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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n 06. 2020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 최진영


끝없이 우울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추천받은 소설이다. 부모의 학대로부터 뛰쳐나온 한 이름 없는 소녀의 성장기랄까, 퇴근 후 배경음악처럼 틀어놓은 뉴스에서 흘러가듯이 들렸던 사건, 사고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지금도 방황하는 수많은 생들에게 바치는 진혼곡과도 같은 이 이야기는 한없이 어두워 보이지만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작은 한 줌의 빛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잘 읽힌 다는 것이 이 소설의 강력한 장점이다. 인물들이 활어처럼 펄떡거린다. 이를테면 천명관- <고래>가 떠오르는 물 흐르듯한 대사와 전개 방식은 독자를 몰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소설을 덮고 나면 부모의 역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이 머릿속에 부유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가정, 화목한 부모 관계, 아이의 미래에 대한 아낌없는 격려와 지원, 밖에서 지친 몸을 쉬게 할 홈, 스윗 홈인 가정은 현재 얼마나 될까. 


이혼이 더 이상 흠이 아니라는 세상이지만, 불과 10년, 아니 20년 전만 해도 이혼은 낙인이었다. 부모의 이혼이 마치 자신의 죄인 것 마냥 가정환경에 대한 과제나 누군가의 질문은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주문이었다. 부모의 이혼이란 자녀에게 거대한 균열을 일으킨다. 마치 정상적인 뇌의 일정 부분을 랜덤으로 도려내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한 상처로 남을 수도, 일탈의 원인으로, 혹은 끔찍한 범죄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상처를 남기는 흔적은 사회를 위협하는 악으로 돋아나기도 한다.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유전자는 부모로부터 유전된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환경에 의해 발현되지 않는 한, 그 아이는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살아간다. 이미 사회화가 진행된 사람의 유전자는 퇴화되어 쉽게 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년기, 청소년기에 가장 쉽게 작동한다. 그 부모에 의해. 범죄의 희생양은 또 다른 비극을 가져온다. 그것은 선량한 피해자일 수도, 또 다른 가정을 파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정에서 시작된 불행은 암세포처럼 자라나 결국엔 정상적인 사회 기능을 마비시킨다.


주인공 소녀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아이,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랐을 한 아이가 겹쳐 보여 이 이야기는 더욱 힘들게 읽힌다. 고통받는 아이들을 외면하는 세상, 그것이 다름 아닌 지옥이며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는 사회가 아닐까. 결혼과 출산을 초등학교, 중학교 입학과 졸업처럼 남들 따라 단순히 통과하는 인생의 관문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한 생명을 낳는다는 것에 대한 결정을 여러 번 깊게 고민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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