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밀가루로
“저는 서울로 가서 요리사로 일하면서 밀가루로 맛있는 쿠키를 만들 거예요!”
위 문장을 자세히 보면, “-(으)로”가 세 번 쓰였다. 우리는 ‘-(으)로’가 각각 어떤 이유로 다르게 쓰였는지 설명할 수 있을까?
“서울로 가다”
“요리사로 일하다”
“밀가루로 맛있는 쿠키를 만들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에겐 위의 문장 모두 ‘-(으)로’의 사용이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세 문장을 나란히 놓고 보니, 정말 우리는 어떤 경우에 ‘-(으)로’를 사용하는 것인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얼핏 봐도 세 문장에 ‘-(으)로’ 문법이 쓰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각 문장에서 '-(으)로'는 어떤 용법으로 쓰였을까?
“서울로 가다”
→ ‘도착지’를 나타낸다.
“요리사로 일하다”
→ ‘자격, 신분’을 나타낸다.
“밀가루로 맛있는 쿠키를 만들다”
→ ‘재료’를 나타낸다.
이렇게 분석해보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쓰던 ‘-(으)로’가 꽤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뿐만이 아니다. ‘도착지’, ‘자격, 신분’, ‘재료’ 외에도 ‘-(으)로’에는 훨씬 많은 용법이 있다. 그 경우를 보여주면 대부분 깜짝 놀란다.
문장을 한번 종이에 써 보고 내가 위에서 분석한 것처럼 각 문장에서 '-(으)로'가 쓰인 용법을 분석해 보자!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것이다.
ex)
“앞으로 쭉 가세요”
“학교까지 버스로 와요”
“가위로 종이를 잘라요”
“쿠팡으로 물건을 주문해요”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요”
“달러를 한국돈으로 바꿔 주세요.”
이 몇 문장만 봐도 정말 다양한 경우에 “-(으)로”가 쓰여서 깜짝 놀란다.
우리는 굳이 분석할 필요 없이 삶의 언어로서 당연히 말해와서 몰랐겠지만, 정말 다양한 상황에서 ‘-(으)로’를 사용한다. 내가 한국어를 가르치며 발견한 “-(으)로”의 7가지 용법을 정리해 보았다.
"-(으)로" 7가지 용법
1. 방향
“앞으로 쭉 가세요”
“왼쪽으로 가면 화장실이 있어요”
2. 도착지, 목적지
“어디로 가세요?”
“부산으로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이번에는 꼭! 레벨 2로 올라가요!”
3. 수단, 방법
“학교까지 지하철로 가요”
“기차로 부산에 갈 거예요”
“가위로 종이를 잘라요”
“쿠팡으로 물건을 주문해요”
“유튜브로 한국말을 배워요”
“수영으로 살을 뺐어요”
4. 재료, 구성성분
“밀가루로 쿠키를 만들어요”
“이 모형은 나무로 만들어졌어요”
5. 기준, 선택의 방식
“‘가위 바위 보’로 순서를 결정해요”
“사다리 타기로 점심값 낼 사람을 정해요”
“이번 학기는 발표 횟수로 점수를 줄 거예요”
6. 자격, 신분
“어학당에서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해요.”
“서울에 가서 요리사로 일할 거예요”
7. 변화의 결과
“달러를 한국 돈으로 바꿔 주세요”
“노란색 티셔츠로 바꿔 주세요”
이렇듯 “-(으)로” 문법은, 아주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되기 때문에 대학교 어학당에서는 학생들의 혼란을 줄이고자 레벨 별로 나눠서 가르친다. 보통은 레벨 1에서 [방향], [도착지, 목적지]를 배우고, 레벨 2에서 [수단과 방법], [변화의 결과]를 배운다. 나머지 용법은 더 높은 레벨에서 배우기도 하고, 아예 등장하지 않기도 한다. 대학교 어학당 교재, 시중에 판매되는 사설 한국어 교재마다 문법 설명이 다 다르다. 문법의 기본적인 용법 설명은 비슷해도 이렇게 다양한 용례를 한꺼번에 설명하는 교재는 잘 없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어 강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나도 “-(으)로”가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줄 몰랐다.
하지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해를 거듭할수록, 강의 경험이 쌓일수록 나의 일상 언어를 곰곰이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기면서, 무의식에 툭- 튀어나오는 내 말속에서 새로운 용법을 발견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는 언어의 비밀을 발견한 것처럼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보물을 찾은 듯한 짜릿함이 있다.
나는 한국어 강사를 ‘보물찾기를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평생 무의식적으로 써온 삶의 언어를 다시 돌아보고, 그 속에서 문법의 ‘용법’과 ‘규칙’을 찾아내는 일. 한국어에 숨어있던 반짝이는 비밀을 찾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외국인 학생들에게 문법을 설명하는 일을 넘어서, 한국어라는 세계를 더 깊이 탐구하는 일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자신의 언어 사용을 기민하게 들여다볼 줄 알고, 언어 감각이 좋은 강사일수록 외국인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다양한 상황과 예문을 들어, 쉽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어 학습자들은 단순한 문법 암기보다 ‘어떤 상황에서 그 문법이 쓰이는지’를 배워, 실제로 깊은 소통을 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보 한국어 강사들이 지금 이 7가지 용법을 모두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어 교원’이란 직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지금 '-(으)로' 문법의 다양한 용례를 다 떠올리지 못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나는 한국어를 잘 못 가르칠 것 같다고 겁먹을 필요도 없다. “앞으로 쭉 가세요(방향)”, “가위로 종이를 잘라요(수단, 방법)”, “부산으로 가요(도착지)”. 이렇게 세 문장을 떠올렸다면 이 세 용법만 먼저 가르쳐도 충분하다. 나머지는 수업을 하면서, 일상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순간마다 하나씩 더해서 가르치면 된다.
사실 우리는 이미 평생 한국어를 써 온 한국어 전문가들이다. 단지, 평생 당연하게 써온 우리말을 한 번도 체계적으로 탐구해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할 뿐이다. 내가 그랬듯이 경험을 쌓으면 된다. 사실 모든 분야의 일이 그렇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한국어 강사’라는 직업은 전혀 겁먹을 필요 없이, 그저 매일 삶의 언어 속에서 작은 비밀을 꾸준히 발견하는 직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상 속 언어의 작은 비밀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을 찾은 듯이 기쁨을 느끼고, 그 비밀이 외국인 학생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순간을 보면 짜릿해지는 일. 그래서 이 일은 할수록 더 재미있고 보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