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 필립 로스

by HJ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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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의 생애, 어릴 적 병치레로부터 목도한 죽음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치열한 생존기, 하지만 다 읽고 나면 너무나 허무해 보이는, 죽음이라는 공통적 숙명을 가진 인간으로서 삶에 아득바득 집착하는 그의 모습은 우리 자신, 그리고 모든 인간처럼 보인다. 제목의 의미는 소설을 덮은 후에 잔잔하게 밀려온다.


어릴 적 생명을 위협받은 수술, 그걸 딛고 일어난 직업적 성공, 세 번의 결혼, 성공적인 자식 농사에도 그는 공허하다.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욕망, 어린 여자와의 육체적 관계는 정상 범위처럼 보였던 그의 삶을 궤도에서 이탈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젊은 여자에게 다가가는 그를 보며 참 씁쓸했다. 그에게 삶이란, 살아있는 것에 대한 증명이란, 육체적 관계를 맺을 뿐이었다는 말인가. 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는 남편의 역할도, 아버지의 역할도 해낼 수 없다. 심지어 든든한 후원군이었던 형 하위의 건강을 질투한다. 아내와 자식을 떠나보낸 것처럼 자신 스스로 가족을 해체시킨다. 생을 쫓는 행위가 오히려 그의 명줄을 움켜쥔 것이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딸 낸시, 그녀 역시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다. 병으로 쓰러진 어머니에게 가는 그녀에게 그는 더 이상 가족으로 남을 수 없다. 영광을 누렸던 광고계의 동료들이 하나둘씩 병에 걸리고,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더 이상 표류하지 않는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듯 삶을 끊임없이 달렸던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옛 가족들과의 추억뿐이다.


그는 결국 모든 가족을 스스로 해체시킨 후에야 깨달았다. 사실 뻔한 내용이다. 죽음을 앞에 둔 남자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자칫 클리셰 범벅 같이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표현했다. 인물들의 대화 장면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생경하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찾아보니 아직 없나 보다.(주인공이 자꾸 벤 에플렉과 겹쳐 보였다.) 마지막 장면인 묘지를 위한 구덩이를 파는 남자와의 대화는 이 소설을 통틀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그토록 삶에 집착했던 그가 주변 모두를 잃고 떠나보낸 후 느꼈을 서늘한 고독함이 느껴진다.


한편으론 이 책을 읽고 가족이라는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현재 1인 가구가 급격히 늘고 출산율은 바닥을 뚫고 내려가고 있다. 주변을 봐도 아이를 낳지 않는 딩크족이 흔하게 보인다. 이런 가족 해체 시대에서, 앞으로 우리의 삶은 어떤 가치를 가질까, 이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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