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프랑스 아를(Arles) 사진 축제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할 때 빼놓지 않고 가야 하는 도시 중 하나가 아를(Arles)이다. 프랑스 친구가 아를이 아니라 불어 발음으로 아흐르라며 어색해 하는 내 발음을 교정해 준다. 7월 한 달 간 축제가 벌어지는 아비뇽을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대체로 반나절의 시간을 빼 아를을 방문한다. 그리고 대 다수는 아주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반나절도 넘치는 시간이라고 말하곤 한다. 나는 이 작은 도시를 위해 반나절이 아닌 3일의 여정을 계획했다. 2019년 50주년을 맞이한 아를의 사진전을 보기 위해서다. 사진전은 7월 1일부터 9월 22일까지 3개월 간 이 도시를 점령한다.
아를 사진축제는 1970년 지역의 사진작가와 역사학자의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매해 60개가 넘는 사진 전시가 도시 전체에 어우러진다. 전시는 12세기 성당부터 19세기 산업 시설, 공원, 공공시설 등에서 열리며,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는 역사적인 장소가 사진전시를 위해 이 기간만은 활짝 열린다. 축제는 IN과 OFF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는데, IN은 공식 초청작품이며, OFF는 일종의 프린지 프로그램으로 사진작가 또는 갤러리들이 작은 집들과 가게들을 이 기간 동안 사진 전시장으로 바꾸어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유혹한다.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축제 센터에 방문했다. 일일권, 전체 관람권, 9월 관람 권 등 티켓의 종류가 다양하다. 3일 동안 머물러 사진전시를 최대한 보고자 하는 욕심이기에 전체 관람권을 구매하기로 한다. 자세히 보니 현장에서 구입하면 42유로이고, 온라인으로 구매하면 35유로이다. 센터에서 와이파이를 확인하고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전체 관람권을 구입하고 나니, 왠지 마음이 든든해진다. 이제부터 지도를 한 손에 들도 가까운 곳부터 전시장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오래된 성당 안에 전 세계의 사람들의 삶이 담긴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을 관람하는 파란색의 옷을 입은 여인의 뒷 모습. 성당, 전시된 사진들 그리고 남프랑스 지중해의 파란색이 너무 잘 어우러져 그녀의 뒷모습을 몰래 카메라에 담았다.
야외 공원에 마련된 전시장이다. 자연을 테마로 하고 있는 화려한 사진의 색감 위로 남프랑스 여름의 강한 햇살이 부서져 내려 프레임 속의 사진은 지금 바로 내 눈 앞에 있는 풍경처럼 살아난다. 사진의 주제는 다양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오지의 세계, 세상과 연결 되지 않은 숨겨진, 닫힌 세상을 카메라에 담아와 풀어 놓은 작가의 작품 중에는 북한의 도시, 거리, 사람들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전시를 따라 다니며 작품을 보다 보면 시간 여행이 자유롭다. 1920-30년대 뉴욕을 담은 흑백 사진 속, 거리의 소년들 모습 속에서는 너무 일찍 커 버린 아이들의 얼굴과 세상에 대한 반항이 가득한 눈빛을 볼 수 있다.
60년대 사진 속에서는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모습과 당시 분위기를 보여주는 재즈 음악과 록 밴드 비틀즈 그리고 가수들에게 환호하는 팬클럽의 모습들이 가득하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다시 무너지고, 이어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물리적 국경과 정신적, 정서적 경계들이 지배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다시 한번 사유하게 한다.
아를에 살고 있는 친구가 지도의 남동쪽 끝의 사진전 장소에 꼭 가보라고 팁을 준다. 아를 성곽 안의 오래된 도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위기의 멋진 건물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지도를 따라 20분가량 걸어가니, 낡은 건물에 올해 사진전 포스터 여성의 눈빛이 매혹적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조금 더 가니,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아를의 오래된 건물과는 전혀 다른 미래적으로 보이는 알루미늄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알루미늄 타일의 비틀어진 형태의 타워로 캐나다 미국인 건축가인 Frank Gehry가 디자인했다. 스위스 콜렉터 Maja Hoffmann이 설립한 아트센터 Luma Arles 컴플렉스의 디자인 건물이다. 아직 공사 중인 건물은 2020년 봄에 정식으로 오픈할 예정으로 완공이 되면 전체 높이가 56m 가 된다.
