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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n 02. 2019

(영화 리뷰)기생충

* 본 글에는 모든 스포일러가 포함됩니다

*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해석입니다


'침입자를 찾으세요'


살면서 절대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은 계급의 두 가족이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 1부는 기택의 가족 시점에서 박사장네 집에 '침투'하는 시선을 따라간다. 미션을 완료한 가족의 소소한 자축 파티와 발칙한 상상을 하는 씬 이후 천둥과 초인종 소리를 시작으로 시작되는 2부는 우리네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로 돌변한다.


#. 계급

21세기, 현재 지구 상에서 계급은 간단하게 두 부류로 나눠진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영화 속에서 이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끔찍하다. 폭우가 쏟아질 때, 집 마당에 텐트를 치고 좋아하거나, 미세먼지가 없어져 좋은 집이 있고, 배수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온 집이 물에 잠기고, 변기가 역류하는 집이 있다.

계급은 '먹고사니즘' 즉 생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소비하는가에 대해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서민은 매 끼니때마다 다음 식사를 걱정해야 하는 반면, 상류층은 다음은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고민을 한다. 서민들에게 생존이란 현재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치열한 전쟁이다.

박사장네 집의 지하실을 발견하고, 문광네와 기택네 가족이 대립하는 장면에서 두 서민 가족은 '생존'을 위해 싸운다. 서로가 박사장네 집에서 '기생'하기 위해, 그러는 와중에도 사장님과 사모님이 사실을 알게 돼 놀랄까 봐 노심초사하고, 사장이 계단 올라가는 소리에 맞춰 리스펙! 을 외치며 형광등을 켜대는 모습이란, 지켜보는 우리는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기득권층에게 서민들이란 쓰고 버리면 되는 부품이다. 사장의 차에서 여자 팬티가 나오고, 집에서 갑자기 기침을 해대는 그 당사자들과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그 이유에 대해 정확한 사실 확인보다는 '해고'라는 수단으로 그들과의 대면을 회피한다. 그들에게 대체할 부품은 어차피 넘쳐나니까.


그들은 서민층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으로라도 다양한 방식으로 서민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냉장고 속 식자재 1인분이 없어져도 기득권층은 '그냥 누가 밥을 많이 먹나 보다' 정도로 여기는 반면, 지하실에 있는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필수 요소인 것이다.


그래서 서민은 기생충이 된다. 기득권층이라는 숙주에 기생하여 살아간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숙주를 공격하는 것은 기생충의 적이다. 기생충은 그 적을 몰아내기 위해 싸운다. 보통 그 싸움은 기생충과 기생충,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의 싸움이다.


숙주에 기생하기 위한 사투, 서민들의 싸움에서 잉태된 그 분노의 씨앗은 칼끝이 된다. 영화에서 그것은 숙주인 박사장을 향한다. 지하실에서 기생하던 근세가 지상으로 올라와 한낮의 햇볕을 마주한 순간, 숙주 밖으로 기생충이 빠져나온 듯한 장면은 숙주인 박사장의 죽음을 암시한다.


인간들이 사는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기생충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들,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씨앗은 결국 숙주들인 기득권층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 그것은 결국 인류의 공멸을 의미한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느끼는 찝찝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고착화되어가는 계급화된 세상에 대한 절망이다. 상징과 비유로 버무려진 이 메시지는 배우들의 미친 앙상블과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로 인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 짜파구리

봉준호 감독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테일, 이것을 찾는 재미가 영화의 5할 이상이라 봐도 될 정도로 그의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다양한 유머와 상징이 넘쳐난다.


캠핑에서 급 돌아오는 박사장네는 8분 안에 '짜파구리'를 끓여달라고 한다. 한우 채끝살을 넣어서,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친 음식이다. 이 두 음식은 인스턴트이며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서민' 음식이다. 거기에 한우 채끝살이라는 '고급' 음식을 합쳐 만든 짜파구리.

 

신분상승의 꿈을 꾸며 나름의 '계획'대로 진행하던 기택네는 캠핑에서 갑자기 돌아온 박사장네로 인해 폭우 속으로 쫓겨난다. 기택, 기우, 기정이 폭우를 뚫고 집으로 내려간다. 수많은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은 신분상승을 위한 사다리이다. 처음 과외 수업을 하기 위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며 잠시 느꼈던 신분상승의 꿈은 폭우와 함께 쓸려내려 간다. 본래 있어야 할 자신들의 집으로 마치 지옥을 향해 내려가듯 한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시퀀스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는 것처럼 텁텁하고 찝찝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물에 잠긴 집에 다다른 기택은 아내의 메달을, 기우는 수석을 챙긴다. 기정은 담배를 피운다. 아빠와 딸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는 반면, 민혁이 선물한 수석을 챙기는 기우, 그것은 아직 기우에게 남아있는 신분상승의 욕구를 대변하며 그가 사건을 또 다른 방향으로 틀어버릴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박사장네 막내아들 다송이가 코스프레하는 인디언은 또 하나의 상징이다. 서구 열강 세력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을 빼앗긴 인디언 부족들의 역사와 영화 속 세 가족의 관계는 흥미롭게 연관된다. 박사장이 백인으로 대표되는 서구 열강 세력으로, 집을 건축한 원래 주인 남궁현자를 모시며 살던 문광네는 인디언을 상징한다. 박사장네 집에 침투하고 있는 기택네는 그 백인들이 세운 나라에 정착하고 싶은 제3세계 난민의 모습처럼 보인다.


모스부호는 일종의 맥거핀으로 보인다. 근세가 모스부호로 전구를 켜대는 것을 다송이가 알아채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처럼 보여주다가 텐트 안에서 잠들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금수저에게는 어떤 한 가지를 몰두해서 할 필요가 없다. 재미없으면 안 하면 된다. 다른 걸 하면 되니까. 쓰다 보니 맥거핀이 아닌 거 같다.



#.냄새

박사장은 조금은 가부장적이지만 얼토당토않은 갑질을 해대는 막장 기득권은 아니다. 그의 원칙은 심플하다. "선을 넘지 마라" 그 선은 일반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것이다. 계급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 선에 가장 아슬아슬하게 갔던 기택이 했던 말이라고는 고작 "그래도 사모님을 사랑하시죠?"이다. 정말 선을 넘을 듯 말듯한 대사,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사.


냄새는 선이 없다. 땅을 딛고 같은 공간에 살아가는 이상, 냄새는 선을 구분하지 않고 그 공간 전체에 퍼진다. 선을 넘어서 서로의 계급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그래서인지 타인의 냄새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인간이 같은 종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쉽고 간결한 모욕적 언사이다.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이 표현은 때때로 면도날을 심장으로 긁는 상처를 낸다. 그 냄새가 상류층의 가치관에 깔린 선을 넘는 행위를 무시하는 순간, 낮은 계급에 대한 혐오가 행동으로 발현된다. 발현된 혐오는 기택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트리거가 된다.




#. 기생충, 그리고 괴물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주인공 '경수'는 이런 대사를 한다. "우리 사람은 되기 힘들어도 괴물은 되지 맙시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괴물이 된 사람들, 우리는 흔하게 뉴스로 접할 수 있다. 아니 우리 각자 주변만 둘러봐도 너무나 흔하다. 그들 모두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생충이었던 것인가.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기란 이렇게도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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