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지선 Feb 06. 2023

우붓에 온 판교엄마02

우붓에서 부동산 임장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면 남는 시간에 뭐하는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우붓에 있는 이 학교의 커피테이블에 앉아서

나는 무얼 하는가.

오다가다 들린 학부모들과 인사를 하고 짧은 대화를 한다.

훌륭한 학부모 커뮤니티가 있다는 구글평답게 이 학부모들 모두들 훈훈하며 예의가 무척 바르다.


짧은 자기소개 후에 요즘 나의 관심사를 먼저 이야기한다.

나는 여기가 좋아서 땅을 사고싶다. 어디 가면 좋은 부동산이있느냐 호기롭게 물으니

여긴 그런 에이전트가 없단다.

마음에 드는 마을로 걸어가서 땅을 사고싶다고 말하면 어딘가에서인가 오토바이를 타고 집안의 삼촌이나 영어가능자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외국인 가격버프를 피하며 좋은 땅을 살 수 있는 방법이란다.

도대체 감이 안 잡힌다. 땡볕을 걸어가서 낯선 사람에게 땅을 사고 싶다고 말해야한다니...무슨 톨스토이 소설인가.

난 힘들겠구나 싶다.

그러나 몇 군데 부동산과 분양회사에 연락해 본 결과 이 아빠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곧 깨닫게 되었다.


학교 근처에 집과 코워킹스페이스를 짓고 있는 독일에서 온 디벨로퍼 아빠가 자기 프로젝트를 이야기해준다. 아빠 팔에 안긴 3살 정도 되어보이는 눈이 파란 아이가 내니에게 배운 인도네시아말을 구사하며 우리 대화를 끊는다.

아이가 가족 중에 바하사(인도네시아어)를 가장 잘 한다며 아빠는 자랑스러워 한다.

이 분이 입은 린넨으로 만든 후드달린 점퍼가 예뻐서 한국에 있는 남편에게 사 주고 싶지만, 어디서 샀냐고 묻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참는다.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땅 값을 두 배나 올려놓았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고자 하는 절박함에 자본력까지 갖춘 이들에게 한국에서 온 아줌마인 나는 또 상대가 안 될 터이다.


스위스에서 온 건축가 아빠는 스위스에서 오래된 건물복원하는 일을 했다는데 여기에서는 독일회사에서 하는 건축소프트웨어 개발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다.

나날이 학교부지를 확장하고 있는 이 곳 교장 선생님이 건축가 아저씨와 새로 지을 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영어대화가 빨라져서 반만 알아듣는다.

소싯적에 카페에서 일했다는 아저씨가 내려준 에스프레소가 맛있다.


계획중인 땅을 보러간다해서 살짝 따라나선다.

교장선생님이 집을 짓고있는 땅을 지나 논두렁을 걸어간다.

저 멀리 밀림이 보이는 탁트인 논을 보여준다.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편다.

여기 저층의 빌라를 지어 평화롭게 일하고 애는 학교 보내고 친구들을 초대하고. 밤에는 별을 보고 생각만으로 가슴이 뛴다. 개미들과 각종 곤충들이 집 안을 잠식하겠지만 내겐 한국식 방충망이 있지 않은가. 영어대화는 노랫소리가 되어 혼자 상상에 빠져든다.


뭐 안 될 것도 없지.

나도 곧 오십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성비를 잊기위해 글을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