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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22. 2019

가을이 왔다...

산남일기 #13

며칠 사이에 계절이 바뀌었다. 가을이다.


아침에 일어나 앞마당 꽃밭 챙기고 데크의 화분들을 지나 집 뒤편 텃밭까지 순찰을 돌며 식물들의 '평안함'을 살피는 게 세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과가 되었는데 한 스텝이 추가됐다. 일어나 겉 옷을 걸쳐 입는 것. 아침 공기가 벌써 서늘하다.


시골로 이사와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맞는다. 봄에 와서 지루했던 여름을 견뎌 내고 이제 결실의 계절이 되었다. 텃밭도 제법 익숙해졌고 화분의 식물들과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햇살 가득 받고 충분히 물을 섭취한 식물들은 잎에 윤기가 흐른다. 물이 부족하며 잎이 마르고 장마에 과습 하면 안색이 변하듯 색깔이 달라진다.


아직 까마득히 초보인 나는 제법 아는 척을 하며 '갈피미아에 물을 줘야 돼!'하고 외치거나 물속에서 뿌리를 낸 로즈마리를 흙에 심고는 '이 아이는 살아날 거야!'라며 진단을 내린다. 운전 경험 1년쯤 되면 과속도 해보고 과감한 끼어들기도 하는 것처럼 자신감이 붙어 있지만, 사실상 안심할 것은 못된다. 이번 장마에 유칼립투스를 비에 방치했다가 절반의 가지를 날려 보냈고 로즈마리는 웬일인지 더 이상 성장을 멈추었다. 태풍에 텃밭에 심어 놓은 상추와 배추가 모두 날아가 버렸다. 다시 생각해도 마음 아픈 일이다.



그래도 가녀린 코스모스는 바람과 장마, 무더위와 태풍을 모두 이겨 내고 꽃을 피워냈다. 앞 뜰에 핀 코스모스가 대견하고 특별한 건, 씨앗부터 뿌려 꽃을 보게 되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꽃씨 한 봉지를 모두 뿌렸는데 남은 건 겨우 세 가지라는 건 슬픈 일이긴 하다.


시골에선 계절을 빨리 느낀다. 자연에서 훨씬 더 가깝게 지내는 것 - 전원생활에 대한 내 정의이다. 태풍 [링링]이 지나갔을 때 자동차도 날려 버린다는 세찬 바람을 2층 내 방에서 지켜보면서, 아니 견디어 내면서 느꼈다. 도시와 달리 시골은 자연의 영향을 바로 옆에서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바람에 온갖 나무들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세 찬 빗줄기를 울부짖으며 맞아내고 있을 때, 방에 있었지만 나도 태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무서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태풍의 실체를 몸으로 느꼈달까.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있어서 바람이 좋고, 햇살이 따사롭고, 별이 보이고, 달빛이 아늑하다는 건 낭만적이지만 태풍이나 자연재해에 좀 더 노출되어 있고 벌레 많다는 건 어쩔 수 없는 단점이다.


가을을 맞으며 벌써 겨울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아파트보다는 더 추울 듯해서 난로를 폭풍 검색하고 밤낮으로 걸쳐 입을 스웨터도 떠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계절이 바뀔 때마다 뭔가 다음을 준비했던 엄마, 할머니의 일상으로 돌아간 것도 같다. 엄마는 가을이 무르익으면 김장 채비를 하고, 늘 내 스웨터를 뜨셨다. 봄에는 봄의 일, 여름엔 그 계절의 일들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맞물려 돌아간다는 건 소박한 기쁨을 배우게 해주는 일이다.



감나무에서 감이 익어간다. 올해는 곶감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될지 모른다는 설렘으로 감이 익길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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