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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Aug 08. 2022

술 한잔 마셨습니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


고등학교 교사 마틴의 삶은 지루하다 못해 고통스럽게 보인다. 의욕 없는 그의 수업에 학생들은 딴짓을 하거나 마틴을 무시한다. 심지어 학부모들이 마틴의 교사 자질에 대해 따져 묻는다. 아내와 십분 이상 대화를 해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머리가 큰 아이들은 방문을 닫은 지 오래다.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찾지 못하는 마틴과 친구들이 오랜만에 모였다. 부자인 아내와 결혼해 팔자가 편해 보이는 니콜라이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한다. ‘혈중 알코올 농도 0.05%를 유지할 것’ 혼자 탄산음료를 주문했던 마틴은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한잔 들이켠다. 


효과는 대단했다. 늘 무력감에 젖어있던 마틴이 백팔십도 달라진다.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혈색이 도니 표정이 생긴다. 변한 그의 모습에 어색해하던 학생들은 이내 열광한다. 실험을 제안한 니콜라이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준다. '저녁 8시 이후는 금주할 것. 일과 시간에만 술을 마실 것.' 자신감을 얻은 마틴과 친구들은 지독한 권태를 극복한 듯 보인다. 아내와의 관계도 한 발자국 나아간다. 먼저 여름휴가 계획을 제안하는 마틴. 알코올의 힘은 가정에도 초록불이 들게 한다.


핀 스코르데루의 이론을 체현한 마틴과 친구들에게 두려울 것은 없다. 이렇게 좋은 걸 모르고 살았다니! 각자 최적의 알코올 농도를 찾기 위해 인풋을 늘려보기로 한다. 우리는 통제가 가능하니까. 우리는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거든. 투입량을 늘리자마자 그들의 삶이 삐걱대기 시작한다. 고주망태로 길바닥에 누워 있던걸 이웃과 아들이 발견하고, 침대에 오줌을 싼다. 교무회의에 헤롱 거리며 술냄새를 풍기고 들어온다. 학교 곳곳에 숨겨둔 술병이 발견된다. 그들의 축제는 비극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취해버린 정신은 쉽게 돌아오지 못한다. 한잔만, 한잔만 더, 마지막 한잔만, 마트에서 행패를 부리고 길에서 옷을 벗어던진다. 마틴은 만능감을 이상한 쪽으로 발현한다. 맨 정신에는 혼자 품고 있던 깊은 상처를 드러낸다. 모두 다 당신 탓이야. 아내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댄다. 


진정한 삶을 찾은 줄 알았는데, 알코올로 빚어낸 신기루였다. 시지포스의 바위처럼 정상에 오른 줄 알았는데 처음 상태로 곤두박질쳐버렸다. 아내와는 이혼 절차에 돌입한다. 혼자 살던 친구 토미는 중독에 잠식된다. 자신처럼 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선. 마틴과 친구들은 자신들이 근무하던 학교의 졸업 축제를 바라본다.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합법적으로 취할 수 있는 기쁨에 취한 학생들, 쾌락에 가득 찬 그들의 표정. 그들을 바라보는 마틴의 눈. 이윽고 축제의 한복판에 뛰어드는 마틴. 마치 바쿠스의 현신인 듯 무아지경으로 춤추고 마시는 마틴의 모습은 어딘가 슬퍼 보인다. 한 낱 술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나약함이랄까.


태생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 덕에 생애 거의 모든 시간을 맨 정신으로 보내는 나는 축복받은 인간일까, 저주받은 인간일까. 내 주변엔 늘 취해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항상 그들의 속내가 궁금했다. 현실이 괴로워서? 쾌락에 젖고 싶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답은 지금까지도 알 수 없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순간의 목적이 있었다고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술이란 축복에 가깝다. 가장 싸고 빠르게 취할 수 있는 파란 병의 마법 덕분에 오늘 처음 본 사람과도 어깨동무를 하고 호형호제가 가능하다. 일을 못해도 승진이 가능하다고?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야 임마. 술은 대한민국에서 사회성의 바로미터다. 술을 잘 먹는다는 건 거대한 특장점이었다. 나는 이 능력이 제로인 상태로 사회에 던져진 것이다. 술을 안 먹는다는 이유로 욕을 먹기도 하고, 회식 내내 내 술잔이 비었는지 체크당하기도 했다. 몰래 도망쳤다가 퇴사하기 전까지 사람 취급을 못 받은 적도 있었다. 다들 왜 술에 미쳐있는 건지 화가 났다. 타고난 반골에 청개구리 심보인 나는 더욱 술을 마시지 않았다. 심심하면 뉴스에 등장하는 주폭, 음주운전 사고는 술에 대한 편견을 공고하게 했다. 평생 깨지지 않을 것 같던 편견은 머나먼 이국땅에서 너무나 쉽게 깨졌다. 저녁 무렵의 로마 광장에서, 피렌체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 베네치아에서 나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마셔도 취한 것 같지가 않았다. 조금 어지럽기는 했던 것 같은데 기분이 무척 좋았던 것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말을 이때 이해했다. 취하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있는 거였다. 곁에 있는 누군가 때문에 혹은 주변의 환경 때문에. 이후 술에 대한 병적인 혐오는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목적보다는 수단으로써의 음주를 위해. 언젠가 다시 취할 날이 오기를 바라며. 마지막 마틴의 춤사위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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