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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l 26. 2020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죄와 벌> - 표토르 도스토예프스키


출간된 지 백 년이 훌쩍 넘은 이 소설이 지금까지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삶과 관념이 얽히는 시기, 사춘기 혹은 갓 성인이 된 나이에 한 번쯤 생각하게 되는 주제, 현재와 별반 차이 없는 다양한 인간 군상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왜 제목만으로 독자를 압도하게 하는지, 어떻게 도스토예프스키가 문학사의 위대한 거목이 되었는지 어렴풋이 예측하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자신이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한 때 웅대한 꿈을 품었던 기억이 있다. 눈치 채지 못한 사이 시간은 흘러 현재, 꿈은 사라지고 어느새 지루한 일상 속에 던져졌지만 죄와 벌을 읽으면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집요하게 꿈꾸었던 이상주의적 세계관에 비친 자신의 과거를 보게 된다.


자신이 평범한 필부인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영웅인지 알기 위해 노파를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는 범행 후에 엄습하는 죄책감, 자기혐오, 무능력에 대한 자각으로 괴로워한다.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의 처지는 녹록지 않다. 간신히 몸을 뉘일만한 공간에 구겨져 살며, 밀린 학비는 감당이 안되고, 가정교사 자리는 구해지지 않는다. 알량한 자존심은 하늘을 뚫을 기세이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길에 차이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쓸모없이 보이고 한심해 보인다.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이뿐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연금을 용돈으로 받아쓰면서 어머니에 대한 기대는 거북스럽다. 심지어 동생은 자신의 뒷바라지를 위해 늙은 속물에게 팔려가려 한다. 구겨진 공간에서 현실의 벽에 무너진 그의 상황은 가히 절망적이다. 구겨진 육체에 구겨진 정신이랄까, 끝없는 망상과 자기모순으로 가득한 라스콜리니코프는 뒤틀린 초인 이론에 의지해 환각 속에서 이윽고 죄를 저지른다.


자기모순에 깊이 매몰된 주인공의 행동과 심리보다 그를 중심으로 양 극단에 서있는 인물들에 더욱 흥미를 느끼고 몰입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주인공과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주인공을 실러, 이상주의자라 비꼬고 놀리는 니힐리즘에 가까운 그의 언행은 오히려 자신은 스스로의 욕망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태도를 취한다.(그리고 행동해왔다.) 오직 자신이 원하는 두냐를 얻기 위해 주인공의 범행 따위는 그를 조롱하고 조종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끝내 그녀에게 거절당한 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최후는 끝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끝없는 자기 합리화와 기독교적 가치관이라는 응달에 몸을 숨겨 생을 유지하는 라스콜리니코프와 완전한 대척점에 있다.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가 스스로 범인(凡人) 임을 깨닫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로 마치 그에게 있어 구원자 혹은 성모로 비친다. 가장 천하게 여겨지는 매춘부가 가장 고매한 살인자와 함께 끝까지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다짐을 하는 장면은 소설 속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이다. 그녀는 로쟈에게 속죄도, 종교로의 귀의도 강요하지 않는다. 오직 그의 뒤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것으로, 그로 하여금 항상 뒤에 그녀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 로쟈 스스로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게 한다. 가장 더럽고 쓸모없는 사회의 쓰레기를 죽였다고 합리화하는 그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자신의 그릇된 신념과 오만에 의한 추악한 죄임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만든 힘은 마치 광신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독실한 신실함이다.


남편의 부재로 장남에게 과잉 의지하는 어머니, 그녀를 이용해 자신의 속된 욕망을 채우고자 했던 물질 주의자 루쥔, 심리적 수사와 화려한 언변과 조롱으로 주인공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하는 집요한 예심판사 포르피리등 요약하자면 단순한 줄거리이지만, 큰 주제로부터 뻗어나가는 수많은 가지와 같은 다양한 인간 군상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게끔 느껴진다. 소설 속 모든 인물들은 추악하고 불쌍하며 안타깝고 애처롭다. 지금의 우리 모습처럼.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그는 스스로의 죄에 대한 뉘우침으로서의 구원이 아닌, 소냐를 향한 진실된 사랑을 깨달음으로써 그녀를 이해하고자, 그녀의 신념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다짐을 통해 스스로를 구원한다.


소설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삶을 거울처럼 비출 뿐이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매만지고 재단장 함으로써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 단 한 명이라도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마음을 싹 틔운다면 그 소설은 충분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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