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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n 06. 2019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산남일기 #02

나이가 들면서 많은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꿈꾼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시 생활이 버거울 때면 숲과 함께 숨 쉬고 꽃과 나무를 보며 평안을 얻기를 바란다. 매일 일해도 해야 할 일 리스트는 줄지 않고 사람과 사람의 부딪침으로 늘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처럼 풀어야 하는 지점을 알지 못할 때,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직장동료가 위안이 되지 못하고 친구마저 지위와 재력으로 나를 평가할 때, 지친 몸 쉬일 곳을 찾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 전원을 찾기 어려우니 주말마다 산을 찾고, 캠핑을 가고, 여행을 한다. 


서울 중구 장충동 한 복판에서 태어나 뼛속까지 도시 아이였던 나와 달리 남편은 오래전부터 전원생활을 꿈꿨다. 이십여 년 전 맘 맞는 회사 사람들과 파주에 전원주택을 짓고 마을을 만든다고 뛰어다녔다. 산남리 (지금은 산남동이 되었다)에 들어선 100 채의 집들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다. 


2천 년 초반에, 처음 집이 지어졌을 때 우리 가족들은 '대망'의 전원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미국 유학 중이었으므로 할머니 댁에 놀러 가듯이 방학 때 잠깐씩 이 곳에 머물곤 했었다. 따라서 내게는 전원생활의 기억이 전혀 없다. 내가 공부를 마치고 돌아올 즈음 우리 가족은 인근 일산으로, 다시 도심으로, 집을 옮긴 후였기 때문이다. 


<처음 이 집에 살 때 큰 아이는 초등학생, 둘째는 유치원에 다녔다> 


15년 전쯤, 아이들은 어렸고 남편은 바빴다. 사회생활로 바빠 하루가 멀다 하고 술자리가 생기는 여건 속에서 어린아이들 돌보며 전원생활을 한다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은 퍼즐을 맞추려 하는 것만큼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 집뿐 아니라 함께 마을을 건설했던 선배, 후배들 대부분이 야심 차게 전원생활을 시작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갔다. 


여의도를 떠나 산남동으로 다시 전원생활에 도전하면서 우리는 걱정이 컸다. 예상 가능한 불편함 이외에 생각하지 못했던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꿈꿔왔던 전원생활을 하면서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던 것은 실패의 경험이 상처로 남아 있어서였다. 


하지만 이사한 첫날, 둘째 날 짐을 정리하면서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은 맞다'는 것을. 이사한 지 불과 열흘 남짓 지났지만 우습게도 나는 이제 다시 도심의 아파트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꽤나 자주 하고 있다. 


물론 불편함은 머릿속에 있을 때보다 꺼내어 일상이 되고 보니 더 실감 나게 느끼고 있다. 자유로 - 올림픽대로 - 경부선을 두루 거쳐 경기 북도에서 경기 남도로 출퇴근하는 길은 매일매일이 여행길이다. 아직 적응이 덜 되어서인지 저녁이 되면 피로감이 온몸으로 퍼져 손과 발이 저릿저릿하다. 게다가 문 한 번 잘못 열면 나방이 거실로 들어와 허둥대는 모습을 수시로 보아야 한다. 잠깐 걸어 나가 필요한 것을 사 오는 편리함은 기억 속에서 접어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모든 불편함에도 일상이 평안하다. 깊은 잠을 자고 새소리에 개운하게 잠을 깬다. 퇴근길은 늘, 캠핑장으로 향했던 여행길처럼 설렌다.  난생처음 텃밭을 가꿀 생각도 해보고 길가다 종묘상에 들러 구경도 한다. 그곳에서 파는 마늘이며 양파 등 이웃들이 길러낸 야채를 사서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제는 청년이 된 둘째 아들과>


15년 전에는 불편해서 못 살겠던 이 곳에서의 생활이 이제 편안해진 것은 왜일까? 사회적 의무감을 많이 덜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커서 챙겨야 하는 일이 현격하게 줄었고 이제는 저녁 자리에서 '동맹'을 다짐하며 술 마셔야 하는 이유도 거의 없어졌다. 


그동안 전원을 그리워하며 캠핑이며 등산이며 많이 다녔던 탓에 우리 집 앞마당에 무심히 숨 쉬고 있는 소나무며 화살나무, 감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반갑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심학산 숲의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산다. 


그 무엇보다 불편함을 받아들일 만큼 나는 나이를 먹었고, 도시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충분히 경험했기 때문에 그곳을 벗어나도 전혀 아쉽지 않음을 알게 됐다. 


한적한 휴일, 이런 때야말로 거실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간혹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라 느낄 수 있으니. 오늘 점심은 무얼 해먹을지가 큰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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