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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Aug 02. 2020

모든 이들의 과거, 그리고 현재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 파트릭 모디아노


기억이란 무엇인가. 오직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저주, 혹은 개인을 규정하는 정체성으로, 한없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자신만의 세계이다. 그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망각된 자신을 찾고 싶은 주인공 ‘기 롤랑’은 하나 둘 모여 그려지는 자신의 과거를 퍼즐처럼 맞춰가지만, 그것이 진짜 자신인지, 자신이 찾고 있는 ‘다른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모호한 정체성은 현재 땅에 발을 딛고 매 초마다 쿵쾅대는 심장을 가진 자신이 도대체 누구인지 더욱 혼란스러울 뿐이다.


지난한 추적의 결과로 얻어낸 단서, 자신이 ‘페드로’라는 이름의 남미 출신의 남자였으며, 연인 드니즈, 친구 프레디와 그의 연인 게이와 특별한 그룹이었다는 사실은 현재 조각나 있는 그의 기억에 희미한 과거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것이 기억을 잃은 기 롤랑의 상상인지, 페드로와 그의 친구들이 겪은 진짜 사건인지 독자는 알 수 없다. 오래된 호텔의 길게 늘어진 어두운 복도에 무심하게 존재하는 시간제한등 처럼, 지나간 자리에 잠시 밝혀지고 이내 다시 꺼져버리는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자신이 누구인지, 거대한 세상 속에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 처연한 감정에 들게 한다.


어쩌면 자신이 특별한 순간을 겪었을 자리에서 조차 어떠한 기억과 감정도 들지 않는 자신에 대한 의심, 길을 걷다가 혹은 아무것도 아닌 장소에서 느끼는 기시감은 그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가는 주인공의 행보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 그 어떤 역경이 닥쳐와도.’라는 또 다른 메시지를 떠올리게 한다. 결국 프레디를 찾지 못하고 해가 지는 저녁의 바닷가를 쳐다보며 느끼는 단상은 어찌 됐던 자신의 과거를 끝까지 찾겠다는 조심스러운 다짐과 맞물려 순간적으로 빛을 내고 흩어지는 현재 혹은 모든 인간에 대한 헌사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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