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성창업증후군 환자의 인생 복기

습관성창업증후군 (1)

by 이지선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이력서다. 기자 경력에 덧붙여 IT 전문 홍보대행사 설립, 미국 유학, 유학중 LA에서 모바일 콘텐츠 관련 창업, 돌아와서 소셜 마케팅 회사 설립, 해산물 O2O 회사 설립, 식당 창업. 서로 다른 사람의 이력을 모아 놓았다고 해도 다채로울 일들을 이십여 년간 닥치는 대로 하고 다녔다. 그래서 얻게 된 별명이 '습관성 창업 증후군'이다.


솔직히 성공한 사업가는 되지 못했다. 만약 어떤 창업이 일가를 이룰 만큼 성공했다면 다른 도전을 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 의미를 찾는 것은, 새로운 파도가 오리라는 것을 나름 일찍 발견하고 그 흐름을 확산시키는데 작은 역할은 했다고 생각한다. 96년 국내 홍보대행사의 숫자가 열 개, 스무 개를 넘지 않을 때 '벤처기업 (Start-up)을 위한 홍보대행사'를 표방하고 나선 회사가 드림 커뮤니케이션즈였다. 99년-2000년 한창 벤처 열풍이 불 당시 성공한 기업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고, 그 이후 국내 홍보 산업은 크게 성장했다.


유학 다녀와서 미디어유를 설립했는데 당시에는 Web 2.0의 흐름이 코 앞까지 다가오던 때였다. 그래도 기업들이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서 타겟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기업들이 블로그도 운영하고,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야 한다고 힘주어 얘기했지만 '왜?'라는 반문을 들어야 했다. 미디어유는 많은 기업들, 정부 기관들이 어떻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고객과 소통해야 하는지 길을 여는데 앞장섰다. 그 이후 다양한 형태의 소셜 홍보/마케팅 회사들은 우후죽순처럼 늘어났다.


미친물고기로 시작된 O2O 사업과 식당 운영은, 그야말로 내 인생 최대의 도전이자 고비이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고전하고 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새로운 분야에서도 뭔가를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내가 아둔했다. 어쩌면 오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잘 할 것 같고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재밌겠는데!' 하는 내 안에 똬리 틀고 있는 호기심이 발동했을 뿐이다. 역시 도로 공사가 되지 않은 산길에서 길을 내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헤매는 와중에 또 한 가지 일을 벌였다. 지병인, '습관성 창업 증후군'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일이라 판단됐다. 스타트업들과 함께 황무지에 길 내는 작업을 거드는 일이다. 경기도 스타트업 캠퍼스 내에 인큐베이션 센터 일을 시작했다. '창업'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설레는 가슴으로 뛰고 있는 젊은 창업가들에게 훈수도 두고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시켜주는 일을 한다.


그들은 한 편으로는 주눅 들어 있고 한 편으로는 당당하다. 이미 길이 나있는 곳에 취업해서 역할을 하기보다는 자신 만의 길을 내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다. 새 길을 낸다는 당당함이 있고 하지만 그 일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주눅 들어 있다. 그 들 옆에서 함께 두리번거리고 상황을 판단하는 일을 거들어 주는 게 내 역할이다. 그리고, 꼭 그 길 내는 일이 성공하지 않더라도 무언가 얻고 의미 부여하도록 돕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 인큐베이션 일을 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지난 이십 년간 내가 끊임없이 도전했던, 그 움직임들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하는 인내심 부족이었는지, 지나치게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들춰 보는 방정맞음이었는지. 그래도 한 가지 의미를 찾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는지. 아울러 길을 찾는 과정에서, 그 길목마다 내가 뭐를 잘하고 뭐를 잘 못했는지를 돌아보고 있다.


창업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에 걸맞게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하고 있다. 그 과정에 나의 어설픈 도전과 그 과정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습관성 창업 증후군'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라 생각한다. 해서, 머리 속에서 맴돌고 있는 지난 창업과정의 복기를 글로 매듭지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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