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눈물이 없는 편이다.
가끔 냉정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성적이며,
선택함에 있어 감정에 휩쓸리려 하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 냉소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을까?
아마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인 듯싶다.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할 때부터,
믿음을 나눈 사이라 생각했지만
자기 밥그릇이 걸린 곳에선 결국 모두 이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도 그들처럼 변해갔다.
눈물을 흘려봐야 해결되는 것은 없었고
내 마음만 더 힘들어질 뿐이었다.
사직을 한 후 제법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생각한다.
그럼에도 아직 습관처럼 남아있는 냉소적인 모습을 볼 때면
스스로도 내가 참 차갑다고 느껴진다.
어젯밤, 잠들기 전 인별그램을 구경하던 중
김혜자 배우가 '눈이 부시게'의 대사를 인용하여 수상소감을 말하는 장면을 보았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눈이 부시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꽤 많은 눈물을 흘리고 감정이 해소된 후,
왜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친구를 끌어안고 함께 꺼이꺼이 울던 모습,
기댈 곳 없이 홀로 꿋꿋이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던 모습.
온몸이 부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여 편입에 성공한 친구와 함께 울던 모습.
난 꽤나 감성적이고 타인의 슬픔에 눈물을 많이 흘리던 사람이었더라.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과 함께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고 공감했더라.
그러나 고단함에 조금씩 메말라 갔고, 그것이 어른이 돼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무뎌지고 무뎌져 굳은살이 생겨 제법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나 보다.
고작 저 글귀가 뭐라고 애써 외면하고 있던 굳은살 속 곪은 상처를 터트렸다.
하마터면 점점 속으로 파고들어 나를 병들게 했을지도 모를..
그 상처를 직면하게 했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니 회피였나 보다.
방치되었던 마음이 온기를 머금은 따뜻한 말로 위로를 받은 것 같다.
그 시절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하지만 듣지 못했던 말.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이 어찌 저렇게 완벽하여
내 마음을 이토록 따뜻하게 하는 걸까.
나의 차가움이 결국 흉터임을 알게 해 준 너무 아름다운 말이다.
물론, 저 글귀 하나로 인하여 켜켜이 쌓여온 상처들이 한 번에 씻겨져 나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애써 피해왔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잊을만할 때쯤 또 한 번 글귀를 마음에 새기며 한번 더 내 마음을 들여다봐야지.
어찌 보면 어떤 대단한 슬픔도 사소한 행복 하나에 견디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라고 누군가가 나에게 내려주는 선물이 있는 것 같다.
어제 본 저 글귀가 나에겐 선물이었다.
보물 찾기처럼 숨겨진 선물을 찾기 위해 작은 것에도 말랑 말랑한 마음으로
작은 것에도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지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