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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Feb 26. 2019

제 사업계획서는 몇 점인가요?

슬기로운 창업 생활 _#01

창업가들은 사업 아이템을 어떻게 고를까? 


자신이 오래전부터 느꼈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으려고 사업 아이템을 구상해낸 경우도 있고 때로는 자신의 취미가 발전해서 사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혹은 '이런 것이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단순한 바램에서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기도 하고 트렌드에 맞춰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를 사업화하기도 한다. 


어떤 계기이든 상관 없다. 다만, 창업자들이, 함께 하는 팀이 그 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의미있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든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든, 혹은 돈을 벌기 위해서든 반드시 그 사업을 일구고 발전시켜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창업 현장에서 창업자들이 가장 먼저 만나는 과제가 바로 창업 아이템인데 당연히 스타트업에 너무나 중요한 요소이다. 창업 아이템이 좋아야만 성공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할 것인가는 그 회사의 본질을 말해주는 핵심 요소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업 아이템을 진열장에서 옷을 고르듯 너무 쉽게, 혹은 본인들의 체질은 생각하지 않고 유행따라 결정하는 예를 종종 본다. 이에 대한 결과로 창업 현장에서는 창업 아이템을 '피봇(Pivot, (흔히) 스타트업에서 시장에서의 소비자 반응을 기반으로 사업 아이템이나 실행전략을 바꾸는 일)'하여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사업 방향의 피봇 자체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중심없이 흔들리는 것을 '피봇'이라는 단어로 치장하고 있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일 뿐이다) 시장의 변화가 빠르고 소비자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단 최소한의 기능을 갖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바탕으로 소비자와 시장 반응을 보고 이에 맞춰 사업 전략의 일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세분화된 소비자 요구와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할 수 있기 위함이다. 


하지만 창업 생태계에서 종종 '피봇'이라는 단어가 수난을 당하곤 한다. 창업 팀들이 너무나 자주 (3, 4개월에 한 번씩?) 피봇을 한다. 그것도 일부 실행전략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아예 사업 아이템을 바꾸는 경우도 허다하다. 


H팀의 사업 아이템은 외국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한식 집밥을 공유하는 소셜 다이닝 서비스였다. 외국인 여행객 들에게 한국의 음식을 소개하고 문화를 나누는 서비스이며 국내 거주자와 해외 여행객들과의 교류를 강화한다는게 핵심이었다. 처음 이 팀과 만났을 때 서울 시내 게스트하우스 등을 돌며 서비스를 소개하고 베타 서비스를 함께 할 파트너를 구하고 있는 단계였다. 


창업을 함께 시작한 두 친구 가운데 한 명은 전공자는 아니지만 웹서비스 개발이 가능해서 서비스 기획과 개발을 담당했고 다른 한 명은 영업, 마케팅 및 기타 등등을 맡고 있었다. 물론 아주 초창기 기업이니 업무를 나눌 것 없이 해야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이 팀의 사업 아이템이 과연 시장에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이 서비스가 제공하는 사용자 경험이나 가치가 꼭 필요한 것이거나, 고객을 감동시킬 만큼 새로운 것이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업 아이템을 개발해나가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좀 더 사업 계획이 구체화 된 이후에 의견을 주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시장 조사를 더 폭넓게 하도록 지켜보고 있었다. 


한달 정도 지난 후 다시 만났을 때, H팀은 '피보팅'을 했다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외국인 여행자 대상 소셜 다이닝 서비스 대신 회식 예약 서비스를 하겠다고 했다. 보통 5명이 넘는 경우 식당의 자리를 구하기 어렵고 빈 자리가 있는지 알아보기도 어려워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불과 한달 전만 해도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들에게 한국 집밥을 모두 먹도록 하겠다는 기세로 얘기하던 팀이 게스트 하우스 몇 곳 돌고는 의지를 꺾었다. (물론 승산 없는 목표를 미련하게 들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과연 이 팀은 창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싶어 졌다. 


