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플리>
대타로 피아노를 쳤을 뿐인데 우연한 기회를 잡은 톰. 상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였을까, 비루해 보이는 자신의 삶을 숨기기 위해서였을까. 유럽에서 방탕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을 데려와 달라는 사업가의 부탁을 받고 날아간 이탈리아. 그의 아들 디키에게 접근하기 위해 사전 준비를 하는 톰은 이미 선의라는 선을 넘고 있었다. 유유자적 부잣집 도련님의 삶을 사는 디키. 그 옆에 있는 아름다운 마지. 매일 같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삶은 톰을 매료시킨다. 디키와 대화를 통해 그 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는다. 톰이 결국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디키와의 우정? 그의 인정? 아니면 그의 사랑이었을까. 순간의 다툼으로 손에 피를 묻힌 톰은 벗어난 선에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정상적인 삶에서 벗어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계속해서 새로운 레일을 깔아나가는 것뿐. 그런데 신이 도운 것일까. 아들의 치부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던 사업가는 사건을 덮어버린다. 역시 나는 다르다. 이 모든 것을 가질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라고 행복감을 만끽하는 순간, 그를 여태까지 유혹해온 우연이 이번에는 그를 파멸에 이르게 한다.
아름다운 90년대 이탈리아 배경, 지금은 이미 이름깨나 떨치는 배우들 된 이들의 호시절은 과거를 추억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디키 역의 주드로 스타일은 지금 봐도 감탄이 나올 정도. 벗겨진 엠자 탈모까지 멋있어 보인다. 더불어 조연으로 등장하는 케이트 블란쳇과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짧지만 강렬한 젊은 시절의 모습은 새삼 이 영화 이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먹고 자란다. 보통 인간은 자신을 과장하기 위해, 실수를 속이기 위해 거짓을 말한다. 누구나 사소한 거짓말을 하지만 아예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는 일은 보통 하지 않는다. 도용이 만연한 스마트폰 사회에서는 아닐 수도 있겠다. 사진을 교환하고 소개팅에 나갔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이게 웃픈 이야기가 되었다는 사실이 종종 서늘하게 느껴진다. 요즘은 동영상도 보정을 해준다. 딥 페이크로 얼굴까지 자연스럽게 합성해버린다. 내가 만들어낸 또 다른 가상의 인물이 존재하는 것이다. 거기에 성격을 부여하고 신비스러움으로 잘 포장하면 마치 조물주가 된 기분이 들 것 같다.
요즘은 인스타그램 피드로 자신을 정의하고 규정한다고 한다. 자신의 음식 취향, 즐겨 듣는 음악, 좋아하는 패션 등. 팔로워 수는 자신의 경쟁력을 의미하며 특정 수를 넘어선 이들을 ‘인플루언서’라 지칭한다. 기업은 그들을 마케팅, 광고에 이용하고, 그들은 돈을 번다. 그리고 다시 팔로워와 구독자 수를 늘린다. 숫자가 숫자를 만들어낸다. 즉, 돈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현실보다 가상의 공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어여삐 가꾸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시대가 변했으니 생각도 변해야 한다. 기술은 죄가 없다. 돌도끼를 사용한 이래로, 도구를 사용한 책임은 인간에게 있어왔다. 글이 점차 사라지는 시대에서 이미지와 압축된 한 줄의 문장은 하나의 예술로 구분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까. SNS 활동을 그저 한심한 짓이라 단정 짓고 고깝게 보기엔 꼰대라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다만 내 주변 소중한 사람들이 현실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선을 넘지 않기를 작게나마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