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asts of a little land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고

by 류지숙




Beasts of a littel land를 오디오 북으로 들었다. 13시간 30분이 넘는 분량이다.

운전을 하면서도, 저녁을 만들면서도 Jade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정호의 애기가 궁금해서 계속 듣게 되었다. 책을 끝내고 검색을 통해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득 캐나다, 미국에서 한국계 작가가 영어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하고 이 책이 출간되어 한국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는 이 현실이 믿을 수가 없었다.

이민진 작가가 제일교포 4세대를 걸친 이야기를 파친코에 담아냈고 이 책은 애플티브이에서 시리즈로 제작하기도 했다. 새삼 우리가 가진 이야기가 읽히고, 보이고 다른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진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이런 소회들을 제쳐두고 애기해도 이 책은 꼭 읽어 볼 만한 책이다.

(어릴 때 봤던 여명의 눈동자가 생각이 났다)

1917년부터 1964년, 근 현대사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시대상을 그려내고 있다. 누구 하나 그저 악한 인물도 없고 그저 선한 인물도 없다. 저마다 자기의 사정이 있고 그 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휩쓸려 버린 삶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작가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이 시대를 이토록 잘 그려낼 수 있단 말인가.

작가 설명에 김주혜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고 나와있다. 또 외할아버지께서 이름 모를 독립군이셔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고도 한다.

이 책의 첫 장은 정호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먹을 것이 없어 추운 겨울 사냥을 떠났다가 호랑이 새끼를 맞닥뜨린다. 한국에 정말 이렇게 호랑이가 많았단 말인가?


이 책에 처음부터 푹 빠져버린 이유 중 하나는 나에게도 호랑이와 관련된 사연이 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다녀가실 때면 나와 한 방을 쓰셨다. 이른 저녁 이불을 깔고 할머니 옆에 누워 잠을 청하노라면 할머니께서는 두런두런 가슴에 담아놓았던 이야기를 풀어놓으셨다. 그중 하나가 호랑이를 맞닥뜨렸던 이야기이다.

할머니께서 엄마를 배에 품고 계셨던 1955년 이른 여름날의 전라남도 산골, 외할아버지를 따라 이른 새벽 논으로 나가셨다. 손에는 대나무 대를 하나 들고 논두렁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논에 물을 데고 있는 할아버지를 보고 계셨더랬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깜박 잠이 드셨고 기차 화통이 지나가는 듯한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할머니 앞에 호랑이가 앉아있었다고 한다.

논에 물을 데고 있는 할아버지는 물소리에 듣지 못하셨고 할머니는 너무 놀라 그대로 얼어버리셨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건네 주신 대나무 대가 생각이 났고 순간의 기지를 발휘하여 대나무를 있는 힘껏 땅에 내리쳤다.

커다란 바람이 일며 호랑이는 다시 할머니의 눈앞에서 깜쪽같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상하리 만치 이 이야기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외할머니에서 우리 엄마로, 그리고 나에게로 이 이야기가 가진 기운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전해준다. 작은 땅에서부터 온 이 기운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자부심이 되기를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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