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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Aug 18. 2019

전원생활 FAQ

산남일기 #10

요즘 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 이사하셨죠? 전원생활 어떠세요? 아, 좋아 보여요.. 등등.


시골로 이사 온 지 세 달째, 엄청 많은 얘기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파한 것 같다. 아마도 도시에서 지역을 옮겨 이사한 것이라면 주목할 이유가 없겠지만 전혀 다른 환경으로 옮긴 것이어서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전원생활에 대한 생각이 드러나는 지점이어서 어떤 것을 궁금해하는지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중 자주 묻는 질문들을 공유하려 한다.


"도시가스는 (당연히) 안 들어 오죠?"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유틸리티 서비스에 대한 것이다. 전기쯤은 들어올 것이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수돗물도 나오는지, 화장실 오수 처리는 되어 있는지 궁금해한다. 가스는 당연히 가정용 LPG를 사용할 것이라 '예상'한다. 도시가스 사용한다고 하면 아, 그래요? 하며 반문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원생활'의 전형은 지방 국도를 달리다 들르는 닭백숙 식당 같은 곳일까? 주차장 옆으로 꽃밭과 텃밭이 자리 잡고 있고 한쪽 어딘가에 덩그러니 가스통이 한두 개쯤 놓여있는 그런 곳 말이다.


요즘은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도 단독 주택을 단지 형태로 지어 놓은 곳이 많다. 일명 '타운하우스'라고 해서 좁은 땅을 이용해 3-4층짜리 주택을 짓고 각 층마다 공간을 구분해 놓은 형태다. 아파트보다는 훨씬 자연 친화적이다. 게다가 이런 곳은 공동주택이 주는 관리 기능도 갖추고 있어 편리하다고 한다.


내가 사는 집도 15년도 전에 지어졌지만 (처음 입주 당시는 LPG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유틸리티를 잘 갖추고 있다. 오물 처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00세대가 살고 있어 관리사무도가 있으니 무엇이든 필요한 기능은 공동구매 형태로 해결하기도 한다.



"원래 화분 키우는 거 좋아하셨어요?"


아니요. 전 제 손에 전기가 흐르는 줄 알았어요. 화분만 집에 들이면 한 달을 못 버티고 말라죽어서...


이사 오고 매일 텃밭 이야기, 마당 꽃 사진을 올렸더니 내가 원래 꽃 가꾸는 것을 좋아하고 취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혀 아니다. 마당이 있고 텃밭 가꾸는 이웃이 있으니 자연스레 어디에 꽃을 심을까, 어디에 상추를 심을까 고민하게 될 뿐이다.



시골에 오고 느낀 점은, 이곳에선 빈 땅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심는다는 자그마한 발견이다. 식당 옆 작은 땅에 향초인 방아가 심어져 있고 차들이 다니는 길가에도 무심히 호박 넝쿨이 자라고 있다. 도심의 잘 관리된 화단과는 달리, 자발적인 움직임이다.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있으면 식물을 심는다. 작지만 놀라운 발견이었다.



"일이 엄청 많다는데, 괜찮으세요?"


일이 많다. 아침에 일어나서 텃밭에 물도 줘야 하고 씨앗도 뿌려서 매일 싹이 트는지 관찰도 해야 하고, 집 안에 뭔가 고장이 나도 관리 사무소에 연락하는 대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검색부터 하고 방법을 찾는다.


그뿐인가. 안 해도 되는 일을 기를 쓰고(?) 찾아 한다. 매실 사다가 꼭지 따고 씻어 말려 매실주 담그고 매실청까지 담아 두었다. 옥수수 박스로 사다가 껍질 벗겨 삶아 냉동실에 쟁여 뒀다. 가끔씩 생강 까서 대추와 함께 생강 대추차를 끓여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마신다. 레몬 사다가 청도 만들어 뒀다.



십 년도 더 넘게 하지 않았던 손님 초대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집에서 겨우 밥 차려 먹는 것도 귀찮아하던 내가 왜 일을 만드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냥, 시골에선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넉넉하게, 손이 많이 가더라도 최대한 직접 만들어서... 그게 전원생활일 것 같아서. 누가 시킨 것도 가르쳐 주지도 않았지만 주말이면 아침 일찍 일어나 일을 자청한다. 그런데, 그게 보상도 있다. 익어가는 매실주를 보며, 직접 끓인 생강 대추차를 마시며 느끼는 뿌듯함이라니... 맛은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벌레가 많죠?"


벌레가 많다. 매일 한 번씩은 마당에 나가 꽃들에게 인사를 건네는데 그럴 때마다 한 두 방씩 물리곤 한다. 메뚜기, 사마귀, 개구리, 기타 등등 뛰어다니는 애들이 곳곳에 있다. 모기도 꽤 있다.


그래도 문만 잘 닫아두면 벌레들이 집 안으로 침투하지는 못한다. 어쩌다 열린 문틈으로 집 안에 들어온 벌레, 날 것들은 무척 당황해하며 집 안을 이리저리 돌다가 어느 구석에서 죽어 간다. 그들에게도 집 안은 자신들의 영역이 아닌 것이다.


도심의 벌레는 사람들 사는 공간에 기생하는 느낌이라면 여기 벌레는 그냥 저 밖에서 살아가는, 그들만의 영역을 지닌 종적인 듯하다. 내가 그들의 영역에 갈 때 부딪치다 물리는 정도 감수해야 할 것 같은...


그래도 두더지도 나타나고 심지어 뱀도 나타나면 그들을 떼어 놓기 위한 방법들을 고민해야 한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해악이 크다.



"산골에 사는 거 아니었어요?"


시골 살이는 불편하다. 서울 도심에 비하면 자연에 가까운 만큼 편의시설과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처음 이 집이 지어졌을 때는 도로 정비도 잘 안된 논길이어서 더욱 힘들었다. 그래도 제2 자유로도 생기고, 무엇보다 운정 신도시가 만들어져 모든 것이 엄청 편해졌다.


이 시골 동네 사는 것을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만든 건, 무엇보다 택배시스템의 발달이다. 쿠팡 주문하면 로켓 배송까지는 아니어도 KTX 배송 정도는 가능하다. 온갖 물품이 택배로 문 앞까지 배달되니 그다지 불편함이 없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전원생활 예찬론을 펴고 있지만 누구나 시골에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벌레 물리는 거 괴롭고 출퇴근 힘들다. 그래도, 그에 반해 얻는 이익이 워낙 커서 감수할 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활이 상상만큼 그리 불편하지 않다. 우리에겐 쿠팡이 있으니깐!



"은퇴를 준비하고 계세요?"


과감하게 한시간 반의 출근 길을 감수하고 시골살기를 결정했더니 많은 사람들이 이제 내가 사회 활동은 대강 접으려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초야에 묻혀 정원 가꾸며 살려고 하는가 보다 예상하는 것 같다. 


물론 집에 있어서 별로 심심하지 않을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지만, 아직 때가 아닌 듯하여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오히려 새로운 일을 해볼까 궁리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전원생활 = 은퇴 라는 공식은 더이상 맞지 않다. 맑은 공기 마시며 매일 캠핑지에서처럼 휴식을 취하면 오히려 일하는 에너지는 더 커질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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