문처럼 보이는 유리 상자들과 빛나는 알루미늄 패널이 원형 유리 아트리움 위에 불규칙한 형태로 쌓여 있는 듯 하다. Frank Gehry 의 건물 외관 디자인은 아를 근처에서 발견되는 울퉁불퉁한 암석을 반영한 것인데, 1888년 반 고흐가 이곳에서 그림을 그릴 때 영감을 받은 것과 같은 종류의 것이라고 한다. 또한 내부의 광범위한 원형 아트리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를 성곽 내의 로마시대의 원형 극장을 떠올리게 한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건축 비평가 프랭크 밀러(Frank Miller)는 이 디자인을 “스테인레스 스틸 토네이도” 라고 설명했는데, 정작 지역 사람들은 마치 구겨진 음료캔처럼 보인다며 그의 말을 일괄했다고 한다. 사실 구겨진 캔이라고 하기에는 좀 고급지어 보이기는 하는데, 다시 보니 마치 스핑크스의 미래 얼굴처럼 보이는 듯 묘한 느낌이다.
Luma Arles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꽤 넓은 부지이다. 이곳은 과거에 SNCF 기차가 있던 곳으로 1986년 이후에는 그 쓰임이 없어 버려진 상태였다가 지금은 아를에서 가장 화려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중이다. 2020년 타워의 완성과 함께 Luma Arles는 거대한 컴플렉스로 아를의 새로운 문화예술의 중심지를 꿈꾸고 있다.
이곳에서도 건물 마다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두개의 건물을 오가며 사진을 감상하고, 한쪽에는 영화 상영 중이다. 사진 전 프로그램 중에는 오페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만든 영상 작품들과 사진 주제와 관련한 영화 상영, 그리고 VR 영상 작품 등 사진이라는 매체의 확장을 보여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사진 축제가 열리는 아를의 7월, 8월 9월은 도시 곳곳에서 사진전을 홍보하는 사진들이 거리의 벽과 골목의 하늘을 채운다. 아를의 좁은 골목길들을 따라 정처 없이 걷다 보면, 개인 집인지 갤러리인지 알 수 없는 작은 공간의 열린 사진 전 등을 우연하게 그리고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진축제의 IN 티켓을 구입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아를에서 사진 전시와 만나기는 우연을 넘어 필연일 정도로 모든 곳을 채우고 있다.
원형 경기장 건너편에서 옛날 방식으로 사진을 찍는 사진사와 한 커플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았다. 요즘처럼 디지털 카메라로 빠르게 사진을 찍고 확인하고 삭제하고 다시 찍는 방식에 익숙해졌다면, 인내심이 있어야 이 멋진 나만의 사진을 소유할 수 있다. 포즈를 잡는 동안 사진사는 반대편에서 위치를 잡고 상자 안에 손을 넣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조작을 해서 사진을 찍는다. 물론 단 한 번의 기회밖에는 없다. 사진은 먼저 반전된 이미지로 촬영이 되어 사진이 나오고, 그 사진을 핸드폰 프로그램으로 다시 반전을 시켜 보여 준 후 별 문제가 없으면, 다시 그 반전 이미지를 촬영해 실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진을 찍고 30분 정도 기다리면 나만의 흑백 사진을 가지게 된다. 여러 사람들의 아를에서의 시간이 이곳에 흑백으로 기록되어 멈추어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돌로 만들어진 도시의 오래된 길들을 산책하다 들어간 건물도 돌로 지어졌다. 자연 그대로의 색은 한 순간도 같은 색으로 멈추어 있지 않다.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은 매 시간 매 분 이 도시를 산책하며 지중해 도시만의 빛과 색을 만든다.
건물과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니 돌의 차가운 기운이 뜨거운 태양에 달궈졌던 몸에 묘한 안식을 준다. 빛과 그늘을 오고가며 지중해 태양이 만들어주는 빛의 놀이에 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