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쓰게 된다 - 김중혁

by HJS


무슨 마법 주문 같은, 작가의 자신감 넘치는 듯한 제목에 한번 끌리고 작가의 이름에 두 번 끌렸다. 평소 혼자 길을 걸어 다닐 때 늘 빨간 책방을 재생하고 있기 때문에 친숙한 김중혁 작가의 에세이. 책 속의 문장을 읽을 때마다 자동으로 사운드가 재생되는 것 같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어디 한번 얼마나 대단한 비법인지 보자 싶은 마음으로 책을 폈다. 나는 이런 자기 계발서류의 책을 싫어한다. 아니, 원래 아예 책을 펴보지 않는다. 책은 단순히 재미와 흥미로 인해 읽혀야 한다. 재미있는 게 사방천지에 넘쳐나는 세상에서 남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배우려는 목적이나 무작정 따뜻하고 좋은 말로 가득 찬 책은 지루하다. 재미없는 책을 억지로 본다는 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법이 궁금해서 책을 샀다.

‘소설가 김중혁의 창작의 비밀'이라고 쓴 부재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 자기 계발서의 메카인 대한민국에서 책을 팔고 홍보하기 위해 최근 방송 등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작가와 창작의 비밀이라는, 사람들이 혹할만한 마법의 단어를 사용해서 글쓰기에 목마른 양들을 유혹했다.


하지만 이 책은 의심으로 가득 찬 내 편견을 보란 듯이 웃어넘겼다. 마치 읽으면 무엇이든 쓰게 되는 비법이 요리 레시피처럼 적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면 조금 뜬금없게도 작가가 그린 그림들, 간단한 메모나 어떤 잡지에서 본 것 같은 글과 일기, 퀴즈들이 쓰여 있다. 창작의 비법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재미있다.

이 책은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비법서가 아니다. 글을 쓰는 행위에 대한 에세이, 고찰이다. 쓴다는 것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과 방향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재미있게 혹은 진지하게 말한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여러 번 읽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숙제를 하는 나에게 주는 작은 위로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결과물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글에는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예술 행위를 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작가의 무심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담겨있다. 사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다. 하지만 실천을 하지 못했다. 나 역시 창작이란 선택받은 이들에게 주어진 특권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친구들과 근황 토크를 하다가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책 리뷰를 쓴다고 했던 적이 있다. 친구는 그거 하면 돈 되냐고, 블로그 같은 거냐고 물었다. 물론 돈을 받고 서평을 써주는 일도 있다. 근데 나는 그냥 일기처럼, 숙제처럼 하는 거라고 했다. 친구는 돈도 안 되는 걸 뭐하러 하냐고, 요즘 같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직장인들이 투 잡 뛰는 세상에서… 요즘은 유튜브 같은 거 하던데, 그런 걸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했다.


가끔 나도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싶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독후감 쓰기 숙제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편하게 누워 예능프로그램이나 돌려보거나 손흥민 경기도 챙겨봐야 되고 새로 나온 PS4 게임도 해야 되는데 굳이 책을 읽고 각 잡고 앉아 키보드를 치는 내 모습이 가끔은 웃기다. 나는 도대체 뭘 쓰고 싶은 걸까. 막연하기만 했던 답을 찾기 위해 꾸준히 읽고 썼다. 쓰고 있다. 지금은 아주 조금,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내가 쓰고 싶은 글, 써야 될 글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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