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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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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Nov 05. 2019

냥이 집사 입문기

산남일기 #14

원래 이 마을에는 주인 없는 고양이들이 꽤 있었다.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주눅 들지 않고 다니는 녀석들. 몇몇은 고만고만한 크기에 생김새도 비슷해서 형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엔 우리 집 마당을 어슬렁 거리는 녀석들이 불편했다. 한 번도 반려동물을 키워 본 적 없었던 나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동물들을 무서워했다. 길가다가 마주쳐도 피해다는 편이었으니 내 집 앞마당을 자유롭게 다니는 녀석들에게 당혹감을 느꼈던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두어 달 전 상처 입은 까만 고양이가 우리 집을 찾아 배고픈 눈빛을 강렬하게 던지고 간 이후부터 고양이들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혹여 까만 고양이가 다시 오지 않을지 안부를 궁금해하다가 급기야 고양이 사료를 주문하게 됐다. 그 녀석이 아니어도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고양이들이라도 배곯지 않게 하자는 취지였다.


사료통을 데크에 놓아두었더니 냄새를 맡고 한 두 마리씩 오기 시작했다. 동네를 다닐 때는 사람을 피하지도 않더니 거리가 가까워져서인지 사료를 먹으며 연신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니 우리 집은 고양이들 사이에서 제법 알려진 '식당'이 되었고 단골로 드나드는 아이들도 생겨났다. 대략 열 마리 가량이 우리 집에서 밥을 먹는다. 그중 절반은 거의 매일 들르고 나머지는 어쩌다가 오는 편이다.


어느 동물이든 밥을 챙겨주고 함께 하다 보면 정이 든다. 특별히 두 녀석과 긴밀해졌다. 고양이 알. 못인 내가 봐도 나이가 많이 든 달건이. 이 아이는 한쪽 눈이 작다. 작은 눈에 눈곱도 끼고 눈물도 난다. 어떤 날은 증세가 더 심해지기도 한다. 눈 때문인지 항상 사물을 쳐다볼 때 찡그린 표정이다. 그래서 처음엔 표정이 고약하다고 생각했었다. 지켜보니 심성이 착하다. 데크에 햇반 그릇 두 개에 사료를 놓아두는데 다른 고양이가 와 있으면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선다. 함께 먹이 경쟁을 하지 않는다. 보통 다른 고양이들이 없는 시간에 와서 느리게 밥을 먹고 데크에서 한 참 느긋하게 누웠다가 간다.



달건이와 친해진 건, 어스름 해질 무렵 집에 도착했는데 달건이가 데크에 누워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름 바라보고 있는 날들이 쌓이면서부터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사랑에 이르게 하는 지름길이다.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밥을 챙겨 주면 열심히 먹는다. '식구'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마침 백수가 되었던 내 신세 한탄(?)도 하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주말이면 간하지 않은 고기를 구워 놓고 달건이를 기다리기도 하고 회를 먹을 때도 좀 더 넉넉하게 주문하게 되었다. 달건이를 챙기다 보니 험상궂어 보이던 첫인상도 바뀌었다. 못생겼지만 귀엽다. 느긋한 움직임도, 가끔씩 빤히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옆으로 까닥이는 것도 정겹다.


다른 한 녀석은 달건이와는 달리 '야~옹' 거리며 제법 애교를 부리는 아이다. 이름은 스노우. 달건이가 눈을 꿈뻑이며 밥 줄 때까지 기다리는 느긋한 성격이라면 스노우는 '야~옹' 거리며 집사를 부르는 스타일이다. 데크에 들어갈 만한 공간을 잘도 찾아서 가끔씩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활기가 넘치는 녀석이다.




고양이 밥을 챙겨주기 시작하면서 우리 가족의 아침 인사는,

 "달건이 아직 안 왔어?"

"스노우가 데크에서 자고 있었어..!!"

등으로 바뀌었다.



우리 집 데크 손님 고양이 중에는 배가 불룩한 아이도 둘이나 된다. 날은 추워 오는데, 어디서 새끼들을 나아 기를지... 괜한 걱정이 한 무더기다.


아직 서툰 집사들을 잘 참고 교육시키고 있는 고양이들 덕분에 시골 생활이 좀 더 푸근해졌다. 아, 사료 주문해야 한다. 10Kg 사료 떨어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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