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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n 21. 2020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모음집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수많은 저작뿐 아니라 그의 생 자체로도 다양한 일화와 명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내 소냐와 결혼하기 전,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기록한 노트를 보여준다. 거기엔 그가 서른 살 무렵까지 만났던 모든 여자들과의 연애담, 심지어 그 사이에서 낳은 자녀, 방문했던 사창가, 도박에 중독됐던 이야기까지, 그의 과거가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물론 소냐는 그걸 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 톨스토이는 그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할 평생의, 새로운 삶을 위해 자신의 과거를 거리낌 없이 드러냄으로써 그녀가 자신을 더 사랑할 것이라 믿었다. 그런 그에게 쏟아지는 소냐의 분노는 서로의 큰 차이를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차저차 결혼을 한 부부는 톨스토이가 작가로 성공하는 계기가 된다. 이미 위대한 작가로서의 재능을 가진 그가, 충실한 조수로서의 아내를 만남으로써 안정적인 가정, 작가로서의 큰 성공이 일궈진다. 그들이 이룬 부와 유명세는 결혼 전에 삐걱거리던 불안정성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함으로써 안정적인 중년의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귀족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 속에서 끝없는 모순과 권태로 회의를 느낀 톨스토이는 돌연 모든 집필을 중단할 뿐 아니라 재산과 모든 저작권까지 버리고 평범한 농부로 살겠으니, 가족들에게 자신을 따라달라 선언한다. 난데없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가족은 소냐를 필두로 극렬하게 반대했다. 다시 시작된 싸움은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지독한 갈등으로 나아갔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영적 깨달음과 순수한 진심을 믿지 못하는 아내를 속물적이라 여기고, 자신의 명성과 부를 이용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소냐 역시 다 내려놓겠다고 말하면서도 계속해서 부유한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톨스토이를 위선자라 여기며 경멸했다.


결국 간극을 좁히지 못한 부부는 파국을 맞는다. 톨스토이가 소냐를 자극하면 그녀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에게 자극을 돌려줬다. 몇 번의 자살시도와 폭력적 행동, 다시 용서를 구하는 톨스토이. 그가 병에 걸려 골골거리면 소냐는 다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후회했다. 지독한 싸움을 반복하던 중년의 부부는 어느새 노년이 되었다. 톨스토이는 반복되는 아내의 히스테리적 발작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차디찬 한 겨울에 가출을 결심한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도망치듯 떠난 기차역에서 그는 결국 생을 마감한다. 뒤늦게 그를 찾으러 온 아내는 시신 곁에서 오열한다.


본 단편은 톨스토이가 귀족 세계 속에서 회의를 느낀 직후 평민들을 위한 소설을 쓰겠다 다짐한 후에 집필한 소설들의 모음이다. 청렴과 사랑, 그리스도의 아가페 정신에 진실과 깨달음이 있다 여긴 그가 성경 구절을 모티브로 짧은 우화들을 만들었다. 잠자리 곁 아이들에게 읽어줄 법한 쉽고 간결한 우화들을 통해 민중들에게 희망과 사랑을 주고자 했던, 자신의 부와 명예를 전부 버리고(실제는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 ‘실천하는 작가’로서의 삶을 볼 수 있다. 끝내 아내와의 좁히지 못한 간극에서 그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본래의 가치는 실천하지 못했을지언정 불멸의 작품들로 남긴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 그 가운데 인간으로서 삶의 방향에 대한 족적은 오늘날까지 톨스토이가 계속해서 회자되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착하게 살면 손해 본다’라는 말이 인터넷 밈 처럼 돌아다닌다.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되더라.라는 실제 이야기와 인터넷 카더라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했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제는 주변에서 관찰하기 힘들어진 듯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낸 시스템이 인간을 수치화 함으로써 어느 순간 시스템에 인간이 지배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 안에서 개개인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감정을 거세당하고 이성만 존재하도록 남은 0과 1 둘 중 하나를 택해야지만 존재할 수 있다고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명령하고 다들 그것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거 부의 양극화가 질주하는 말이었다면 이제는 스포츠카로 바뀌고 있다.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인간과 시스템은 그 순서가 명확하다. 인간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실수를 반성하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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