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by H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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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을 너무 인상 깊게 봐서일까, 카버의 작품 연보 중 초기작에 속하는 이 단편집은 조금 아쉬웠다. 내용은 늘 그렇듯 남녀 간의 다툼, 술에 취한 사람, 김 빠진 콜라 같은 인간관계와 섹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의 심리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삶 속에 분명히 공존하는 빛이 아닌 그림자에 초점을 두고 서민의 삶, 우리의 실생활 속 불편함과 아픔을 무심하게 짚어낸다.


타인, 심지어 친한 친구에게도 쉽게 내보이지 못하는 현실의 삶, 우리는 이 꿉꿉한 인생을 어떻게든 버텨내며 살아간다. 카버는 이 장면을 마치 현미경을 대고 본 듯이 자세히 묘사한다. 하지만 미사여구를 최소화한, 무성의하다 싶을 정도의 간결한 문장은 어이없을 정도로 이야기를 싱겁게 끝낸다. 마치 점점 팽팽해지던 고무줄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지는 것 같은 이 방식이 나는 이상하게 흥미로웠다.


연속적으로 보이는 실제 우리 삶도 사실 이런 식의 반복이기 때문이 아닐까. 젊을 때는 쉽게 끓어올랐던 그 감정, 열정 같은 것들이 지금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반복되고 지루한 삶 속에서 곧 그것이 꺼진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불편하다. 더 끔찍한 것은 그 뜨거운 덩어리가 언젠가 다시 내 속에서 차오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석하게도 인간의 생은 이 과정의 반복이다.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토해낼 것인가. 계속해서 삼켜낼 것인가. 이것에 대한 선택, 그리고 방법을 찾는 과정은 우리 각자의 삶에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초기작이다 보니 습작 같은 느낌이 강했다. 이건 뭐지? 싶은 작품도 있다. 찾아보니 번역자 고든 리시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 한다. 하지만 그 유명한 대성당과 같은 레이먼드 카버의 색과 맛은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오히려 비교적 정제되지 않은 더 거친 날 것의 매력을 보는 재미가 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역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17개의 단편 중 그나마 완성도가 있다. 영화 ‘버드맨’의 주인공 리건이 제작하는 연극으로 나와 제목은 나름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빠른 호흡과 롱 테이크로 관객의 혼을 빼놓는 영화에서는 느끼지 못할 수도 있는 원작의 매력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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