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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l 07. 2019

텃밭에 두더지가 나타났다!

산남일기 #06

파주로 이사 온 후 동물들과의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첫 번째 상대는 동네 고양이들. 주인 없는 길고양이로 보이는 서 너 마리가 마치 문제 청소년들처럼 몰려다닌다. 우리 집 마당에 와서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 사라지곤 했다. 때로 우리 집에 '실례'를 하고 가기도 한다. 그래도 버티며 간식거리를 주지 않았더니 오는 빈도는 줄었다.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다니는 그 아이들은 이미 '동네 주민'과 같은 존재다. 그냥 대면 대면하는 것으로 관계 정리!


집 안에 개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개미들이 마늘을 싫어한다는 헛 정보를 얻어 개수대 부근에 마늘 조각을 놓아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쿠팡에서 추천하는 개미 박멸 살충제를 샀다. 살충제를 콩알 크기만큼 한 두 곳 짜 놓았더니 거짓말처럼 다음 날로 개미가 사라졌다. 민간요법 소용없다, 역시 약이 최고였다.


개미를 물리치고 안심할 찰나, 그다음 타자가 등장했다. 텃밭에 뱀이 나타난 것이다. 상추 옆에 똬리 틀고 앉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웃에 사는 선배님 덕분에 뱀을 제거할 수 있었다. 당장 명반을 사다가 집 주변에 뿌려 두었다. 그날 온 통 개미떼에 공격당하는 꿈을 꿨다. 뱀이 떼거리로 등장하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다음 타자는 두더지였다. 사실 두더지를 본 것은 아니다. 어느 날 텃밭에 구멍이 뚫려 있고 땅이 솟아 오른 곳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설마 두더지 일까 했는데, 조경하시는 분이 보더니 두더지가 맞다고 확인해주셨다. 이제 두더지 퇴치법을 공부할 때다. 네이버에 검색해보니 각종 경험담이 난무했다. 덫을 놓아 잡으라는 조언이 많았지만, 그렇게 두더지와 마주 할 자신은 없었다. 그저 물리치고 싶을 뿐이었다. 조경 아저씨가 신박한 방법을 알려 주셨다. 알람시계를 사서 오전 5시, 5시 반에 맞추어 놓고 땅에 꽂아 두라는 것이다.


<두더지 퇴치를 위해 텃밭에 알람시계를 묻어 놓았다>


아침 5시에서 6시에 주로 활동하는 두더지는 소리와 진동을 싫어하기 때문에 알람이 울려 땅속에 진동이 퍼지면 자연스레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시골 초보이니 고수가 시키는 대로 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효과가 있는 것도 같다. 다행히 두더지가 땅을 파도 상추가 죽지는 않았다. 매일 물 주며 키운 상추인데.. 난 이 아이 없인 못살아. 그러니 제발 우리 상추를 포기하고 떠나 줄래? 매일 물 주며 두더지에게 마음으로 호소한다.


자, 두더지를 처리했다고 끝은 아니다. 다음은 새들이다. 어느 날 보니 지붕 아래 동그란 구멍이 생겼다. 그 구멍으로 새들이 날아드는 것을 목격했다. 작은 새가 빼꼼 나왔다 들어가는 것을 보니 그 안에서 새끼들을 키우는 것 같았다. 이 동네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했다. 관리사무소에 얘기하면 접수해두었다가 여러 집을 모아 한 번에 새 구멍 모아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니, 다들 한 두 번씩 겪는 일인가 싶다. 당분간 새들과 동거가 불가피하게 됐다.


도심 아파트에 살 때는 거미 한 마리, 개미 한 마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했다. 곤충이나 동물들은 물리쳐야 할 적이었다. 도심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편의의 공간이다. 그 공간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시골은 사람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자연과, 그 일부로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공간이다. 어찌 보면 심학산 산자락에, 새들과 곤충과 두더지와 뱀들이 사는 곳에 우리가 터전을 잡은 것이다. 그들과 어울려 살거나 거리를 두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을 뿐.


새 구멍을 메우고 나면, 또 어떤 동물들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할지, 살짝 기대도 된다. 그렇게 새들을 이해하고 두더지를 이해하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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