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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Jul 02. 2017

마라도 둘러보기

201706_제주(2)

어느 때부턴가가 여행이 '새로운 경험'을 시도하기보다는 '익숙한 경험'을 다시 한번 재현하는 것이 되었다. 처음 가는 곳이라면 공기부터 풍광이 새로울 것이지만 여러 번 가본 적이 있다면 예전 경험 가운데 가장 좋았던 것을 다시 찾는 게 더욱 편안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가본 곳 중에 가장 신비롭고 근사하고 이국적인 제주. 한 때는 그곳에서 살아봤으면 좋았겠다는 꿈을 꾼 적도 있었다. 자주는 못가도 1, 2년에 한 번씩은 꼭 찾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대학교 때 친구들과 여행을 간 것이 처음이었는데 그땐 성산 일출봉이며 만장굴이며 이곳저곳 다니며 관광안내도에 점찍고 다니기도 바빴다. 그땐 여행이 모두 그랬다. 새롭고 신기한 곳을 다니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곳의 공기를 느끼고 현지에 있는 사람처럼 게으름도 피워보고 하고 싶은 것 골라 다니는 느슨한 여행이 무척 낯설었으니까.


몇 번째 방문인지 모를 만큼 제주를 갔었지만 그렇다고 구석구석을 모두 다 가 본 것은 아니었다. 길어야 3박 4일.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제주는 생각보다는 큰 섬이어서 맘먹고 구석구석 다 보려면 꽤 여러 날을 묵어야 했다. 어쨌든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따로 있지는 않았지만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처음 가보는 마라도를 구경하고 왔다.



마라도 - 우리나라 최 남단의 섬.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배운 것이 다였다. 최근 들어 TV 프로그램에 김건모가 마라도를 가서 짜장면을 몇 그릇을 먹고 왔다며 화제가 되었던 섬. 하필 마라도의 연관 키워드가 짜장면인 것이 이유 없이 못마땅했다.


마라도는 제주 서남쪽에 있는 섬이다. 모슬포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가까이 가야 한다. 모슬포항에서 표를 끊을 때 2시간 후에 나오는 배편까지 동시에 발매가 된다. 두 시간이면 한 바퀴 돌아 구경하고 한 그릇 먹고 나오기에 적당할 만큼 작은 섬이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군인들이 묵는 숙소도 있고 학교도 있고 편의점도 있다. 얼핏 보기에도 주민이 많지 않아 보이는데 성당, 교회, 절이 작은 섬에 모두 하나 씩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신기했다.



배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줄줄이 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메뉴는 비슷비슷하다. 짜장면, 짬뽕과 해산물. 배에서 내린 관광객들은 대부분 식당이 늘어선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우리는 거꾸로 왼쪽부터 섬을 돌았다. 몇 년 전 우도에 갔을 때는 하얀 백사장과 옥색 물 빛에 감탄했는데 마라도는 그 풍광과는 사뭇 달랐다. 해수욕을 즐길만한 해안이 아니었다. 섬 주변은 깎아지른 바위가 두르고 있어 바닷가로 내려가기도 힘들었다. 듬성듬성 낚시 포인트가 있어서 낚시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섬이라고 했다.



여유 있는 걸음으로 섬을 한 바퀴 돌고 늘어선 식당 가운데 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진 식당에서 해물 짬뽕과 톳 짜장면, 그리고 해산물을 주문했다. 아침 9시 50분 배를 타고 갔으니 11시쯤에 아점을 먹은 셈이다. 해산물로는 멍게와 전복, 문어, 뿔소라, 거북손, 그리고 벵에돔이 나왔다. 제주스러운 구성이다. 한라산 한 병 보태었다. 기억에 남는 최고의 브런치 가운데 하나였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상을 차렸고 바다 바람과 내음이 환상적이었고 한라산 한 잔이 혈관을 돌며 마음을 간지럽혔다.


제주도 섬이지만, 섬에 간다는 것은 '작정'해야 하는 일이다. 배 시간을 맞춰야 하고 날씨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생길 수 있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그만큼 '헌신'을 요구하기 때문에 늘 일정에 쫓겨 다니는 제주 여행에서 마라도행을 생각하지 못했었나 보다. 하지만, 제주가 이미 익숙한 사람이라면 꼭 한번 추천해주고 싶다.


이미 한 번 다녀왔고, 마라도의 경험이 내 기억의 색을 밝게 물들이고 있어 다시 제주에 갈 때 언제라도 꼭 다시 한번 가게 될 것 같다. 섬 전체가 아주 자연스런 세트장 같았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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