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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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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Aug 06. 2019

휴식의 선물

산남일기 #09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날씨에 집에서 어슬렁 거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휴가를 집에서 보내기로 한 결정 덕에 이 더위에 놀 것을 찾아 나서지 않고도 잘 놀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니 그동안 생각은 있으나 시간을 내지 못했던 일들을 꼼지락 거리며 할 수 있게 됐다. 뜨개질이며 재봉이며 그런 것들이다. 덕분에 내게 주는 많은 선물이 생겼다.


먼저, 여름 가방. 여름이 시작될 때쯤 종이 실로 가방을 하나 떠야겠다 생각하던 즈음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발표됐다 (이런 거창한 이웃나라의 정책 기조가 내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원래 '미도리'라는 일제 종이실로 뜨려 했지만 대체재를 찾아 알로하 실을 주문했다. 요즘 유행하는 헤링본 스티치로 시작을 했는데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으나 휴가가 시작되자 드디어 완성!



계절이 계절이어서 그런지 종이실 가방이 잘 어울린다. 다만, 손잡이를 좀 더 짧게 뜨거나 더 길게 뜰 것을... 어중간한 길이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핸드메이드란 그런 것. 떼어서 다시 뜨지 않고 그냥 쓰기로 했다. 2019년의 여름 가방은 손잡이 길이가 어중간한 것이 특징.


식탁보와 테이블 매트는 소모품이다. 처음엔 예쁜 천으로 정성 들여 만든 테이블보, 테이블 매트에 김치 국물이 묻으니  너무 안타까워 탄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밥을 기분 좋게 먹기 위해 만든 테이블 매트를 '모시며' 음식이 떨어질까 불편하게 밥을 먹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다음부터는 맘 편하게 쓰고 음식물이 바로바로 빨아서 사용하는 것으로 모드를 전환했다. 그러자니 테이블보가 많이 필요했다.



여름휴가 기념으로 만들었다. 시원하고 산뜻한 느낌의 나뭇잎 테이블보와 양파 매트. 기분전환에 최고다.


가방 뜨고 남은 실로 간단하게 지갑 하나 만들었다. 너무 두꺼워 지갑으로 쓰기보다는 간단하게 외출할 때 들고 다니면 편할 것 같다.



이밖에도 주방에 개수대 쪽 창문에 낡은 커튼을 떼어 내고 잔잔한 무늬가 귀여운 천으로 커튼도 달아 놓고 여기저기 예쁜 천들로 받침을 마련해 놓았다. 아직 머릿속에 만들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휴가가 끝나가니, 리스트에만 얹어 놓을 뿐이다.



머리를 비우고 몸을 편안히 쉰다는 건 급속 충전 모드와 같다. 짬짬이 손으로는 무언가를 만들면서,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길에 대해 방향을 돌아보고 생각을 가다듬는 일도 계속되었다.


이제 산을 내려가는 중임을 이해하고, 하산길에 맞는 호흡과 발걸음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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