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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n 13. 2019

소파 없이 살아남기

산남일기 #04

이사를 하면서 가장 고심했던 것은 거실 인테리어였다. 인테리어라고 했지만 거창하게 공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집안은 최대한 원래 구조를 살리고 가구나 장식을 최소로 해서 심플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전에 살던 아파트 거실에는 여느 집처럼 소파가 벽면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반대편에 TV가 있었다. 중간에 낮은 테이블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너무 평범한 구조였다. 하지만 온 가족이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파는 휴일에 가장이 TV를 틀어 놓고 누워서 자는 듯, 조는 듯, 쉬는 듯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었다. 나는 TV를 볼 때는 내 방에서 노트북을 켰고, 차를 마실 때는 식탁에 앉았다.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소파가 거추장스럽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사한 집은 거실에 넓은 창이 있고 바로 앞에 정원이 이어지는 구조다. 창이 밝아 (특히 낮에는) TV 보기에 적절치 않았다. TV 보다는 훨씬 재밌고 건강에도 좋은 햇살과 나무와 풀, 바람이 바로 앞에 펼쳐진 이 곳 거실에서 TV와 소파를 배치하고 조는 듯, 쉬는 듯하고 있는 것은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사 전에 거실에 TV와 소파를 치우고 카페처럼 널찍한 우드슬랩 테이블 하나 놓으면 어떻겠냐고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집안 인테리어는 전적으로 내게 맡기겠다던 남편의 얼굴에 동요가 일었다. '아니 거실에서 TV와 소파를 없애겠다고? 그럼 TV를 어디에 둔다고? 거실이 너무 휑해지지 않을까?' 머릿속에서 이런 질문들을 쌓아 두고는 차마 내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어쩌면 고집 센 마누라를 어떻게 설득할지 고심하는 눈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완성된 거실>


남편을 설득하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우드슬랩 테이블이 멋지게 펼쳐진 가구점도 가보고 카페처럼 쾌적한 공간에서 음악 듣고 책 읽고, 저녁엔 와인 한잔 하는 게 소원이라고 귀에 딱지가 붙을 만큼 얘기했다. 믿음은 없었겠지만 부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결국 내게 설득당했다. 그렇게 결정한 후에도 자신의 휴일을 돌봐줬던 소파를 버리기 아쉬웠던지 길이가 3미터나 되는 소파를 서재에 넣겠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더니 결국 이사 이틀 전에 헤어지기로 어려운 결심을 했다.


소파와 헤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남편이 걱정되기도 하고 실제 거실 분위기와 내가 상상하던 것이 어울리긴 할는지 우려의 마음도 있었는데, 우리 집 거실은 넓은 테이블과 책장 하나로 멋진 쉼터이자 놀이터이자 술터(?)로 완성됐다.


<술터로 자주 변신하는 거실>




환경이 바뀌니 일상도 변화했다. 주말에도 거의 TV를 보지 않게 됐다. 자기 전에 밀린 드라마를 보던 내 습관도 한순간에 없어졌다. 거실에서 늘 음악이 흐르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한다. 밤에는 멋진 술집 분위기도 난다. TV는 청소년 축구 경기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소리를 낸다.


소파 없이도 가족들이 더 자주 모여 앉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쯤이면 모두 '소파란 무엇인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하지 않을지.. 물론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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