그러나 내 생각은 잠시 숨기고 '회식 예약 서비스'를 실행하기 위한 몇가지를 확인해 보았다. 얼마나 많은 잠재 고객을 만났는지, 이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발견했는지, 식당예약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의 앱은 꼼꼼하게 살펴 보았는지, 우리 서비스는 경쟁 앱에 비해 어떤 차별화된 강점을 제공할 것인지 등등. 


나의 질문에 일부는 답을 하고 일부는 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시장 조사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인 듯했다. 나의 질문에 따뜻한 응원의 기운이 베어 있지 못함은 어쩔 수 없이 스스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팀의 리더 격인 L이 내게 물었다. 


"줄리아, 그래도 이전 아이템 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초기에 주변 식당 20 곳 정도를 서비스에 가입시켜 운영하면서 점차 확장해나간다면 비즈니스 모델 잡기도 더 수월할 것 같고요..." 


세상에 1번 사업 아이템 보다 나은 2번 사업 아이템은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렸다. 창업은 생각나는 사업 아이템을 주루룩 적어 놓고 75점, 80점 점수 매겨 1점이라도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목이 아프도록 설명했다. 


누군가는 창업의 달인이어서 트렌드에 맞는 1, 2, 3번 사업 아이템을 적어 두고 좀 더 가능성 있는 것부터 실현하는 재주가 있을지는 몰라도, 일반적으로 창업가는 그렇게 '잉여로운'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처음 사업 아이템을 생각해내고 추진하기까지는 우연도 섞이고 계산도 포함되겠지만 창업의 과정은 점수 매기는 것처럼 논리적인 일만은 아니다.


특히 초창기에는 자신이 생각해낸 사업 아이디어로 온 세상을 놀라게 할 성공을 거머 쥘 수 있을 것같기도 하고 또 아무도 관심이 없어 쫄딱 망할 것 같기도 하고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밀당을 수없이 거듭한 끝에 이제는 더이상 돌아갈 수 없음을 인정하고 미우나 고우나 내가 시작한 사업 아이템을 나아서 키울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순간 '창업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내 경험도 그랬고 옆에서 지켜 본 많은 창업가들도 그랬다. 


창업을 하겠다고 나선 이들 가운데 대학에서 리포트 쓰듯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A+를 받을 수 있는 완벽한 사업계획서가 있다고 믿고 그런 사업 계획서를 쓰려 한다. 


초창기 기업에 완벽한 사업계획서가 과연 있을까? 창업을 몇 번씩 해보고 성공한 연쇄 창업가가 나선다 해도 '완벽한' 사업계획서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애초에 계획은 실행을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변수들을 고려하고 정리하는 것이지 그대로만 실행하면 성공이 보장되는 계획서는 없기 때문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업계획서를 쓰려는 사람은 사업계획서 자체의 완결성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현장에 나가서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얼마나 가능성있는지 살펴보기 보다는 가정을 뒷받침해줄 논리와 통계를 찾는 것에 매진한다. 대개 이런 팀들은 시장에서 잠재 고객과 부딪치며 좌절하고 조금만 계획서와 다른 상황을 만나면 그것을 헤쳐 나가려는 생각 보다는 자신의 계획서에 흡집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다. 미흡한 계획서로는 아무것도 실행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결국 H팀은 '회식 예약 시스템' 시장 조사를 한달 쯤 더 한 후에 창업을 포기했다. 그래도 창업의 꿈을 접지 않아 다행이었다. 두 창업자가 오랜 대화를 나누면서 아직 본인들이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가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에 공감했고 서로 현장에서 경험을 쌓은 후에 다시 만나자고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둘은 서로 다른 스타트업에 취업을 했다. 스타트업 회사의 분위기를 익히고 실무 경험을 더 쌓은 후에 꼭 자신들의 아이템으로 창업할 기회를 만들어 보겠다며 작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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