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12월 즈음, 누군가 내가 물었다. 내년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사람들은 매년 12월이 되면 내년에 목표를 세운다. 나도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부터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혼자만의 목표를 아이폰 메모장에 끄적거려왔다. 한 달에 책 한 권 읽기, 영화 100편 보기, 악기 하나 배우기, 운동 꾸준히 하기 등의 것들,
그중에 책은 약 2년간 독서모임을 꾸준히 해왔던 탓에 자의 반 타의 반 꾸준히 읽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이 쌓여 내 안에 남는다기 보다 그 주의 모임이 끝나면 연기처럼 훅 사라진다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그래서 질문에 답했다. 일주일에 한 권씩 책 리뷰를 써보겠다고.
처음에는 인스타그램에 기록을 남겼다. 해시태그 달 줄도 모르고, 어떻게 써야 될지도 몰라서 인상 깊게 읽은 구절을 옮겨다 썼다. 검색해보니 나와 같은 취미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단순히 기록성으로 책 사진만 올리는 사람부터, 꼼꼼한 책 리뷰, 온전한 서평으로 볼 법한 수준 높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은 본디 글을 쓸만한 플랫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SNS 이기 때문에 내 글에 대한 평가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인스타에 기록을 시작했다. 중간에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알게 되어 몇 개의 글을 샘플로 올렸더니 덜컥 글을 쓸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이후에는 브런치를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에는 나만의 방이 생긴 것처럼 마냥 좋았다.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어서. 독서모임은 지루한 일상에 종종 깨달음과 즐거움을 주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늘 행복할 수 없고, 아침과 봄이 계속될 수 없듯이, 가끔은 내가 읽기 싫은 책이 선정되거나 영양가 없는 잡담으로 시간을 흘려버리기도 했다. 늦잠과 맞바꾼 소중한 두 시간이 얼렁뚱땅 소비되는 것이 싫었다. 모임을 나름 꾸준히 유지해 나갈 수 있던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도움 덕분이었다. 하지만 무성의한 몇몇 사람들 때문에 모임의 취지가 변해 이것들이 모두 헛수고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그만두었다. 조금은 혼자 책을 품는 시간을 갖자고, 읽기보다 쓰기에 몰두해보자고 다짐했다.
혼자 책을 읽고, 감상을 정리해 쓰는 것은 어렵지만 흥미로웠다. 독서모임에서는 머리로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어디서 들어본 말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해서 내뱉을 순 있었지만, 흰 바탕에 올곧이 한 자 한 자 입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정확하게 단어를 선택하고 문장을 만들어 내야만 말이 된다는 것, 동시에 읽었을 때 납득이 돼야만 한다는 스스로의 조건을 만족시키기는 꽤 힘들었다. 일주일마다 꼬박꼬박 책을 읽고 쓰는 것뿐만 아니라 다음에 읽을 책을 선정하는 것 또한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결국 해냈다. 2019년 총 52주 동안 52권의 책을 읽었다. 해외 출장을 가서도, 여행을 가서도, 심지어 엄마가 입원했을 때도 책을 읽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나면 책을 읽으려고 했다. 얇은 책은 가방에 들고 다녔다. 읽으면서 동시에 어떤 글을 쓸지에 대해 생각을 하니 사고의 폭이 넓어지고 고를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의 옵션이 많아졌다. 때로 어쭙잖은 말주변으로 두 시간을 때우려고 했던 과거의 내가 조금은 작게 느껴졌다.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다는 느낌. 이 느낌을 도대체 얼마 만에 느낀 건지 가물가물했다. 부모님이 바라는, 사회가 요구하는 타의로 설정된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하는 억지 노력이 아닌, 내가 정말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행동에서의 작은 성취, 이 힘을 자신의 행동으로 직접 체득하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큰 자원이라는 것을, 잠시 꽤 오랫동안 나는 잊고 있었다. 매주 꾸준히 실천한 읽기와 쓰기는 직장생활의 고단함과 외로움에 둘러 쌓인 나를 다른 길로 빠지지 않도록 긍정적인 삶의 궤도로 나아가게 하는 큰 동력원이었다.
척박한 땅을 개간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어 작물을 수확한 후에 그 땅은 다른 작물을 키울 준비가 되어있다. 처음의 농사로 인해 땅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작년에 키워낸 작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그 힘을.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과도 있었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우선 책을 선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단순히 나의 흥미로 선정하다 보니 책의 종류가 소설 쪽으로 과하게 치우쳤다. 그리고 글을 쓸만한 책을 고르다 보니, 적당한 페이지의 책을 선정해야 했다. 사실 글을 올리기 위해 썩 구미가 당기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고 썼던 주도 있었다. '다음에는 소설 말고 다른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이내 또 다음 주 올려야 할 글쓰기를 생각해 소설을 집어 들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독서모임의 부재는 내게 큰 공허를 남겼다. 오래도록 나름 애정을 가지고 했던 모임이기도 했고, 책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의견은 노곤한 나의 삶 속의 작은 기쁨이었다. 생각했던 본래의 의도와 달라져 그만두게 되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다면 언젠가는 꼭 다시 하고 싶다.
부족하다고 느낀 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내년에는 숙제처럼 여겼던 마음을 걷어내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올려야 한다는 스스로의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 더 나은 양질의 '읽기'와 '쓰기'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