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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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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n 11. 2019

우리 집 허브 삼 남매

산남일기#03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는 특이하게도 화분은 싫어했다. 사무실 이전이나 개업에 화분을 선물로 받으면 덜컥 걱정부터 앞섰다. 내 손을 거쳐 잎이 마르고 검붉은 반점을 드러내며 사라져 간 화분이 하나,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화분의 식물을 가꿔 풍성하게 키워내는 경험을 한 일이 없었다.


집을 옮기고 나서 첫 주말에 화훼농협을 찾았다. 전원생활을 시작했으니 식물과 친해지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 생각했다.


식물원 같은 매장을 돌아본 후 풍성하게 잘 자란 로즈마리 화분을 골랐다. 정말 화분이 많았는데, 선택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로즈마리 향이 워낙 두드러져서 절로 눈길이 갔다. 게다가 풍성하게 잘 자란 녀석이라서 옮겨 심어도 건강하게 자랄 것이라 믿을 수 있었다. 덤으로 작은 라벤더 화분도 하나 받았다. 다음날 분갈이 흙이 모자라 다시 다시 농협을 찾아 유칼립투스 화분을 다시 사 왔다. 허브가 완전 내 취향임을 발견했다.


<풍성한 로즈마리, 춘향이>


초보운전처럼 조심조심 식물 키우기를 시작했다. 정해진 날짜에 물을 주고 햇빛이 너무 강할까 혹시 새벽 찬기가 해롭지는 않을까 애지중지 했다. 낮에는 바람 잘 통하는 마당에 두었다가 밤에는 거실로 들여놓으며 보살폈다. 아파트에 비해 건조하지 않고 햇살 좋고 통풍이 잘 되다 보니 큰 기술 없어도 식물들은 무럭무럭 자랐다. 하루가 다르게 줄기가 뻗어 나가고 잎이 무성 해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비염에 좋다는 유칼립투스, 삼봉이>


저녁 10시쯤이면 하루를 보낸 우리 가족이 모여 짧지만 수다를 떠는 시간이 이어진다. 재수 중인 아들도 학원에서 돌아와 운동을 마치고 맘 편하게 주스 한 잔 마시는 시간이며, 퇴근해서 분주하게 집안일 돌보던 우리 부부도 편안하게 하루를 정리한다. 이때 허브 삼총사는 늘 우리 대화에 오르곤 했다. 많이 자란 것 같다느니, 언제 물을 주었느니, 향이 좋다느니.. 등등.


<덤으로 얻었지만 가장 잘 자라고 있는 라벤더, 심순이>


가족 같은 아이들을 늘 '이것' '저것'으로 부르는 것이 안쓰러워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우선, 우리의 든든한 맏이 로즈마리는, 향이 싱그러워 [춘향]이라 이름 붙였다. 로즈마리에 곁다리로 덤으로 얻은 라벤더는 심학산에 산다고 해서 [심순]이로 이름 지었다. 마지막으로 유칼립투스 이름 짓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춘향, 심순과 함께 사는 아이이니 향토색 짙은 톤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에는 다들 동의했지만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는데 좀 더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정해진 이름은 [삼봉]이. 원래 산남리에서 따서 '산봉'을 생각했지만 삼봉이로 발음을 순화시켰다.


남편과 아들, 셋이 앉아서 허브 삼총사의 이름을 지었더니 더욱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아침, 저녁으로 이름을 불러 주리라.


춘향아!


심순아!


삼봉아!


허브 삼총사는 그렇게 우리 가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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