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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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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03. 2019

고양이의 SOS

산남일기 #12

일요일 저녁이었다.  일주일에 단 한 번 느긋하게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시간. 마침 9월이 시작되어 마음까지 상쾌했다. 드디어 무덥고 힘겨웠던 여름이 끝나간다는 것을 공기에서, 햇살에서 느낄 수 있었으니까.

 

'주말'이라는 편안한 이름에 걸맞게 하루를 보냈다. 느긋하게 커피 마시며 정원도 걸어 보고 산에도 다녀오고 오랜만에 가족영화도 봤다. 저녁 메뉴는 아들이 좋아하는 양갈비. 화룡점정이라 할 만했다. 


저녁을 먹으며 푸근하게 하루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밖에서 뭔가 소리가 들렸다. 나가보니 까만 고양이 한 마리가 마당 경계로 심어놓은 나무 아래서 노란 눈빛만 반짝이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엔 문을 열고 고기 굽는 냄새를 풍기니 왔나 보다 했는데, 자세히 보니 등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부분에 빨갛게 상처가 드러나 있다. 덩치 큰 개나 다른 짐승에 물린 듯한 것으로 보인다. 


상처 난 몸으로 우리 집에 뛰어든 이 녀석, 조심스러워 우리가 다가가면 한걸음 도망가는 숨바꼭질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래도 다시 돌아와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절박하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 아이가 얼마나 배가 고픈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고기는 다 먹었고, 있다 해도 소금, 후추, 로즈마리 등으로 시즈닝이 듬뿍 되어 있어 고양이에게 줄 수가 없었다. 급하게 냉장고를 뒤져 닭가슴살을 꺼냈다. 작은 크기로 잘라 접시에 담아 마당에 놓아주었다. 쏜살같이 달려들어 고기 몇 조각 물고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애처롭다. 가로등 불빛에 얼핏 비친 뒷모습을 보니 상처부위가 생각보다 크다. 피가 나지는 않지만 뻘겋게 딱지 같은 것이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 아이가 안쓰러워 이리저리 살펴보다가도 우리 모습이 보이니 몸을 숨기기에 바쁜 것이 또 안타까워 한참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한 접시를 순식간에 비우길래 하나를 더 내어 주었다. 계속 숨바꼭질하며 조금씩 닭가슴살 조각이 없어지는 것을 확인하곤 했다.


아침이 되니 땅에 떨어져 있던 조각까지 닭가슴살은 모두 사라졌다. 아픈 고양이가 먹었는지, 혹은 지나가던 길고양이 차지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동네에 길고양이들이 꽤 많이 있다. 동네 사람들이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는지, 사람이 쳐다 보아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제 갈길 가는 쿨~한 녀석들이다. 주말에 하루 종일 집에 있다 보면 한 두 번씩은 마당을 가로질러 가기도 하고 두엇이 모여 잠시 우리 마당에서 놀다가기도 한다. 가끔씩은 화단에 씨 뿌려 놓은 곳을 밟아 새싹을 죽이기도 하고 텃밭에도 나타나는 것 같지만 대체로 인간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아는 놈들이다. 사람을 보고도 후다닥 급하게 숨지 않는 적당히 뻔뻔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마을을 자신들의 영역이라 생각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라 느껴진달까.


하지만 지난 일요일 만난 고양이는 내내 눈에 밟힌다. 어제도 혹시나 그 녀석이 다시 오지 않을까 깜깜한 마당을 여러 번 들락 거렸다. 상처는 치료가 되었는지, 더 심해지지는 않았을지 걱정된다. 밥은 먹고 다니는지... 한 번만 더 고양이가 집에 오면 아예 고양이 사료도 사놓고 집도 지어놓을 기세다.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에 비해 그 녀석이 유독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와 절박한 눈빛을 나누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눈은 배고프고, 고단한 자신의 심경을 단 몇 초만에 전달할 만큼 강렬했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것은, 마음이 가고 있다는 것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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