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부작으로 나뉜 소설이 각자의 이야기로, 혹은 하나의 큰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1부에서 ‘우리’로 표현되는 형제가 직면하는 일련의 사건들은 감정의 결여, 배제된 주관으로 아이들의 행위를 묘사한다. 등장인물들 또한 정상은 아니다. 짧고 단순한 문장들은 이 비밀노트의 무드를 더욱 건조하게 한다. 하지만 마을 내 생면 부지의 인물들에게 무조건적인 선의를 베푸는 그들의 행위는 전쟁 속에서 말살된 인간성, 그 척박한 토양 속에서 피어나는 들꽃 같은 작은 희망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 몇 장에서 이전까지 한 몸처럼 행동하고 생각했던 두 형제의 분리는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과 여운을 몰고 온다.
2부는 국경을 넘지 않은, 다시 할머니의 집으로 돌아온 루카스의 이야기이다. 클라우스가 떠난 후 삶의 의미를 잃은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돕는다. 아버지와 관계를 맺은 야스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장애를 가진 아이 마티아스에 자신을 투영시킨 루카스는 마티아스를 아들처럼 돌보며 살아간다. 한편 15살이나 많은 도서관 사서 클라라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는 전쟁통에 희생당한 남편 토마스를 잊지 못하고 있다. 루카스를 돕는 공산당 간부 페테르는 그에게 동성애적 사랑을 느끼지만 그것을 대놓고 표현하지 못한다. 2부의 가장 강렬한 인물인 빅토르는 서점 주인으로 작가를 꿈꾸고 있다.
루카스가 돕거나, 그를 도운 인물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야스민은 그에게 살해당하고, 마티아스는 자살한다. 클라라는 정신병에 걸리며 페테르는 혁명의 실패로 숨어 지낸다. 빅토르는 알코올 중독으로 누나를 살해하고 나서야 작품을 쓴 직후 재판에서 사형당한다. 잔혹하고 절망적인 희망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인물들의 사건을 보고 있자면 1부와 비슷한 감정이 든다. 전쟁으로 상실된 인간성, 뒤틀린 욕망, 그 가운데 심리적 도피처(형제 혹은 가족)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루카스와 그와 엮인 인물들의 비극은 1부와 비슷한 강력한 힘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2부는 보다 복잡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빅토르를 통한 창작의 의미, 소설 속 소설의 이야기, 루카스가 그의 형제를 찾는 과정에서 그가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인지, 혹은 망상인지, 제목에서 말하는 거짓말이란 대체 무엇일지. 1부와 비슷하게 마지막 한 장으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 없도록,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3부, 그리고 에필로그에서 ‘진짜’ 클라우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전 두 이야기가 모두 루카스가 쓴 허구의 소설이었으며 그들은 진짜 쌍둥이었다는 사실. 독자에게 반전을 주기 위해 앞선 두 이야기를 모두 허구로 만듦으로써 1부와 2부를 읽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감정을 다소 희석시키는 점이 아쉽다. 내가 루카스에 너무 이입해서일 수도.(실제 작가는 자전적 경험을 루카스라는 인물에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품게 하는 ‘세 가지 거짓말’이 사실 큰 의미가 없다는 것 까지, 3부는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웠다. 반전과 미스터리에 초점을 맞추게 되어 소설이 담고 있는 거대한 깊이를 오히려 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책 표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1부에서 등장하는 두 형제의 이미지를 잘 표현한 것 같지만 1,2,3 부의 제목을 대놓고 표기해둔 것과 아래 써놓은 공식은… 좀 너무 나갔다 싶다.
소설가들에게 유명한 책으로 알려져 있고, 보기만 해도 머리 아픈 실존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이 소설의 첫 장을 넘기기 어렵게 만드는 것 같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전혀 어렵지 않으면서 압도적인 이야기, 다양하고도 가변적인, 충분히 깊은 함의를 지닌 소설임에 분명하다. 지금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추천하고픈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