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그래
내 생일날, 나는 진통을 14시간 겪었다.
거짓말처럼 내 생일에 자기도 나오겠다고 하는 딸 덕분에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진통을 겪었다.
물론 무통주사 덕분에 견딜 수 있었지만, 마지막에 아무리 힘을 줘도 아기가 내려오지 않았다. 결국 조산사 선생님이 내 위에 올라타고 내가 힘을 줄 때 위에서 눌러주셨다. 그 누를 때의 고통은 정말 다시 겪고 싶지 않다.
그렇게 우리 딸이 태어나고 가족 분만실에 2시간 정도 있었다. 사실 출산보다 더 아팠던 기억은 출산 후, 아이가 신생아실로 내려가고 갑자기 온몸이 덜덜 떨리고 추워졌다. 나는 남편을 붙잡고 "오빠, 나 너무 추워 안아줘"라는 말만 한 시간 가까이했다. 남편이 나중에 말하기를, 아이 낳을 때보다 혼자 한 시간 동안 온몸을 떨면서 우는 나를 보자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이빨도 부딪칠 정도로 떨어서 자기 손가락을 내 이빨에 대주었는데, 내가 오빠 손가락 다쳐 라고 했다고. (나는 왜 기억이 안나지?)
출산하면서 피도 많이 흘리고 무통 주사도 빠지면서 많은 산모들이 겪는 증상이라고 한다.
몸이 좀 괜찮아지고 나서야 부모님, 친구들과 통화하며 우리 딸이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나누었다. 그리고 병실에 올라가니 밤 11시 반 정도였다. 이런저런 수액을 맞고,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누웠다.
남편에게 "오빠, 진짜 믿기지 않아 내가 아이를 낳았어! 그렇지?"라고 말했는데 눕자마자 곯아떨어진 남편을 보고 웃음이 났다. 그래 당신도 피곤했겠지, 긴장도 했을 거고.
나는 남편이 찍어준 아기의 탄생 순간 영상과 사진들을 보고 또 돌려봤다. 그렇게 병원에서 2박 3일의 입원 후, 나는 조리원으로 갔다. 조리원은 병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조리원에 가는 동안 정말 방지턱 하나, 신호 하나, 브레이크 하나 조심히 밟고 운전하게 되었다. 체감상 20분은 걸린 느낌.
조리원에 도착하고 긴장이 풀렸다. 여기서 이제 조리를 하면 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조리원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남편의 출퇴근 및 방문이 불가능했고 나 혼자 2주를 아기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씩씩하니까 괜찮아 오빠~ 2주간 푹 쉬어!라고 보냈지만 나는 2주 내내 하루에 한 시간씩 눈물을 쏟았다.
누가 조리원이 천국이라 했던가,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출산 후의 세계는 나를 매일 눈물로 몰아넣었다.
이곳에 다 쓸 수는 없지만, 모유수유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상상 속의 모유수유와 현실 속의 모유수유는 정말 달랐다. 모유 수유하기에 최적의 상황을 제공해준 나였지만, 우리 딸은 매우 예민해서 열심히 힘껏 먹어야 하는 모유보다는, 쉽게 나오는 분유를 먹으려 했다. 모유를 먹이려는 엄마와 그게 싫은 딸의 전쟁이 2주간 이어졌다.
결과는 나의 완패.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던가,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우리 딸은 젖병에 먹겠다고 조리원이 떠나가라 매일 울었다. 아이가 울 때마다 옆방 앞방 대각선 방에 있는 산모들의 눈치가 보였다. 그리고 아이가 미웠다. 왜 이렇게 울까, 왜 얘는 목소리가 이렇게 클까, 왜 악을 쓸까 등등. 그런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나는 내 아이가 왜 우는지 알고자 하는 것보다 그 순간에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많이 신경 쓰였다. "피해"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이 얘기를 했더니 남편이 말했다. "여보, 아기는 원래 울잖아. 그게 왜 피해야"
남편과 매일 통화하며 매일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정말 누가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눈물이 쏟아졌다. 친한 회사 동료와 통화하면서도 울고, 외국에 있는 매니저랑 콜 하면서도 울고, 엄마랑 통화하면서도 울고, 그냥 계속 울었다. 정말 산후우울증이라는 게 이거구나 나는 호르몬의 노예구나를 경험한 2주의 시간이었다.
조리원에서 나온 첫날밤, 그러니까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안 계시고 남편과 둘이 보낸 첫날밤.
정말 밤새 한 시간 간격으로 우는 아이 때문에 우리 둘은 단 한숨도 못 잤다. 기억해보면 30분 쪽잠을 잤다. 새벽 내내 모유수유를 하느라 나는 잠을 못 잤고, 남편은 우는 아이 때문에 같이 못 잤다.
신생아는 누가 24시간 잠만 잔다고 했던가, 우리 딸은 정말 정말 안 잤다. 지금 지나고 나서 생각해봐도 다른 신생아들에 비해 정말 안 잤다. (조리원에서도 새벽에 유축하러 가면 혼자 안 자고 울고 있었다.)
우리는 현실에 부딪혔다. 다음 날, 남편은 이렇게 밤새 네가 잠 못 자고 수유만 할 수 없다며 그래도 모유 수유하려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로 분유 포트와 분유를 주문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던 나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혼합수유 (모유와 분유를 같이 주는 것)를 하면서 더더욱 2배로 힘들었고 50일 즈음 결국 완전 분유 수유만 하게 되었다. (모유 양이 줄면서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힘들어서 모유수유를 포기한 것 같았다. 아니 내가 힘들어서 포기한 게 맞았다. 그래도 100일까진 힘들어도 먹일걸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때부터 사실 지금까지도 나는 아이를 보면 미안한 마음이 계속 든다.
나는 아이를 정말 좋아했고, 내 아이는 정말 예쁘고 마냥 사랑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확히 출산 후부터 100일까지 나는 매일 울었다. 너무 힘들었고, 너무 우울했고, 너무 행복했지만 너무 불행했다.
남편과 나는 거의 싸우지 않고 대화로 조곤조곤 푸는 성향인데, 아기를 낳고 나서는 날 선 말들을 많이 하고 (잠을 못 자니 둘 다 예민) 많이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화가 난 어느 날은 이게 다 아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 둘은 분명 계획하고 준비한다고 하고 임신과 출산을 했지만, 현실의 우리는 여전히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