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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JS Jul 24. 2021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

영화<보리vs매켄로>

전염병의 시대에도 올림픽은 계속된다. 우여곡절 속 1년 늦게 열리는 2020 도쿄 올림픽에는 어떤 별이 뜨고 질 것인가, 어떤 스토리가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게 될지 궁금해진다.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4년간 한 순간만을 바라보고 땀 흘렸을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한 영화를 추천한다.


윔블던 5연패에 도전하는 테니스 황제 비외른 보리, 미스터 아이스라는 별명처럼 코트 위에서 냉철한 멘털과 강철 체력으로 무장한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테니스계의 최강자이며, 가장 높게 빛나는 별이다. 수려한 외모와 긴 금발머리는 그의 실력과 어우러져 락스타처럼 수많은 팬을 몰고 다닌다. 세상의 모든 영광을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보리. 사람들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보리가 또다시 윔블던을 재패할 것이라고. 보리는 자신에게 지워진 영광의 무게가 버겁다. 하지만 견뎌야 한다. 이번 대회를 우승하지 못한다면 언론과 대중은 그의 패배만 기억할 것이다. 챔피언은 늘 고독하다. 그의 상대는 누구일까. 떠오르는 신성, 코트 위의 반항아, 신사의 스포츠에서 그의 코트에서만은 욕과 고성이 난무한다. 존 메켄로는 코트에서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오히려 과할 정도로 분출하는 그의 내면엔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심판의 판정에 욕설 섞인 항의는 기본,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수 십 개의 라켓을 부수는 남자. 둘은 결승에서 만난다.


1980년 윔블던 결승을 다룬 이 영화는 승부에 초점을 두지 않는다.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리와 매켄로의 내면을 파고들어 간다. 엘리트 체육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정상의 고독, 왕관을 두고 겨루는 상대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으로 보이는 둘의 승부는 테니스의 룰을 모르는 사람조차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영화만이 구사할 수 있는 반복적인 플래시백과 긴장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보리와 메켄로가 겪는 불안한 심리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보리vs매켄로는 사실 보리에 대한 영화다. 정상의 자리에 선 챔피언, 환하게 빛나는 조명 뒤에 드리운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다. 대중들은 영웅적 서사를 원하면서 이면에는 그 영웅의 추락을 간절히 염원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대중의 가십으로 소비되는 한 사람이 버텨내야 할 심리적 압박감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승부에 대한 집념이 남달랐던 어릴 적 보리는 불 같은 성격으로 테니스 계에서 퇴출당할 뻔한다. 신사의 스포츠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끝날 뻔했던 그의 커리어는 코치에 의해 부활한다. 코치를 만난 이후 보리는 변했다. ‘승부를 결정짓는 건 멘탈이다.’ 라는 말은 보리의 가슴속에 심어졌고 활화산 같던 그의 성격은 180도 바뀌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승리와 반대로 그의 내면은 나날이 곪아 가고 있었다. 승부를 위한 컨디션 관리는 집착을 넘어 광기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매일 같은 호텔, 같은 코트에서 연습, 같은 시트로 된 차를 타야 하며 매일 라켓 스트링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부모님 조차 그의 경기장에 방문할 수 없다.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스포츠 스타이지만 정작 그의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은 결혼을 앞둔 여자 친구와 코치뿐이다.


Winner takes it all, 승자가 거의 모든 것을 독식하게 되는 냉엄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특히 엘리트 체육은 그것을 쟁취한 이에게 막대한 영광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삶에서 그것은 저주받은 축복처럼 보이기도 한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늘 같은 루틴을 반복해야 하는 삶, 극도로 긴장된 심리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란 고통이다. 이 영화에서 보리는 도전자 매켄로를 보며 과거의 자신을 떠올린다. 매켄로는 보리를 위해 잘 마련된 제물처럼 보인다. 사실 매켄로는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다. 사랑받고 싶기 때문에 이기고 싶고 이기고 싶기 때문에 코트 위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심판의 오심에 숨이 넘어갈 듯 항의한다. 하지만 보리를 만난 결승에서 그 불을 삼킨다.  불은 라켓을 통해 뿜어진다. 4세트 16점까지 이어지는 타이브레이크를 따내면서 자신을 한 단계 넘어선다. 내내 야유를 받던 매켄로는 경기가 끝난 후에 기립 박수를 받는다. 게임의 승자는 보리였지만 경기를 통해 둘은 서로에게 구원받은 것처럼 보인다. 엔딩 후에 나오는 실제 보리와 매켄로의 사진, 둘의 이어진 인연은 승자와 패자에 관계없이 상처 입은 서로를 알아본 두 사람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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