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잘 해내고 싶어 불안한 나에게
얼마 전 싱가포르에서 Head of HR이 왔다.
그는 요즘 꽤나 자주 한국에 출장을 온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오는 듯하다. 우리는 그가 산낙지를 먹으러 오는 거라며 웃으며 농담을 하곤 하지만, 매번 그가 출장을 오면 산낙지가 아니라 점심 같이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 바쁜 와중에 그는 우리 코리아팀과 1:1을 꼭 잡는다.
모든 리더들이 그렇듯, 1:1은 본인들의 숙명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직접 잡은 1:1이 바쁜 그의 일정으로 취소되곤 했고 매번 “지수, 정말 미안해 우리 다음번에 콜로 꼭 만나자”라고 말했다.
이번 1:1도 그럴듯했으나 그는 나의 장난스러운 눈빛 “너- 설마, 또..?” 를 보더니 “나에게 5분만..”이라며 15분 후에 나를 불렀다.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꽤나 많은 주제를 이야기했다.
1:1을 마치고 나온 후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이 났다.
첫 입사한 날 싱가폴로 출장을 갔던 나는 그를 만나는 것에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에 두려움이 큰 편은 아닌데 유독 긴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1시간이 넘는 그와의 인터뷰가 내가 살면서 경험해본 인터뷰 중 가장 어려웠다. 그래서 이 사람은 꽤나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싱가폴에서의 첫 1:1은 꽤나 긴장 상태였다.
하지만 1:1은 긴장했던 것 과는 달리 편안했다.
왜 항상 두려움은 이리도 크고, 결과는 생각보다 괜찮은 걸까?
항상 무언가를 시작함에 있어 두려움이 큰 나는 그 두려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새로운 것, 사람을 만남에서 오는 자체의 불안감과 긴장감, 혹은 어색함이라 생각했는데 찬찬히 마음을 살펴보면 사실 새로움에 직면했을지라도 나는 완벽하게 (마치 익숙하다는 듯) 해내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되었단 것을 알았다.
첫 1:1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마치 익숙하다는 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지만 프로페셔널함을 보이고 싶었다. 그래야만 나의 부족함을 숨길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시작을 해야 나의 이미지가 좋을 테니까. 뭐 이런 것이었다.
하지만 늘 처음의 두려움이 괜찮게 끝나지 만은 않는다.
한 번은 첫 미팅에서 영어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알아들은 척하다가 ‘지수, 너의 의견은 어때?’라는 질문에 완전 말도 안 되는 대답을 허둥지둥하고 그들의 차가운 혹은 안쓰런 눈빛을 마주하기도 했다.
한국어로 하면 이것보다 100배는 똑똑하게 말할 수 있는데, 억울하고 분하고 한 번도 유학을 가지 않은 내가 그리고 부모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오면 나는 엄청 침잠하여 사라지고 싶어 진다. 그리곤 내 인생의 스승이자 가장 사랑하는 친구인 목사님께 카톡을 하며 미주알고주알 얘기를 한다.
내 이야기를 늘 다 들어주던 목사님은 내게 한마디를 홀연히 남기고 철야예배로 사라졌다.
“지수야, 너에게 시간을 주렴.”
나에게 시간을 주고 기다리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하지만 시간을 주는 것이 그리고 나를 기다려 주는 것도 훈련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나에게 시간을 주지 못하고 자책했던 순간이 참 많았는데, 내일은 숨 한번 크게 쉬고 나에게 시간을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