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냄새 때문에 첫사랑과 수능이 생각이 나버렸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미지근한 물 한잔을 마시고 핸드폰을 들어 날씨를 확인한다. 이 두 가지는 아침의 리추얼이 돼버렸는데, 물 마시는 습관은 모델 장윤주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미지근한 혹은 따듯한 물을 한잔 마시는 게 건강에 좋다고 하여 몇 년 전부터 시작했다. 반면 날씨를 확인하는 건 무언가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한 전초전의 느낌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아침, 평소처럼 물을 마시고 핸드폰을 확인한 나는 내 졸린 눈을 의심했다. 내 눈앞에 현재 온도가 영하 1도 (-1이라는 정확한 수치)라는 친절한 안내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 올게 왔구나..”라는 깊은 말을 내뱉고 얼마나 추운지 확인하려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을 여는 그 찰나, 겨울의 냄새와 영하의 공기가 누구라도 먼저 들어오려는 듯 정말 빠르게 창문 틈새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가장 먼저 내 코로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그다지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회사를 다닌 지 6년이 되어가지만 매번 다이어리를 쓰며 오늘의 할 일을 적어야 하고, 친구들에게 했던 얘기를 자주 깜빡하여 또 하곤 한다. 어쨌든 이런 내가 어느 순간 정확한 것을 기억하는 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어떠한 냄새를 맡을 때이다.
정확히 말하면 어떠한 과거의 향기와 냄새가 스쳐 지나가듯 날 때.
얼마 전 회사 동생이 준 차를 마시다가, 향이 너무 좋아서 들이마시는 순간 차에 있던 장미꽃잎 향이 깊게 들어왔고, 나는 정말 그 1-2초의 찰나에 10년 전 나의 첫 남자 친구가 중국에서 선물로 사 온 장미꽃차를 건네주며 같이 뚜껑을 열어 장미향을 맡아보았던 기억이 너무 선명하게 떠올랐다.
며칠 전 아침도 나는 나오자마자 겨울 냄새를 맡았다.
출근길에 집 앞 파리바게트에 수험생들을 위한 합격 초콜릿, 엿 , 찹쌀떡 등을 파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그 겨울의 냄새는 나에게 아주 예전의 선명한 기억을 데리고 왔다.
11년 전 수능을 보러 가던 날 아침이었다. 그 날 아침은 정말 혹독하게 추웠다. 엄마는 나에게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히고 싶어 했지만 수능 전날 잠을 한 숨도 못 자고 당일에 몸도 안 좋았던 괜한 반항심에 나는 꽤나 얇게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마음 약한 엄마는 끝까지 두꺼운 후드 집업 하나를 쥐어주었다. 곧바로 엄마는 차를 몰아 나를 수험장 저 멀리에 내려주고는 울고 있었고, 나는 아빠의 손을 잡고 수험장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내 손을 잡으며 “너는 왜 이리 손이 늘 차갑니” 하고 평소 같은 말만 뱉고는 나에게 저녁에 보자며 안아주고 엄마가 있는 차로 돌아갔다. 그리고 수능 제2외국어 영역을 볼 때쯤 나는 속으로 “절대 재수는 안 할 거야”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결과와는 상관없이 드디어 이 긴 여정이 끝났다는 가뿐한 마음으로, 무엇보다 다시는 수학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폴짝 거리며 집으로 왔다.
이번 주가 수능이라고 한다. 내겐 아주 예전의 기억이 되어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게도 꽤나 큰 인생의 사건이었기에 이렇게 기억이 선명한 순간들이 있나 보다.
가끔은 잊기 싫은 순간들을 메모장에 적어두곤 한다. 하지만 냄새는 그 순간의 눈빛 생각 감정 기분을 모두 동반한 강력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래, 오죽하면 향수라는 영화도 나왔을까. 향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실 내 향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이제 정말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 곧 또 봄이 오겠지, 봄이 오면 봄의 향은 또 내게 선명한 기억을 가져다줄 것이다. 기다려봐야겠다 봄의 기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