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와 벤처캐피털(VC)의 공통점

by 이지선

내 주변에는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 꽤 있다. 글에 관심 있는 이들 중에 더러는 출판사에 취직을 하거나 직접 차리기도 하였다. 대학 동기 중 J도 그중 하나였다. 학교 다닐 때 학회, 언더 모임 등을 돌며 세미나 하는 게 일이었는데 그렇게 혹독하게 책을 읽더니만 결국 졸업 후 출판사 사장이 되었다. '글 쓰는 이'도 그렇지만 출판사 또한 배고픈 직업 중 하나였다. J를 만나면 늘 책과 함께 밥과 술을 사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쩔 수 없이) 짠돌이었던 J가 동창들을 불러 거하게 밥과 술을 샀다. J가 기획한 책이 대박을 쳐서 꽤 큰돈을 벌었다며 기분 좋게 한 턱을 낸 것이다.


'출판'은 초기에 비용이 많이 드는 산업이다. 저자의 시간과 노력은 그렇다 쳐도 편집, 교정, 인쇄에 책 값의 몇 백배의 돈이 든다. 게다가 마케팅은 어떤가. 책이 꼭 필요한 독자를 찾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는데, 마케팅 비용은 배보다 더 큰 배꼽인 셈이다. 하지만 일정 부수 이상이 판매되면 한 권을 추가로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의 비중은 현격하게 떨어진다. 마케팅 비용도 최소한으로 줄어든다. 대체로 저자에 지불하는 인세는 일정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순익 증가율은 크게 치솟는다. 따라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수량을 팔지 못하면 계속 배고픈 상태가 이어지고 그 수량을 넘기면서부터는 순익 비율이 크게 증가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출판업은 '벤처 캐피털(VC)'과 닮은 점이 많다.


먼저, '포트폴리오'를 잘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앞서 예를 든 내 친구 J 뿐 아니라 많은 출판사가 몇 년을 근근이 버티다가 큰 성공을 거둔 책 한 두 권으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예는 너무나 많다. 성공확률은 열에 하나도 안되지만 하나 성공했을 때의 리워드가 크니 지속적으로 다른 책을 만들 수 있다. 열 권의 책을 만들면 한 권의 성공이 다른 아홉 권의 제작을 가능케 한다. VC도 마찬가지다. 스타트업의 세계는 성공확률이 더욱 낮다. 초기 투자 금액도 출판에 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잘 키운 스타트업 하나가 무수한 실패의 구멍을 메우고 또다시 투자할 수 있도록 여력을 만들어 낸다.


한 번 성공한 경험이 그다음의 성공에 디딤돌이 된다는 측면도 비슷하다. 성공작을 많이 만들어낸 출판사에는 좋은 저자들이 모인다. 출판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좋은 콘텐츠를 가진 저자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상대적으로 저자 발굴이 쉽다는 건 크나 큰 경쟁력이다. 벤처캐피털의 경우도 쉽게 생각하면 '돈 (=펀드)'이 있으니 투자 대상 기업을 찾기 쉬울 것이며 단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좋은 기업 발굴하는 것은 지난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일이다. 한 번 투자로 성공한 경험을 가진 VC에는 많은 스타트업이 문을 두드린다. 또한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함께 하는 좋은 파트너들도 저절로 알게 된다. 네트워크 효과를 크게 가질 수 있다.


무엇보다도 출판사와 VC의 공통점은 '세상을 바꾸는 콘텐츠'의 발굴에 있다. 책을 쓰는 저자들은 지금의 세상에 뭔가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들이다. 문학 작품의 형태이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의 정리이든, 경험의 공유든 세상의 흐름을 바꾸고 새로운 자극을 주는데 역할을 한다. 이런 노력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알리고 그로 인해 실제로 변화를 이끌어 낼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확산과 성장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출판사는 책을 발행하는 과정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확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스타트업의 경우도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를 만든다. 더 좋은 방향으로 세상이 발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실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기까지는 험난한 여정을 버텨내야 한다. 그 길을 좀 더 쉽게, 혹을 빨리, 어쩌면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투자하고 지원하는 그룹이 아닐는지.


오늘 스타트업 캠퍼스 내 인큐베이션 센터가 첫걸음을 떼었다. 물론 투자를 하는 조직은 아니지만 스타트업을 돕는 사람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출판 사하는 친구도 생각났고 투자 잘 하는 친구도 생각났다. 세상은 변화한다. 그 변화가 좀 더 좋은 쪽으로 이루어지도록, 그리고 그 변화를 우리의 힘으로 이루려는 도전이 이어지도록... 나도 작은 힘 하나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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