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창업 생활 _ #02
감히 존경하고 애정하는 칼럼리스트의 제목짓기를 따라해본다.
'창업이란 무엇인가?' 질문했지만, 창업자에게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은 하고 싶은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창업을 할 때 가장 첫번째 답해야 할 질문이다. 어떤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 것인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경험을 전하고 싶은 것인지.
초기 스타트업에게 사업 아이템은 너무나 중요하다. 어떤 아이템이냐 설명하는 것으로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 철학, 고객에게 주고 싶은 가치가 모두 드러난다.
그렇다면 창업자들은 어떻게 사업 아이템을 선택할까?
자신이 늘 해오던 일, 가장 잘하는 일을 하기도 하고 졸업 작품전에 출품한 '작품'이 사업 아이템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 어느 순간, 자신의 일상 생활에서 불편한 점을 확인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사업화 한다. '이런 제품이나 서비스는 왜 없을까'에서 출발하기도 한다. 자신이 찾은 해결책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가치를 느낀다면 성공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
주목받는 사업 아이템들은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 혁신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뛰어난 기술력을 갖춘 기업에는 고객들이 반응을 한다. 혹은 전문성을 갖춘 서비스가 등장하면 팬(fan)이 생긴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애플 컴퓨터가 아니다. 한번에 '아이폰'을 내놓을 수는 없다. 스타트업의 기술과 서비스에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담겨 있다. 생활 속에 덩그라니 놓여 있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아이디어가 사업 아이템이 되는 순간 더 넓은 세상으로의 항해가 시작된다. 국내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대명사격인 배달의 민족도 처음에는 배달음식점의 전단지 모으는 것에서 시작했다. 작은 지역에서 출발해서 전국으로 서비스도 확대했다.
누구나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지만 이를 시장에서 구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일을 해내는 것이 스타트업이고 창업가들이다.
2018년에 만났던 스타트업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I라는 회사가 있었다. 생활 속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문제에 집중해 사업 아이템을 삼았다. 화장품을 사용하다 보면 마지막에 다 쓰지 못하고 남아 있는 내용물이 많아 아깝고 버리기도 불편하다. 내용물을 버리고 물로 씻어야 재활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창업자는 내용물을 다 쓰는 방법에 골몰하다 탄성이 높은 실리콘 파우치를 화장품 용기에 넣어 내용물을 사용하면서 점차 파우치가 작아져 내용물을 모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어느날 문득 해결책이 떠오른 것은 아니었다. 몇달씩 고민하고 책과 논문을 찾아 보다가 가능성을 발견하고는 실험을 시작했다.
화장품 용기에 잔량이 남아 아깝고 불편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문제점을 정의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혁신의 모범사례가 아닐까?
혁신이 너무 멋진 말이어서 일반인들은 너무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시작은 생활이고 일상이다. 작은 발견에서 해결책으로 이어질 때 멋진 '혁신'이 실현된다.
T사는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다른 자동차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삼각대가 자동차 트렁크에 있어서 사고 시 설치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번거롭다는 점에 착안했다. 실제로 이 문제로 인해 삼각대를 설치하다가 2차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또한 자동차 운전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이다. 이 회사의 창업가는 자동차 실내에 까는 매트를 뒤집으면 삼각대가 바로 설치되는 제품을 기획했다. 여성들도 누구나 손쉽게 사고시 삼각대를 설치할 수 있게 했다. 이 또한 눈에 띄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아서 모두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중요한 것은 이 모두 아주 사소하고 다소 무모해 보이는 발견과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스타트업은 무모해 보일지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경연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은 도전이 커다란 성과를 이루어질 수 있는 첫걸음이라 믿기 때문이다.
>> 트렌드
2018 6월에 열린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에서 박지웅 패스트트랙 아시아 대표는 '컴퍼니 빌더'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이미 창업 경험이 있는 창업가들과 손을 잡고 패스트트랙 아시아를 설립했고, 국내에서는 생소한 '컴퍼니 빌더'의 모델을 만들어 갔다.
