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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May 21. 2019

"리뷰, 왜 쓰세요?"

나는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에 대해 항상 생각한다. 서가와 이북리더기에 펼치지 않은 책들이 남아있고, 왓챠 플레이에 보고 싶어요를 눌러놓은 영화가 수없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미 본 작품들에 집착하고 굳이 소중한 주말을 쪼개서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때, 리뷰를 쓰지 않고 닥치는 대로 보고, 읽던 시절이 있었다. 한 권을 끝내면 그 여운을 되새김질할 틈도 없이 다른 책을 집어 들었고, 재미있게 본 영화의 감독,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끈질기게 추적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레 대중적 취향과는 조금 다른 영화를 선호하게 되었고, 남들보다 조금 깊은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자부했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자연스럽게 관련된 책과 영화 얘기가 튀어나올 수 있게 되었고, 남들에게 '진짜 책, 영화 많이 보시네요'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치 내가 뭐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하지만 좋은 작품, 재밌게 본 작품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을 받을 때 종종 당황스러웠다. 내 기준에 좋은 작품을 추천해줘도 받아들이는 사람 입장에서는 전혀 좋지 않은 작품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 '노잼',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곧 내 가치가 부정당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불쌍한 작품들'을 변호하기 위해 이게 왜 좋은지에 대해 최선을 다해 설명했다. 하지만 기록이 없으면 감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특히 좋은 것에 대해)이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아무리 청산유수로 설명해도 상대방에게 가 닿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설명을 하다 보니 내가 그 작품에 대해 완벽히 이해한 것이 맞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스스로 좋음에 대한 의심이 피어났다.

결국 초짜 변호사 같은 나의 두리뭉실한 설명 때문에, 배심원들에 의해 내려진 판결을 뒤집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좋은 것들을 왜 좋은지 설명하기'란 마치 '토종 미국인에게 갓김치 맛 설명하기'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쓰게 됐다. 리뷰. 내가 이 작품을 왜 좋아하고, 내가 이것을 볼 때 어떤 감정을 느꼈는가. 그것은 그 작품을 마주했을 때의 심리, 감정상태, 현재의 고민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그 날의 날씨, 보기 전에 뭘 먹었는지 까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조금은 깨달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하지 않고서는 내가 그 작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10년쯤 후 미래의 내가 쓴 리뷰들을 봤을 때 그 작품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그때의 나는 과거의 내가 조금은 부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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