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와 수잔> - 오스틴 라이트
두 번째 결혼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수잔에게 20년 만에 느닷없이 연락해온 전남편. 에드워드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원고를 보내며 소설 속 빠진 부분을 찾아달라는 간결한 부탁을 남긴다.
소설은 에드워드가 보내온 원고를 읽는 수잔과 그녀의 현재 상황과, 에드워드가 보내온 소설의 내용인 토니와 그의 가족이 겪는 한 비극에 대한 이야기로 겹쳐 있다.
소설 속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어마어마한 흡입력은 독자가 토니가 겪는 사건과 그의 감정을 그대로 체험하게 한다. 소설을 읽는 수잔 역시 에드워드의 저의를 파악하기 위해 날세운 긴장감이 소설의 힘에 의해 급격하게 녹아내림을 느낀다. 이 과정을 동시에 읽는 독자는 이상하게도 현재 수잔이 느끼는 의문의 불안함을 경험하고, 수잔처럼 에드워드의 의도를 해석하고 싶은 열망을 느낀다.
수잔이 기억하는, 과거의 에드워드를 대변하는 듯 보이는 소설 속 토니 헤이스팅스에 자신이 기억하는 과거를 대입한다. 안정적인 법조계 미래를 버리고 난데없이 글을 쓰겠다는 에드워드, 작가로 성공할 때까지 예민한 그의 투정을 받아주며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 수잔은 때맞침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부부 아놀드와 셀레나의 균열을 포착한다. 정신병이 있는 셀레나를 밀어내고 에드워드에겐 없는 강한 남성성을 가진 아놀드에게 급격하게 홀리고, 자연스레 선을 넘는다.
에드워드가 보낸 이 소설은 결국 수잔에 대한 복수였다. 20년간 자신만의 칼, 소설을 만들어낸 그는 철저하게 그녀를 노리고 <녹터널 애니멀스>를 썼고, 그녀에게 쐈다.
그렇다면 에드워드의 복수극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자신의 현재 삶에 대입해보는 수잔, 아놀드의 외도를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캐물을 수 없는, 아이와 가정을 지키기 위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지금의 균형을 깨버리지 못하는 무력한 그녀는 소설 속 토니이자, 그의 꿈을 박살내고 상처를 주고 떠난 레이와 그 일당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그녀를 감정을 벼랑 끝으로 내몬 에드워드의 장대한 복수 서사시로 보인다.
강렬한 소설에 홀려 그에게 쏟아낸 질문이 담긴 편지를 찢어버리고 쿨-하게 답을 받고 싶으면 연락하라는 한 마디만을 보낸 수잔의 모습, 소설 속 ‘수잔’이라는 동명의 인물을 아무런 의미도 없는 캐릭터로 배치시켜버림으로써 이미 그에게 아무것도 아닌, 비중 없는 인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비수를 꽂는 에드워드의 모습은 둘 다 보통이 아닌, 흡사 무림 고수의 합을 보는 것처럼 경이롭다. 이것을 보며 토니의 공포와 허무함, 이내 그것으로부터 더 큰 파도로 몰려오는 수잔이 소설을 읽은 후 느끼는 엄습하는 불안함을 독자가 고스란히 경험하도록 한다. 결국 그들 사이뿐만 아니라 온전한 피해자처럼 보이는 소설 속 토니 헤이스팅스 까지,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단순한 복수극이 아닌, 보다 확장된 시야로 이야기를 맛보게 한다.
좀 더 멀게 바라본다면 소설을 대하는 방식, 작가와 독자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은 에드워드는 책을 써야만 한다. 그에게 쓰지 않음이란 의미 없음과 같다. 하지만 그것을 줄곧 비판했던 수잔, 너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써보라고 조언한다. 이후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각자의 길을 떠나고 20년 후 에드워드는 자신의 고집을 관철시켜 만들어낸 <녹터널 애니멀스>로 현재의 수잔의 삶을 뒤흔들어 버린다. 소설 속 토니의 분투와도 겹쳐 보이는 에드워드의 끈질긴 노력은 복수를 넘어 집착, 혹은 광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가 수잔에게 느꼈던 배신의 상처란 어느 정도였던 것인가. 소설 속 토니는 시종일관 총을 쏘지 못하다가 마지막 레이와의 대화에서 격발 한다. 20년간의 한, <녹터널 애니멀스>를 수잔에게 송부함으로써 자신의 복수를 끝마치는 토니는 복수자 에드워드처럼, 끔찍한 범죄자 레이는 그의 꿈을 무참히 짓밟고 버리고 떠난 수잔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왜 제목은 소설 속 토니와 현실의 수잔일까? 소설이 현실의 삶에 미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그것의 깊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쓴 소설에 의해 엉켜버린 감정의 소용돌이로 혼란스러운 수잔,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기대를 보란 듯이 부숴버리고 유유히 사라져 버리는, 이야기는 여기 있고, 그걸 읽는 것은 너야. 마지막 퍼즐은 너다.라고.
추가로 소설을 각색해 만든 톰 포드 감독의 <녹터널 애니멀스>도 꼭 보기를 바란다. 굳이 우위를 따지자면 소설이 훨씬 깊이감이 있고 다양한 해석을 가져오지만, 원작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각색과 흥미로운 시각 미술,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인 제이크 질렌할의 괴물 같은 연기는 원작과 영화를 함께 추천하는 강력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