가 [아가서]를 인용하지 않았으면 모래사장에서는 무용지물인 목발이 쓰러질 듯 기울어질 때 손을 잡아줘야 편하냐는 그에게 업어줘야 편하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아가서 3장 10절]

하얀 팔뚝 드러난 민소매를 입고 있던 교회 청년들이 부러워할 만큼 나는 그의 목을 강하게 껴안았다.

굵은 팔뚝이 신경 쓰이고 연약한 하체가 신경 쓰여 밀착한 가슴 비비며 제대로 업히고 싶은 불안감을 드러낼 때,

그는 하늘이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분위기를 타고 진심이 담긴 선물 같은 고백을 했다.

아가야, 나만 믿어.

사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쓴 사랑의 노래로써 솔로몬 왕이 한 여목동에게 구애하고 결혼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나누었던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고결하고 신령한 정신, 곧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임을 밝히 알고 있을 것이다. 만일 정욕적으로 읽으면 아무 유익이 없을 것이다

스무 살 첫사랑이 통기타를 잘 치고 목소리가 그윽한 교회 선배인 것을.

믿음보다 안식이 필요했고, 누군가의 위로와 지지가 필요해서 예수님을 찾아갔던 그 시절 나의 첫사랑은 뜨거웠다.

믿음보다 사람을 찾아 구애했던 나는 아가서의 [아가]가 아름다운 노래의 줄임말인 줄 몰랐으니, 교회 선배가 던진 "아가..."앞에 사랑의 기준이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기를, 그래서 교회 선배가 보석 같은 내면을 볼 줄 아는 혜안이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나에게는 두고두고 회자되는 드라마 속 명대사가 있다. 그 대사를 떠올리기만 해도 그때의 장면이 눈에 선명하게 그려지고,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물론이고 그때 흘러나오던 드라마 속 ost 그리고 배우들의 목소리와 표정, 심지어는 눈의 미세한 떨림까지도 모두 한 장면으로 기억나는. 친구들은 낯이 간지럽고 오글거려서 싫다는 표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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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연인]에서 곤경에 처한 김정은을 구하면서 박신양이 외쳤던 말,

애기야, 가자!


아이들을 가르칠 때, 무의식적으로 나의 제자들에게 "애기야, 이해돼?" "애기야, 알겠지?"

그러면 어떤 놈은 애기라는 호칭에 아기처럼 해맑아지기도 했지만 어떤 놈은 "제가 왜 선생님 애기예요?" 장난처럼 반문하기도 했다.


솔로몬은 알았을까?

아름다운 노래 아가서의 아가를 [애기]로 듣고 내가 그 목동의 연인이 되어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그 자리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있을까?

믿음보다 사람을 찾으러 교회를 가고, 장애인을 사랑할 남자를 찾기 위해 원래도 큰 눈, 사슴처럼 똘망 똘망하게 뜨고 태양에 눈이 시려 눈물이라도 나면 가련한 여주인공처럼 훌쩍대며 선택받고 싶은 여자였다는 것을.

나의 제자들은 알았을까?

아기처럼 순수한 너희들이 나의 마음과 같아서 의도하지 않고 나온 말이 애기라는 것을.


나는 그렇게 [아기]라는 단어를 좋아했고 [애기]라고 불리고 싶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드라마 속 주인공은 [김정은] 일뿐이고, 가난한 여자를 사랑했던 남 주인공은 그저 [박신양] 일뿐... 나의 첫사랑은 변했다.


장애인 여자 친구를 세상 사람에게 소개하지 못했던 그는 어두워져야 나를 찾았고,

어두운 곳에서 그는 나를 탐닉했다.

아니, 나의 몸을 탐닉했다.

하필 그때 읽은 책이 [여자의 일생]이었고,

그의 그윽한 눈빛이 버거워지고 그의 손길의 땀이 촉촉하지 않고 끈적하다고 느낄 때, 나는 [여자의 일생]에서 여자를 탐닉하는 줄리앵에게 대항하는 잔느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한 번도 누구에게 소개하지 않았던 비밀의 여자였던 나는 그에게 버려졌다.


보석을 알아보는 남자가 없으니, 책이 유일한 도피처라고 지성인의 언어를 쏟아내며 도도했던 나는 밤이 되면 외로웠다.

꿈을 꾸면 목동을 찾아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나왔다.

아름다운 숲에는 여전히 새가 지저귀고 녹음이 지나쳐 진한 숲의 향기가 꿈을 깨도 이불에 배어 있는 그 숲에서 나는 달리고 달렸다.

목동을 찾아 달렸고, 나를 구원해 줄 남자를 찾아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 휘날리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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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노을의 잔해를 찾아 부산 해운대에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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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여자가 천명이 넘었다지.

솔로몬의 아가는 누구였을까?

솔로몬은 행복하지 않았다지.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아가서 3장 1절]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말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장 2절]

나는 이제, 아가서가 [아가]가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인 것을 안다.

여자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신부의 마음으로 신랑 되신 예수님께 고백하는 것을 안다.


나는 이제, 세상을 향한 욕망과 욕정을 버렸다.

그것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표상인 것을 안다.


그런데 꿈을 꾼다.

노을빛 으스러지는 해운대가 보이고, 숲 향 진동하는 나무 아래에서 이마를 맞대고 결혼 서약을 하는 신부가 되어 아기처럼 웃고 있는 내가 있다. 꿈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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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않는다]는 전도자의 말씀이 내려앉지 않았나 보다.


나는 꿈을 꾼다.

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는 남자가 말한다.



아가야, 함께 가자

언어유희:유희가 언어에게 말합니다.
"아가야, 아가서는 (Baby) 아가가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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