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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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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n 24. 2019

텃밭 만들기

산남일기 #05

상추, 로메인, 치커리, 겨자, 비타민 등 쌈이나 샐러드에 필요한 채소를 직접 길러 먹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실천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베란다 텃밭을 만들어 키워볼 엄두는 나지 않고 주말농장을 일궈볼 생각도 없었다.


이사한 이후 '텃밭에 채소 키우기'는 일종의 숙제와 같았다. 마당이 있는 집, 한 뼘 되는 땅이라도 텃밭으로 가꾸어 상추 정도는 길러 먹어 줘야 마땅할 것 같았다. 엄두가 안 나서 그렇지 사실 멋진 일이니까.


화분 분갈이도 겨우 해서 허브 삼 남매 배우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던 우리에게 다음 레벨의 미션이 주어진 것이다. 텃밭 만들 장소를 정하는데도 2주 넘게 걸렸다. 소나무가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앞마당, 가장 볕이 잘 드는 곳으로 해야 할지, 잔디를 걷어내고 상추를 심어도 될 것인지, 막상 시작하려니 생각하고 따져 봐야 할 것이 넘쳐났다.



고심 끝에 집 뒤쪽 잡초 무성하게 버려진 땅을 개간하기로 결정했다. 잡초를 다 걷어내고 나니 너무 크지 않은 공간이 생겼다. 청상추, 적상추, 로메인, 적겨자, 풋고추, 매운 고추, 파프리카를 심었다. 종묘상 아저씨가 적극 추천한 블루베리도 두 그루 심었다. 17년 차 전원생활을 하고 계신 선배 집에서 얻어온 방아도 우리 텃밭 식구가 됐다. 화분으로 키우던 바질도 땅에 옮겨 심었다. 너무 많이 옮겨 다녀 살 수 있으려나... 대략 1*4미터 구역 두 곳이 개간이 되었는데 한쪽에는 쌈채소와 고추류를 심고 한쪽은 허브 밭으로 하기로 했다. 루꼴라, 고수, 비타민 등은 씨로 뿌렸다. 매일 물은 주고 있지만 과연 싹이 날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된다.



공부할 것이 늘었다. 짬짬이 유튜브로 원예 비법 동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텃밭을 둘러보고 잎이 났는지, 키가 컸는지, 고추가 열렸는지, 자랐는지 보는 게 일과가 됐다. 지식이 없는 대신 관심과 사랑을 듬뿍 주고 있다. 농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면 턱도 없는 말이겠지만, 적어도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허브 삼 남매와 마찬가지로 우리 '식구'인 것은 맞는 말인 것 같다.



주말에 블루베리가 잘 익었길래 아침에 모닝빵과 곁들여 먹었다.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며 처음으로 텃밭에서 수확을 했다. 상추는 아직 덜 자란 상태여서 마트에서 사 왔고 겨자잎과 방아를 뜯어 곁들여 먹었다. 집이 숨 쉬고 있는 느낌이다. 공간도 나와 함께 호흡하며 땅에서도 내 관심과 정성을 먹고 자라는 생명이 숨 쉬고 있는, 집은 그런 곳이다. 사실 태어나서 처음 느껴 보았다. 집과 함께 숨 쉬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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