일반적으로 스타트업이 개인이나 몇 명의 공동 창업가들이 자신들이 펼치려는 사업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의기 투합하여 창업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컴퍼니 빌더는 시장 여건을 고려하여 꼭 필요한 사업 분야에 맞는 회사를 만들고 전문가 집단이 함께 키워나가는 형태이다. '기획형 창업' 모델이라 표현할 수 있다.
패스트 트랙 아시아는 성공한 창업가,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비즈니스를 혁신할 수 있는 오프라인 영역에서 창업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2011년, 패스트트랙 아시아가 만들어질 당시 전세계적인 트랜드가 되었던 'O2O (Offline to Online)'에 주목했던 것이다.
당시 패스트 트랙 아시아는 '아직' 오프라인에 머물러 있는 15조원 규모의 패션 도매시장, 12조원 규모의 결혼시장, 10조원 가량의 사무용 부동산 시장(서울) 등에 주목했다. 이 시장에서 소프트웨어 기술을 활용해 좀 더 효율적인 사업 모델을 구축해나갔다.
컴퍼니 빌더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변화와 트렌드. 컴퍼니 빌더가 아니더라도 시장의 트렌드는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시장, 기술, 소비자 요구의 변화, 그 방향을 읽어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말이다.
>> 스토리
인큐베이션 초창기에 쌍둥이 창업가를 만났다. 그들이 하고 싶어하는 사업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한 돌봄 서비스 플랫폼이었다. 질병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다녀야 하는 노인들, 거동이 불편하지만 장도 보고 고궁 나들이도 가고 싶어 하는 분들을 도와 나들이를 도와 주는 도우미를 매칭 시켜 주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도우미의 서비스 품질에 초점을 맞춰 교육을 강화하고 노인들의 질병, 혹은 활동성 정도에 따라 전문성과 자격증을 갖춘 사람을 매칭시키는 것이 서비스의 차별화 포인트라고 했다.
젊은 청년 둘이, 그것도 쌍둥이 형제가 노인 대상 실버 서비스를 기획한 데는 본인들의 경험이 담겨 있었다. 할머니가 오랜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 다니는 일, 때론 산책 가는 일이 가족 모두의 부담이었는데 고등학생이었던 쌍둥이 형제는 마음은 있어도 할머니와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그것이 늘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셨지만 할머니는 꽃구경도 가고 싶고 시장 구경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대학에 진학해서 상대적으로 시간이 생겼을 때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셨고 할머니를 모시고 좋은 구경 시켜 드리지 못한 것이 늘 아쉬웠다. 가족들이 겪었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형제는 같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것이 노인돌봄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모아졌다.
결과적으로 이 팀은 끝까지 서비스를 런칭 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 팀을 만나면 항상 마음을 다해 돕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하려는 사업 아이템이 절실한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진정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 고객 욕구에 대한 통찰
간혹 스타트업 가운데는 큰 어려움 없이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시장에 안착하는 경우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고객들에게 존재하는 욕구를 서비스로 잘 구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를 들어 트레바리는 '독서클럽'이라는 독특한 사업 아이템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이전까지 독서클럽은 동아리 활동이며 유료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누가 3개월에 20만원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독서클럽 활동을 한다는 것인가?
하지만 트레바리가 제시한 '독서클럽'이라는 평범한 사업 아이템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지적 성장을 위한 욕구와 사람들과 어울리려는 커뮤니티의 욕구를 자극하고 있었다. 지적 성장을 위해 사람들은 학원을 다니고 책을 읽는다. 사회적으로 앞서 나간 선배들과 만날 수 있는 모임을 원한다. 트레바리는 이 두가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욕구를 정확하게 서비스로 구현해냈다.
긴 호흡으로 본다면 스타트업의 성공에서 사업 아이템이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하는 것보다는 그리 높지 않다. 그 보다는 시장에서 어떻게 구현하고 실행해내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스타트업이 기술력만으로 성공하지는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