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서비스 써보기 01_당근마켓
당근마켓? 이름이 말랑하고 달달한 캐러멜 같은데!
하지만 난 중고 거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냥 버리기 아까운 카메라나 맥북에어 같은 것을 팔아본 적은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우선 중고 구매를 했을 때 있을 수 있는 위험 부담이 그야말로 '부담' 스러웠고 내 것을 판매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감당이 안되었다.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한 상품을 단 한 번도 반품해 본 적이 없는 내 귀차니즘이 중고 거래를 위해 사진 찍고 상품 설명을 적는 수고를 즐겨할 리 없었다.
그러다가 요즘엔 가능하면 스타트업의 제품을 사보고, 서비스를 사용해보자는 쪽으로 생각이 미치어 두리번거리다 당근마켓 앱을 다운로드하게 됐다. 앱을 깔고도 여러 날을 두리번거렸다. 사실 마켓에 올라온 상품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동네 특성인 건지 내가 검색을 잘 못해서인지 내 주변의 매물들은 대체로 옷이나 신발과 같은 것이었는데 딱히 사이즈와 취향이 맞는 것이 없었다.
살 것이 없다면, 팔아보면 어떨까 싶어 뒤져 보았더니 요즘은 잘 들고 다니지 않는, 나름 유명 브랜드의 핸드백이 보였다. 물건을 깨끗하게 쓰는 편이라 헤진 곳도 없고 상태 너무 좋았다. 사진을 찍어서 2만 원에 올려 보았다. 올리자마자 30분도 지나지 않아 띵동, 메시지가 왔다. 옆 솔기 쪽 사진을 찍어 보내줬으면 좋겠다, 크로스로도 맬 수 있느냐, 가방 끈의 길이는 얼마나 되느냐 꼼꼼하게 묻는 여자분이었다. 고객 응대를 하는 동안 다른 사람의 메시지가 왔다. 이번에는 내 편에서 찍어놓은 옆 솔기 사진을 보내며 상태 좋다고 적극적인 응대를 했다. 대뜸 사겠다고 결정을 해버렸다. 그러는 사이 먼저 연락한 까다로운 손님은 질문을 몇 개 더 던지던 중이었다. 두 번째 고객과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내가 올린 핸드백 상태를 예약 중으로 바꾸어 놓았다. 까다로운 고객님이 마무리까지 까다롭게 불만을 얘기하셨다. 본인이 먼저 연락을 했는데 벌써 결정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두 번째 아이템은 뱃살을 빼야 한다는 일념 아래 아마존에서 구입한 이후 딱 두 번 사용하고 방 한편에 먼지만 쌓여가는 윗몸일으키기 운동기구였다. 아, 이건 돈을 주고서라도 눈 앞에서 없애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멀쩡한 것을 버리면 안 된다는 죄책감이 아니었다면 벌써 쓰레기 더미로 사라졌을 것이다.
이번에도 사진 달랑 한 장 찍어 올려 보았다. 그런데 왠 걸? 시차는 있었지만 다 수의 남성이 관심을 보였다. 역시 남자 고객들은 상태가 좋으냐, 어떠냐를 묻지는 않았다. 다만 택배로 보낼 수 없느냐 주문해서 단 칼에 거절했고 멀리까지 가지고 와달라는 조건도 거절했다. 00 아빠라는 닉네임 쓰시는 분이 두 말없이 가져가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는 오늘 학교에서 늦게 돌아온 아이들 저녁 먹이느라 바빠서 못 온다는 연락을 해왔다. 대신 운동기구는 꼭 가져가겠으니 먼저 입금하겠다고 했다. 이런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이 운동기구를 갖고 싶어 연락한 사람이 더 있었다.
천덕꾸러기로 방 한편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아이가 누군가에게는 꽤나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니... '나눠 쓰는 즐거움'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두 가지를 거래하고 나니 중고품 판매에 자신이 생겼다. 다음은 요즘 살이 쪄서 꽉 끼는 체리색 셔츠를 사진 찍어 올려 보았다. 드라이클리닝 한 그대로였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다. (시무룩..) 이번엔 남편이 동창회에 가서 받아온 커피잔 세트. 서울대 로고가 전면에 찍힌 찻잔 세트를 올려 보았다. 역시 아무도 사려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실패한 아이템도 있었지만 한 두 가지를 더 올려서 팔기도 하고 반응을 보고 있는 것도 있다. 이제 파는데 재미가 붙어 장롱을 탈탈 털어 볼 기세다. 선글라스를 2개쯤 '채굴' 했고 캠핑 가려고 사두고 한 번도 안 쓴 용품들 몇 개가 눈에 띄어 팔아볼 생각이다.
희한하게 내가 가진 것을 정가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지만 파는 재미가 있었다. 물건을 찍어서 설명을 적어 올리고 관심 있는 상대와 얘기를 나누고 친구를 만나듯 물건을 담아 마실 삼아 나가서 건네주고 돌아오는 맛도 괜찮았다.
당근마켓은 2015년 판교에서 시작된 서비스라고 했다. 한국판 크레이그 리스트 (일종의 벼룩시장 같은...)를 지향한다고 했다. 2천여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시작해서 이제는 전국적으로 수십만 명이 사용하는 서비스로 성장했다니, 그 간 운영팀이 이 서비스에 쏟아부었을 노력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절로 든다. 개인 간 중고품 거래는 무료다. 일부 광고 리스팅이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는 판을 깔아 놓은 것이고 아마도 지금 부터는 동네의 상점들이 광고주로 참여하는 모델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당근마켓 써보면 일단 집안을 둘러보며 매의 눈으로 잘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물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는지, 그렇다면 얼마의 가치를 갖게 될지 가늠해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덧붙여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 이웃도 있지만, 잘 모르는 동네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도 신선하다. 물론 어디에나 있듯이 우리 동네에도 짜증유발자들이 있음도 알게 된다.
이제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고 있는 당근마켓이 어떻게 더 발전적인 서비스를 붙여 나갈지, 동네 광고를 붙이면서도 사용자 경험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을지 자못 기대된다. 그리고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